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자라고 거절만 당해 사회서 낙오 생각했는데… 까막눈이 빛을 본 기분”

김여란 기자

세상에 대한 믿음 다시 찾은 ‘더불어사는사람들’의 대출자들

돈 100만원 혹은 20만원을 구하지 못해 삶 전부가 망가질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무이자·무담보 대출업체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유일한 희망이자 든든한 안식처가 돼줬다. 이들은 더불어사는사람들을 통해 처음 신뢰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했고, 다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25년째 구두수선을 해 온 이영석씨(49)는 지난해 10월 구두수선소 임차료 52만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씨는 2009년 서울시가 구두수선소 디자인을 일원화하면서부터 매년 임차료를 착실히 내왔지만, 불경기 탓에 처음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기한 내에 임차료를 내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한다는 구청 통지에 압박이 컸으나 신용불량자인 이씨는 사채조차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2000년대 초반, 카드 만들라는 성화들에 못이겨 신용카드 7개를 만든 게 화근이었다. 어머니 병원비와 생활비가 빠듯할 때마다 버릇처럼 현금서비스를 받아 쓰던 게 수천만원의 카드빚이 됐다. 4년 전부터 신용회복절차를 밟고 있는 이씨는 매달 수입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돈을 상환하고 있어 모아둔 돈도 없었다. 이씨에게 돈을 빌려준 곳은 더불어사는사람들뿐이었다. 50만원을 빌려 구둣방 임차료를 무사히 낸 그는 “신용불량이라고 뭘 신청해도 항상 거절만 당해서 나는 사회에서 완전히 밀려났구나 싶었는데, 까막눈이 빛을 본 기분”이라고 말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에서 지난해 50만원을 빌린 뒤 후원금을 더해 매월 5만원씩 갚고 있는 이영석씨(49). 이씨는 “생계 압박 등으로 우울증까지 앓았었는데 더불어사는사람들을 만나 이젠 안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더불어사는사람들’에서 지난해 50만원을 빌린 뒤 후원금을 더해 매월 5만원씩 갚고 있는 이영석씨(49). 이씨는 “생계 압박 등으로 우울증까지 앓았었는데 더불어사는사람들을 만나 이젠 안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병원비 걱정일 때 무료 병원 소개
카드빚·생계로 허덕일 땐 대출
직업·건강 상담까지… 생활 안정 찾아

▲ “날 도와준 것처럼 나도 돕고 싶어”
빌린 돈 갚으며 후원회원으로

이씨가 더불어사는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여름, 동네 병원 의사가 이씨의 어머니를 큰 병원에 데려가 검사해 보라고 진단했다. MRI 비용 60만원이 수중에 없는 게 문제였다. 방도가 없던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우연히 알게 된 더불어사는사람들에 대출신청서를 팩스로 보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이자로 돈을 준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정이었다. 이씨의 대출신청서를 본 이창호 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57)는 “대출금 대신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봐주겠다”고 회답했지만, 이씨는 그 약속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직접 이씨네 집 근처 병원 여러 곳을 수소문해 이씨의 사연을 알렸고, 한 곳에서 무료검진 승낙을 받아냈다. 몇 주 후 이씨 어머니가 검진을 받던 날, 이 대표도 함께 갔다. 검진 결과 다행히 이씨 어머니는 치매 초기 상태로 약으로 진행을 막을 수 있는 단계였다. 지금 이씨는 더불어사는사람들에서 빌린 50만원을 1년으로 쪼갠 돈에 자발적 후원금을 더해 5만원씩 매달 갚고 있다. 그는 “날 추운데 건강하느냐 묻는 이 대표의 문자메시지 한 통에도 감동이 크다. 이런 관심은 10년 만에 처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카드빚과 생계 압박 등으로 우울증을 앓아왔던 이씨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을 만나 위로를 받고 많이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내년이면 신용회복절차를 마치는 그는 “부근 재래시장에도 장사 잘 안돼서 빚냈다가 신용불량된 사람들이 흔하다”며 “제도권 대출은 물론 각종 복지지원에서도 제외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마을기업에서 일하는 ㄱ씨(28)는 지난 2008년 대부업체에서 연이율 37%로 250만원을 빌렸다. 5년 동안 매달 8만원씩 꾸준히 상환해 온 그는 만기 예정인 올 1월 상환 내역을 확인했다. 480만원을 냈는데, 원금 250만원 중 82만원만 갚은 것으로 돼 있었다. ㄱ씨는 당시 어머니 허리 수술비가 급했던 상황인데 은행은 가진 게 없다며 대출 요청을 거절해, 5년이면 다 갚을 수 있다는 대부업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ㄱ씨는 “170만원을 더 갚아야 한다는데 대부업체의 계산법이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상환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항의를 해도 대부업체는 막무가내였다. 교회가 내준 공간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월 100만원 수준의 급여로 생계를 꾸려가는 ㄱ씨는 겁에 질렸다.

