해외서 주목받은 제품 한국서도 통한다?

정용인 기자

해마다 연말이면 일본 잡지 ‘닛케이 트렌디’를 비롯해 여러 군데에서 그해 히트상품 리스트가 발표된다. 2012년 올해는 어떤 상품이 화제를 모았을까.

‘닛케이 트렌디’가 지난 11월 17일 발표한 리스트에 따르면 일본에서 2012년 히트상품 1위로 뽑힌 것은 올해 5월 22일 오픈한 ‘도쿄스카이트리’(이하 스카이트리)다. 스카이트리는 일본에서 디지털방송을 시작하면서 종전의 TV 중계탑 ‘도쿄타워’를 대신하는 도쿄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높이는 634m. 파리의 에펠탑(320m)나 도쿄타워(333m)의 두 배로, 현재까지 세계에서 제일 높은 타워다.

오픈 4개월 만에 방문객은 2000만명을 돌파했다. 단순하게 ‘전파중계탑’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종전 ‘도쿄타워’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이 여럿 있는 것처럼, 문화적 잠재가치는 관광 목적의 방문객 숫자 이상이다.

2012년 일본의 히트상품 1위로 뽑힌 도쿄 스카이트리

2012년 일본의 히트상품 1위로 뽑힌 도쿄 스카이트리

2위에 랭크된 제품은 네이버재팬이 출시한 무료 메신저 스마트폰 어플 ‘라인(LINE)’이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이 차지하는 역할을 일본에서는 라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라인은 한국어 버전(2011년 8월 30일)보다 일본어 버전(2011년 6월 23일)이 먼저 출시됐다. 현재 전 세계 230여개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지난 11월 30일 전 세계 사용자가 8000만명을 돌파했다. NHN 홍보팀 원윤식 팀장은 “한국에서도 많이 다운받아 쓰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카카오톡이 시장 선점효과가 있다보니 아직까지 한국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약한 게 사실”이라며 “처음부터 글로벌 메신저로 기획된 것이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37개국의 무료 앱 부분에서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히트상품 2위를 기록한 스마트폰 메신저 어플 라인

일본 히트상품 2위를 기록한 스마트폰 메신저 어플 라인

‘도쿄 스카이트리’의 문화적 잠재가치

3위는 흔히 LCC라고 불리는 저가항공이다. LCC는 ‘Low Cost Carrier’의 약자. 저가로 항공권을 제공하는 대신, 기내서비스 등을 줄인 상품이다. 만약 따로 부치는 수하물이 있거나 음료 등 기내서비스를 받는 경우 별도로 책정된 가격이 추가된다. 말하자면 항공권에서 거품을 뺀 것이다. LCC 서비스는 국내에도 제주항공 등이 있지만 일본에는 2012년 피치항공, 제트스타 재판 등이 파격적인 국내선 가격 이벤트를 벌이면서 선풍을 일으켰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피치항공의 경우 이벤트 상품으로 한국 서울에서 간사이까지 2만9800원 가격의 항공권을 내놓아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일본의 역대 히트상품을 보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문구류가 포함되어 있을 때가 많다. 2012년 5위에 랭크된 일본 플러스사의 피트컷 커브 가위의 경우가 그렇다. 종전의 가위와 다른 점은 날이 30도 정도 휘어 있다는 점. 일본에서는 약 250만개가 팔렸다. 피트컷 커브 가위의 국내 에이전트사 관계자는 “곡선 커브 형태로 날을 만들어 절삭력은 3배 정도 늘었고, 크게 힘이 들지 않아도 자를 수 있어 여성이나 어린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가위질하는‘손맛’과 더불어 장시간 사용해도 피로감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많이 팔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쇼핑몰들을 중심으로 지난 10월부터 팔리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저가항공사 피치항공사의 홈페이지

일본의 대표적인 저가항공사 피치항공사의 홈페이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능성 상품들

