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마지노선’ 차별금지법은 먼 나라 이야기

백철 기자

·차별금지법에 무슨 내용 담겼길래…법안 통과 반대 보수단체, 성적지향·임신출산·종교 등 5가지 ‘독소조항’ 제외 주장

2003년 4월 25일, 당시 19살이었던 윤현석씨(필명 육우당)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자살했다. 동성애자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윤씨는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현실에 절망해 세상을 떠났다.

윤씨가 자살한 결정적인 계기는 동성애자를 비판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논평이었다. 2003년 초,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상 유해사이트 목록에서 동성애 관련 사이트를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자 한기총은 “동성애를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기총의 논평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윤씨는 “죽은 뒤에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4월 2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기도회’의 참석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동성애자인권연대 제공

4월 2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기도회’의 참석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동성애자인권연대 제공

10년이 지난 4월 25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기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동성애자인권연대뿐만 아니라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차세기연) 등 진보적 기독교단체와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함께 참석했다. 기도회 참가자들은 윤씨뿐 아니라 차별 속에서 세상을 떠난 다른 성소수자들을 추모했다. 어떤 이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폭력에 시달린 생애를 살았고, 누군가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가족에게 밝힌 뒤 집에서 쫓겨났다. 한 참가자는 “동료가 죽었을 때 장례식장을 방문하기가 망설여졌다”며 “장례식장에서 ‘이 친구와 함께 동성애자 단체에서 활동했었다’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일 뿐인데도 차별을 겪는 일도 있다. 통일운동가 김회정 시인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인터넷에 “우리가 북을 형제애로 대한다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등의 글을 올려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시인은 “몇 년 동안 활동해온 지역 문단협의회 카페에서 어느날 말도 없이 접근금지 조치를 당했다.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린 이후였다”며 “문학은 이념을 넘어선 것이라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협의회 임원들끼리 마음대로 나를 강퇴(강제탈퇴)시켰다”고 말했다.

생각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건 불합리

50대 중반의 김 시인은 그동안 주방보조, 아이돌보미 등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속된 압수수색과 재판,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오랫동안 일을 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물질적 손해 이전에 마음의 상처가 크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차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지 않나”라고 말했다.

보수·기독교계의 시각은 강경하다. 홍재철 한기총 회장은 4월 1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동성애는 방종이고 타락이죠, 정신적인 질병입니다. 치료해야 됩니다. 약물로도 안 돼요” “성경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6000년 동안 변함이 없었어요. 그때도 남색·여색을 처형하라고 했습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 또한 홍 회장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 “낙선운동 내지는 정당 해체까지 주장할 예정”이라고 경고하며 “4월 중순부터 국회의원들의 전화에 불이 날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의원실 전화에는 불이 났다. 한기총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뜻을 같이해온 ‘차별금지법 반대 범국민연대’는 홈페이지와 SNS, 카카오톡 등을 통해 차별금지법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의 명단을 공유했다. 또한 이들은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 및 차별금지법을 심사하게 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공유했다.

차별금지법 발의에 참여한 의원실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전화공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의 비서관은 “차별금지법을 철회하라는 전화와 팩스가 매일같이 온다”며 “항의전화를 거는 분들이 이성적으로 대화하려고 걸어온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의 비서관은 “하루에 적게는 50통, 많게는 100통 정도 전화가 오는데 대부분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합법화법이라며 철회하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한 번은 어떤 목사님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찾아오더니 한참을 설교만 하다가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국회에는 3건의 차별금지법 법안이 올라와 있었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별도로 법안을 올렸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보수단체와 한기총의 반발에 밀려 4월 24일 법안을 자진 철회한 반면, 김재연 의원은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일반적인 법안은 발의된 뒤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본회의 표결을 통해 법제화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발의된 김재연 의원의 차별금지법안에서 명시한 ‘차별의 범위’가 23가지에 달하기 때문에, 고용에서의 차별문제를 심사할 환경노동위원회를 포함해 총 6개 상임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김영진 의회선교연합 대표(전 민주당 의원)와 ‘한국교계 동성애·동성혼 입법저지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4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영진 의회선교연합 대표(전 민주당 의원)와 ‘한국교계 동성애·동성혼 입법저지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4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별금지법은 소수자 인권 지키는 최저선”

