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화학적 남자

신동호 논설위원

남녀 성 분화는 성염색체가 아니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Y염색체를 가진 태아가 성 분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어떤 이유에선가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지 않아 여성으로 태어나는 사례가 드물지만 발생하는 까닭이다. 그런 여성이 성장하면서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볼 수 있다. 서로를 참 이해하기 어려운 두 성의 신체·행동·심리적 특징이 호르몬,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화학물질의 작용에 지배된다는 생각을 하면 별로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어날 때만 아니라 살아가면서도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게 남자와 여자의 일생이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은 점점 여성화하고 여성은 남성화하는 것도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같은 성호르몬의 영향이라고 한다. 성호르몬의 위력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문제까지 유발할 정도로 강력하다. 특히 테스토스테론이 그렇다. 근육과 뼈 등을 튼튼하게 하고 성욕과 성기능을 강화하는 작용 때문이다. 어제 법원이 처음 검찰의 청구를 수용해서 화제가 된 ‘화학적 거세’의 대상이 바로 이 호르몬인 셈이다.

성범죄자에 대한 거세는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차단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 거세는 그것이 분비되는 양쪽 고환을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고 화학적 거세는 그것의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다. 물리적 거세는 옛날 궁형이나 내시부 입명을 위한 시술을 생각하면 된다. 화학적 거세는 지금도 미국 일부 주와 독일·덴마크·스웨덴 등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성충동 약물치료 제도로 시행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화학적’으로 ‘남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마찬가지다.

어떻든 남녀의 오묘한 조화나 흉포한 성범죄를 화학적 작용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두 역사 인물을 떠올리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본다. 중국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기원전 86?)은 물리적 거세를 당하면서 <사기>를 완성했고, 영국 앨런 튜링(Alan Turing·1912~1954)은 ‘튜링 기계’를 고안하고 영국을 구했지만 화학적 거세를 당했다. 이들은 자식의 아버지로서보다 오히려 ‘역사의 아버지’ ‘컴퓨터의 아버지’로서 각각 후대의 추앙을 받는다. 화학적 남자로서 자위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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