기능성 제품도 눈에 띈다. 6위에 선정된 J!NS PC 안경이나 8위에 선정된 기린메츠 콜라 같은 경우다. J!NS PC 전용안경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LED 청색광을 흡수해 쉽게 눈이 피로해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어, 사무직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2012년 일본에서는 약 75만개가 팔렸다. 기린 메츠 콜라는 “탄산음료는 몸에 좋지 않다”는 기존 상식을 뒤집은 제품. 콜라에 당류는 제로이면서 ‘난소화성 덱스트린’ 물질을 첨가해 지방 흡수를 억제함으로써 실제적으로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닛케이 트렌디’에 따르면 기린 메츠 콜라는 출시된 후 종전 콜라시장의 21%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미국의 경우 일본처럼 연례적으로 히트상품을 선정해 발표하는 기관이나 매체, 공식 통계가 없다. 각종 트렌드 잡지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유망상품 리스트를 발표하곤 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이하 코트라)는 2012년 12월 7일 ‘미국 2012년 최고 연말 선물용품 TOP 10’을 발표했다. 코트라가 시카고 트리뷴과 관련 IT가젯 웹사이트 등을 참고해 작성한 리스트다. 미국의 연간소비 판매를 보면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중심으로 12월 판매 비중이 제일 높다. 미국 소매유통업체도 이때를 겨냥해 다양한 전자제품과 장난감, 의류 등의 판촉활동과 기획상품을 내놓는다. 코트라의 TOP 10 리스트를 보면 하나의 경향성이 눈에 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 이후, IT가전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리스트에 한국 제품으로는 삼성의 ‘갤럭시 노트’가 선정되어 있다. 2년 약정시 가격은 299달러. 애플이 출시한 ‘뉴아이패드’ 역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리스트를 보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들이 있다. 뷰직스사가 내놓은 버츄얼 와이드스크린 비디오 안경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연결한 안경을 쓰면 큰 스크린으로 영상을 감상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비행기 여행이나 집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가격은 396.25달러. 로지텍이 459.99달러에 판매하고 있는 스퀴즈 박스 터치 라디오의 경우 인터넷 라디오를 컴퓨터 없이 와이파이(WiFi)로 연결해 들을 수 있다. 그랜드스트림사의 Skype 비디오폰은 외형만 보면 기존 전화기에 화상창이 달려 있는 화상전화기다. 인터넷전화 Skype를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을 통해서가 아닌, 일반 전화기 형태의 기기로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이 회사가 처음 내놓은 것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던 인터넷 전화 ‘다이얼패드’ 출시 당시에도 나왔던 아이디어다. 해당 리스트를 정리한 코트라 시카고 무역관 황선창 차장은 “실제 미국에서 히트한 상품들을 보면 기존에 나왔던 개념 또는 기술을 재구성해 새롭게 출시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삼성의 ‘갤럭시노트’는 펜을 활용해 노트하는 기술을 채택했는데, 이미 10여년 전부터 나와 있던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다. 황 차장은 “결국 시장 흐름을 읽고 제품을 출시하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꼭 새로운 기술만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해외 히트상품 리스트들을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많다.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출시돼 날개 돋친 듯 팔릴 것 같은데, 간혹 수입되기도 하지만 묻히는 경우도 많다. 단적인 경우가 일본에서 2008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캐시퐁’이다.(주간경향 807호 관련기사 참조) 캐시퐁은 일종의 스탬프로, 편지봉투 등 개인정보를 가리는 데 사용하는 제품이다. 국내에도 수입돼 판매되었다. 벌써 4년이 흘렀지만 ‘히트상품’이 되진 못했다. 왜일까. 수입사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소비자들이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에 굉장히 민감한 측면이 있는데, 그런 수요와 맞아떨어져 성공했지만 한국의 경우는 정서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12일 <2012년 10대 히트상품> 리포트를 발표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서민수 수석연구원은 “히트상품 리스트에는 나라마다 다른 시장 환경과 국민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는 한국 히트상품으로 LTE 스마트폰이 선정되어 있는데, “기다리거나 끊기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 서 연구원의 분석이다. 미국 10대 상품에 선정되어 있는 로지텍의 스퀴즈 박스나 소니가 내놓은 ‘블로기 HD카메라 3D’의 경우, 각 회사의 한국 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있다.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오히려 블로기보다 고사양의 고화질 제품에 초점을 맞춰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지텍코리아 관계자도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스퀴즈 박스를 들여와 한국 시장에 론칭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설명 가능한 하나의 한국적 특성은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이다.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제품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틈새 아이디어 상품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의 경우 모든 기능이 집약되어 있는 스마트폰의 빠른 확산으로, 굳이 다른 기기 제품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블로기’의 경우 스마트폰에 내장된 동영상카메라가, 인터넷 라디오는 4G와 와이파이(WiFi) 전국망이 깔린 한국 상황에서 스마트폰 어플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기기’가 필요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과 미국의 히트상품 리스트를 보다 보면 한국과 관련된 제품으로는 갤럭시폰(일본 19위)이나 모바일메신저 ‘라인’만 눈에 띈다. 서 연구원은 “2012년 일본 히트상품 리스트의 경우 지난해 일본 대지진의 여파와 경제난의 이중고에 절약과 희망을 주는 상품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마시는 홍초, 막걸리, K-POP이 한꺼번에 히트상품으로 등재된 지난해 일본과 달리, 올해는 갤럭시 스마트폰 등을 제외하곤 ‘한류’ 관련 상품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나 더.‘일본 IT산업의 몰락’ 등의 전망이 나오는 것과 달리 미국의 리스트를 보면 앞서 언급한 소니의 블로기나 산요의 충전건전지 패키지 에네루프(eneloop)가 선정되어 있다. 한국산은 역시 갤럭시 노트 하나뿐이다. 코트라 황 차장은 “최근 들어 삼성 스마트폰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다른 전자기기나 엑서사리 제품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나 브랜드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며 “일본 전자기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원천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하고 기술개발 역량을 강화한다면 언제든지 일본 기업의 회생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 상황 파악 및 미국 사람들의 생활습관, 소비성향을 파악하는 동시에 가격이나 디자인, 편의성을 고려해 혁신적인 기술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시장뿐 아니라 어디서든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이다.