보수·기독교 단체들은 구체적으로 차별금지법의 어떤 내용에 반대하고 있을까. 차별금지법반대범국민연대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차별의 범위’에서 ‘성적 지향·임신 또는 출산·종교·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전과’ 다섯 가지를 제외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대표는 위의 다섯 가지가 포함된 대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경우 주체사상·동성애·청소년 임신이 확산되고, 미성년자 성폭행 전과자가 학교 선생이 될 수 있으며, “이슬람교의 폭력과 여성인권 유린”을 비판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샤론 바른성문화국민연합 사무국장은 “차별금지법을 모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독소조항’에만 반대하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를 위해 동성애가 퍼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지 동성애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까지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재연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의 처벌조항은 다음과 같다. 사용자가 성별·장애 등의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줬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한 악의적으로 차별금지법이 금지한 차별행위를 할 경우, 가해자가 최저 500만원 이상의 배상금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측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은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는 최저선”이라고 말한다.

김재연 의원측은 “예전에는 민주노동당 의원들만 차별금지법에 적극적이었는데, 민주당까지 약 70명의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나서니까 보수·기독교계에서 실제로 법이 통과될 것이라 생각하고 저항하는 것”이라며 “성적 지향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 핵심적인 항목을 제외한 채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 제외된 항목들은 ‘차후에 논의하자’며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경에 대체 뭐라고 쓰여 있을까

주류 보수 기독교계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핵심 논리는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주류 기독교계는 구약성경의 창세기, 레위기, 신약성경의 로마서 구절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성경구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성경 내용은 모두 개역개정 성경을 인용했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창세기 19장 3~7절)

“너는 여자와 동침함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 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위기 18장 22절, 레위기 20장 13절)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로마서 1장 27절)

이 중 창세기 19장의 내용이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다.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의 신 여호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선한 사람을 10명만 찾아내면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선한 사람 10명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여호와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 멸망시켰다. 보수 기독교계는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우리가 너의 손님들과 상관하겠다”고 한 것이 바로 동성애를 지칭한다고 보고 있다. 김규호 선민네트워크 대표(목사)는 “성경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대표적인 죄를 동성애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남자가 남자를 취하는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라고 적혀 있는데 이걸 축소해석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진보 기독교계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와 동성애가 관련이 없다고 보고 있다. “상관한다”는 표현 역시 원문을 따져보면 외지인을 불러내 모욕감을 주겠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것이다. 보수 기독교계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는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동성에 대한 집단강간을 시도한 자들에게 신이 벌을 내린 것이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와는 관련이 없다고 보고 있다. 또한 진보 기독교계는 로마서 구절 역시 성인 남성들의 소년을 상대로 한 강제적 성관계를 비판한 것이며, 이는 현대적 동성애와는 다른 것이라 보고 있다.

레위기에 등장하는 구절은 다른 구절들처럼 동성애가 아닌 ‘동성 강간’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홍재철 한기총 회장도 레위기의 구절을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로 사용하고 있다.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는 “레위기의 전체적인 내용에는 시대상이 반영돼 있으며 지금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면서 “레위기를 글자 그대로 믿으면 월경 중인 여성이나 장애인을 부정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동성애와 관련된 레위기 구절에 대해 임 목사는 “레위기에서 말하는 ‘남자와 동침’은 성경이 쓰일 당시 근동지역(서남아시아)에서 종교의례로 행해졌던 남성 성매매를 일컫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서로 합의되지 않은 성폭력을 하지 말라는 것을 싸잡아서 ‘동성애는 죄악’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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