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박 대통령 자체 개혁 주문하자 신임 얻은 듯 ‘기습 반격’

구교형·정환보 기자

NLL 회의록 성명 발표

국가정보원이 10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논리는 ‘안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대선 댓글 사건과 회의록 공개로 야당에서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요구가 나오고 있는 데 대한 반격이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최고정보기관이 야당을 상대로 반격을 가한 것은 현행법상 금지된 정치개입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정일 위원장 발언을 노 전 대통령 것으로 둔갑

국정원이 이날 성명을 통해 밝힌 입장은 한마디로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성명에는 “NLL 관련, 회의록 내용은 남북 정상이 수차례에 걸쳐 백령도 북방을 연한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서해해상군사경계선’ 사이 수역에서 쌍방 군대를 철수시키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경찰이 관리하는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것이었다”고 적혀 있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의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오른쪽)과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10일 국회에서 국정조사 실시계획서를 논의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의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오른쪽)과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10일 국회에서 국정조사 실시계획서를 논의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하지만 국정원이 지난달 24일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공개한 회의록 전문을 보면, 국정원이 적시한 발언은 노 전 대통령이 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 것이다. 전문 17쪽부터 2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적혀 있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노 전 대통령은 “예, 아주 나도 관심이 많은…”이라며 애매한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그밖에 이와 관련된 발언은 회의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여론의 반대가 높아 NLL을 건드릴 수는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이 논의를 회피하는 말만 나온다.

당시 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지난달 30일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준비해서 북측에 요구한 방안은 ‘NLL을 손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NLL을 기선으로 해서 남북으로 등거리 또는 등면적 수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하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회의록 내용 어디에도 일부의 주장과 같은 ‘NLL을 기준으로 한 등거리·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며 이를 NLL 포기의 근거로 삼았다. 당초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던 여당이 회의록 전문에 ‘포기’라는 단어가 없자, “전체 문맥은 사실상 포기”라면서 내세운 논리를 그대로 국정원이 되풀이한 것이다. 여당이 정치적 해석을 덧붙인 판단을 국정원은 전직 대통령의 ‘안보 포기’ 주장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민주당 김현 의원은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회담 전후의 논의는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과 김관진 합참의장, 윤병세 외교안보수석 등 현재 박근혜 정부 인사들도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재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재직 중인 김장수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방장관 회담에서 NLL을 고수했고, 외교부 장관으로 재직 중인 윤병세 전 수석은 회담자료 준비를 총괄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박 대통령 자체 개혁 주문하자 신임 얻은 듯 ‘기습 반격’

■은밀한 개입에서 공개적 개입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날 국정원의 기습 성명에 대해 “국정원은 조직의 명예와 사기 부분에서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입장 표명을 함부로 하면 안되는 조직”이라며 “더구나 단순 의견 표명을 넘어 특정 정치집단을 겨냥해 발언하는 것은 국정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정치개입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음지에서 일해야 할 국정원이 NLL 문제를 위기 때마다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면서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난달 14일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일주일 만에 국정원은 새누리당 의원 일부에게 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을 허가한 데 이어 남재준 원장이 직접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회의록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기습 성명을 발표한 10일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원 전 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날이다. 결국 이날 구속영장은 발부됐다.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는 “NLL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합의해 출구를 찾아가고 있는데 국정원이 다시 나서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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