기린메츠콜라

기린메츠콜라

·2012년 일본의 히트 상품 (닛케이 트렌디 발표)

1.도쿄 스카이트리 : 5월 22일 개장한 도쿄 전파송신탑 관람시설

2. 라인(Line) : 네이버재팬이 출시한 무료 통화 애플리케이션

3. 국내선 LCC : 일본 저가항공

4. 마루짱 세이멘 : 기름에 튀기지 않은 생면

5. 피트컷 커브 : 곡선의 날을 가진 가위

6. J!NS PC안경 : 청색광 차단 PC용 안경

7. 나메코 인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게임 캐릭터 상품

8. 기린 Mets 콜라 : 지방 흡수를 억제하는 다이어트 콜라

9. 마치콘 : 공공메시지를 결합한 길거리 데이트 이벤트

10. 흑맥주 음료 : 맥주의 부드러운 맛을 살린 신개념 맥주

소니 블로기 HD카메라

소니 블로기 HD카메라

·2012년 미국 연말 선물용품 TOP 10 (코트라 선정, 무순)

-IMP120D 아이캐리어 12000mA배터리팩 : 휴대용 배터리팩, 129달러

-갤럭시 노트2 : 스마트폰, 299달러(2년 약정시)

-뉴아이패드 64GB : 터치패드, 699달러

-블로기 HD카메라 3D : 소형 디지털 사진 및 동영상 촬영, 249.99달러

-포터블 독시 고, 와이파이 스캐너 : 휴대가 가능한 소형 스캐너, 229달러

-GXV3140 스카이프 비디오폰 : 인터넷 전화기, 터치스크린 기능 내장, 215달러

-버츄얼 와이드 스크린 비디오 안경 Wrap 920VR : 스마트폰에 연결해 영상 감상이 가능한 안경, 396.25달러

-캠 스틱 맥스 4 G 카메라 : 초소형 디지털 카메라, 19.99달러

-스퀴즈박스 터치 라디오 : 인터넷 라디오를 컴퓨터 연결 없이 WiFi로 연결해 듣게 해주는 제품, 459.99달러

-에네루프 재생 NIMH 배터리 파워 팩 키트 : 다양한 종류의 건전지를 재충전을 가능하게 하는 충전기 및 배터리 패키지. 49.99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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