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병든 국토 살리는 ‘도시재생’

이연숙 | 연세대 교수·주거환경학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아 자원의 한계가 여실하며 인구 또한 충분하지 않다. 더욱이 급속한 산업화와 방만한 건설의 후유증으로 기존 도시가 쇠퇴하고, 쇠퇴된 도시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흘러들어가 쇠퇴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이 전국의 주거환경개선지구를 포함해 수천곳에 이르리라 전망된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해당 지역 주민의 삶은 시대발전과 무관하게 계속 피폐해질 것이며 국가적 손실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부담과 개개 국민의 세금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제 신도시와 뉴타운 건설의 시대는 지났고, ‘기존 도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는 도시의 관리와 재생이 국토부의 주요 정책이 될 것이다. 지난 50여년간 펴 온 공급 우선 주택정책과 산업을 육성한다는 미명 아래 기존 도시를 철거한 후 재개발하는 방식을 재고해야만 하는 시점에 왔다. 그동안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사회적 약자들의 증가는 복지·문화·일자리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담아내는 터전으로서 도시공간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기고]병든 국토 살리는 ‘도시재생’

이 혁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첫째, 단순한 경제적 논리에 의한 물리적 재생이 아니라, 그 지역을 문화·물리·경제·환경적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 이른바 총체적 재생이 되게 해야 한다. 둘째, 주민의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그동안 이뤄졌던 관 주도의 하향식 개발과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행정과 주민이 협력해 지역을 살려 나가는 방향이어야 한다. 셋째, 기존의 정비방식에서 무시당했던 지역사회의 자산, 즉 휴먼웨어·소프트웨어·하드웨어 자산을 존중하고 이들을 키워 지역사회 역량을 강화시킴으로서 지역의 재생이 자력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이러한 ‘주민참여기반 총체적 지역자력재생’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고의 체계, 지식기반, 기술이 필요하다. 이것이 잘 구축될 때 앞으로의 도시재생은 도시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시민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행히 정부는 이를 대비해 도시재생 연구·개발(R&D)을 실행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생성하게 해 왔으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며, 수백년 넘게 지속될 도시재생에 대비한 지속적인 R&D연구와 시범사업들을 통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실례로, 베를린시는 행정의 사고혁신을 위해 ‘주민참여 핸드북’이라는 지침를 내고 있고, 더블린시는 쇠퇴지역의 총체적 재생에 도전해 성공적으로 실천해 오고 있다. 시애틀시 정부는 주민사업대응 자금 제도를 운영해 민·관이 협력해 4000건이 넘는 정비사업을 해오고 있다. 이렇듯 우리보다 앞서 미래를 대비해온 사례를 분석하고, 우리 문화와 사회적 여건에 적절한 한국형 도시재생 모델을 개발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전국에 일어나고 있는 ‘마을 만들기’ 붐이 바람이 빠진 공에 공기를 불어 채워주는 것이라면, 도시재생은 완전히 쪼그라든 공을 조심스레 펴가며 많은 공기를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달라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공공의 지원은 필수적이되 모든 재생사업이 주민과 지역이 함께 나갈 수 있게 하는 제도적 구상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제 ‘도시재생’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져야 하는 시점에 왔고, 새로운 소통을 담당할 전문가와 지역활동가 및 주민 리더를 기를 수 있는 다양한 미래인력양성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유연한 정부조직과 협력 및 평가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준비가 병든 국토를 치유할 뿐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이는 ‘도시재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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