붙잡을 곳은 지난해 여름 지인이 건네줬던 명함에 적힌 더불어사는사람들이었다. 무담보 무보증으로 100만원까지 빌려주며, 연이율 1%의 이자마저도 대출금 상환 후에 돌려주는 곳이라고 했다. 대출업체에 한번 속아본 ㄱ씨는 연이율 1%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면서도 일단 대출신청을 했다.

ㄱ씨는 이 대표를 만난 후에야 금전적 이득 없이 남을 돕기 위해서만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이 대표는 “기금은 모자라고 신청자는 많지만 같은 100만원이라도 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ㄱ씨에게 먼저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ㄱ씨는 이달 말에 더불어사는사람들에서 돈을 빌려 대부업체 대출금을 일부 갚을 예정이다. ㄱ씨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사채에 허덕이며 살았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착한 대출업체 ‘더불어사는사람들’ 임원진이 회사를 소개하는 브로슈어를 펼쳐들며 활짝 웃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저소득층을 위한 착한 대출업체 ‘더불어사는사람들’ 임원진이 회사를 소개하는 브로슈어를 펼쳐들며 활짝 웃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더불어사는사람들의 1호 대출자이자 후원회원인 이성수씨(45)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은 내게 돈 100만원만이 아니라 직업과 미래를 살 힘을 줬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후 이씨가 운영하던 회사가 도산했다. 몇 년을 방황하다 다시 가족을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꾸준한 일감이 있는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씨에게 아파트 택배업을 맡아 해보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사업 실패 뒤 처음 동아줄 하나를 붙잡은 기분이었지만, 일에 쓸 소형차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계약금 100만원이 없었다. 이씨는 “회사가 부도나면서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였고, 누구에게 손을 벌리기는 죽기보다 창피한 심정에 끙끙 앓고만 있었다”고 했다. 이때 지역자활센터를 통해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이씨는 “실패자,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혀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는데, 여기선 담보도 신용보증도 아닌 단지 일할 수 있겠느냐는 의지만 물었다”고 말했다. 귀한 돈을 받은 덕분에 다시 떳떳한 가장이 된 이씨는 1년간 모든 대출금을 갚았고, 안정적으로 일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의 후원회원으로서 월 1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상환이 끝난 이씨에게 가끔 안부 전화를 걸어온다. 이씨는 “대표님은 몸이 아프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후원회원들의 재능기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꼭 연락하라고 당부한다”며 “사업하던 시절에나 실패 후에나 이런 따뜻한 세상을 몰랐는데 더불어사는사람들은 내게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대출을 받지 않은 이들과도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들에게 돈과 대출은 취약계층을 만나는 하나의 수단일 뿐 복지·재무·건강 상담 등 모든 방면에 필요한 자원을 연결해 자립을 돕는 것이 진짜 목표이기 때문이다. 밀린 월세 때문에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찾았던 손모씨(51)도 기금이 모자라 대출을 받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 덕에 집세를 해결했고 마음 기댈 곳까지 얻었다.

전업주부였던 손씨는 지난 여름 남편과 이혼하고 맨몸으로 독립한 뒤 봉제 일을 시작했지만 일거리가 일정치 않았다. 직업소개소를 들락거려도 일자리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혼자 되면서 구한 월세 20만원짜리 집세는 금세 서너달치가 밀렸다. 한순간에 빈곤층이 된 설움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에서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돈 대신 서울시 위기가정 지원 제도를 소개받아 월세를 해결했다. 손씨는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며 “또 더불어사는사람들이 연결해 준 집 근처의 새생명교회에서 밥과 각종 생필품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아낌없이 나눠주는 교회 목사 부부에게 감동받은 손씨는 독립한 뒤 시달렸던 불면증도 말끔히 나았다.

이 대표는 손씨의 재무 상담도 해주고 있다. 손씨는 은행과 대부업체에 각각 600만원, 지인에게 빌린 800만원의 빚이 있다. 신용불량자인 전 남편이 진 빚을 떠안은 것이다. 이 대표는 손씨에게 개인회생절차나 높은 사채 이자를 내릴 수 있는 정부의 바꿔드림론 등을 알려줬다. 대출 관계가 없어도 이 대표는 손씨를 찾아가 만나고, 손씨도 자연스럽게 어려운 일을 더불어사는사람들과 상의한다.

손씨는 “어려운 상황이니까 많은 도움을 받는 게 창피하지는 않지만, 부채를 해결하고 나면 꼭 나처럼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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