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체성의 회복

백학순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약속 중의 하나가 ‘국민대통합’이다. 지역, 계층, 세대, 성별 등 여러 갈래로 골이 깊게 파여 있는 우리나라 형편을 생각할 때, 국민대통합을 공약한 것은 합당한 일이다. ‘국민대통합’은 정치적 냄새가 물씬 나는 선거구호이지만, 국민통합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정치의 본령이다. 박 당선인이 당선 후에도 계속 ‘신뢰’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약속 이행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국민통합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다른 가치를 이뤄내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통합은 무엇을 이뤄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야 하는가? 한마디로 국민의 ‘분열’ 정체성을 치유하고 ‘통합’ 정체성을 이룩하는 데 쓰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치공학적 모양새 갖추기에 급급하면,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유리되면서 우리사회는 ‘우리’ 대 ‘그들’의 분열된 정체성 속에서 또다시 탐욕과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정동칼럼]‘우리’ 정체성의 회복

정반대로, 국민과 정부가 하나 되는 ‘우리’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는 2013년부터 닥칠 대내외 도전을 극복하는 데 또 한 번 위대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1997년 말에 IMF 환란을 만나 모두들 고통을 받는 속에서도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호소에 따라 무려 351만명이 참여하여 227t의 금을 모은 적도 있지 아니한가. 당시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여t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합된 ‘우리’ 정체성 문제를 꺼내기조차 민망한 실정이다. 여론조사와 정부자료에 의하면, 2011년 9월에 국민의 70.4%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고, 2011년 10월에는 그 응답률이 72.6%나 됐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노무현 정부에 비해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자살률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렇잖아도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렇다면, 박근혜 당선인은 우리 사회가 국민대통합의 본연의 목표인 통합된 ‘우리’ 정체성을 회복하고 확립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무엇보다도 ‘민주(民主)주의? 고것 참 좋지. 너희는 민(民)해라, 우리가 주(主)할 테니!’라는 식으로, 국민이 주인(主人)이 아니라 위정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의 지도자는 국민이 ‘신민’(臣民)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둘째, 민주주의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 없이는 불가능한 체제다. 지도자와 정치인이 자신이 주(主)하고 주인인 국민에게 민(民)하도록 요구하는 일을 막도록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과정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의 복직이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셋째, 박 당선인은 민주주의는 ‘법과 질서’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법과 질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잘못된 행위를 다스리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법과 질서의 악용으로 고통을 받은 해직근로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의 권익이 침해된 부분을 과감히 바로잡는 대화합의 조치가 필요하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을 이유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민주정치 체제하의 리더십은 자신의 호오(好惡)와 관계없이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 국민통합을 해치는 발언을 일삼던 인사를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에 임명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인수위에서 또 ‘철통보안’이라는 편의 장치 속에서 국민과 유리된 채 새 정부를 조각하고 정책을 만들어 낸다면, 이는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약속에 역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의 새로운 민주주의적 출발은 결국 자신의 생각과 리더십 스타일과의 싸움, 아니 박 당선인 자신과의 싸움일지 모른다. 박 당선인이 자신과 국민들을 위해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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