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 같은 복날의 애도

황윤 | 영화감독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도살장으로 질주하는 개 운송 트럭을 보았다. 수백 마리 개들이 철창 속에 빈틈없이 겹겹이 구겨지고 접힌 채 짐짝처럼 적재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걸 업자들은 ‘개떡’이라 한다. 개들은 과연 ‘개떡같이’ 취급돼도 좋은 존재일까?

어릴 적 어느 날, 앤이라는 어미 개가 새끼를 낳았다. 하얀 강아지, 검정 강아지, 그리고 바둑이. 언니랑 오빠가 각각 흰 개와 바둑이를 차지해 버렸고, 순번에 밀린 나는 검정 강아지를 맡게 됐다. 언니와 오빠는 내 강아지가 시커멓다며 놀리곤 했다. 속상했던 난, 내 개에게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고, 그림책에서 본 검정머리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캐리’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울리지도 않고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당시 나는 그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고, 누가 뭐라 해도 캐리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개였다.

[녹색세상]‘개떡’ 같은 복날의 애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흰 강아지가 친척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다음으로 바둑이가 어딘가로 갔다. 나는 검둥이 캐리만은 나와 계속 살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대문 앞에서 낯선 남자와 이야기를 하는 걸 보았다. 엄마는 그 남자에게 종이봉투를 건넸다. 그 속에 캐리가 있었다. 난 캐리가 간 곳이 좋은 곳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화가 났고 슬펐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개들과의 느닷없는 이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띵구, 밴, 그리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던 친구들, 내 어린 시절 추억의 반을 차지하는 개들은 늘 엄마의 결정으로 어딘가로 보내졌다.

켜켜이 쌓인 개들과의 시간과 기억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지금의 삶으로 인도한 것 같다. 풍부한 감정을 가진 건 인간만이 아님을 개들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동물원 철창 속 고릴라, 북극곰, 호랑이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하는 것이 내겐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작별>이라는 영화에서 시작된 인간-비인간 동물에 관한 사유는 다음 영화로, 그 다음 영화로 이어졌다. 지금 나는 우리 식탁 위의 동물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반려동물에 관한 사랑이 야생동물로, 그것이 다시 농장동물에 관한 관심으로 확장돼 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철에 개고기를 찾는다. 자신은 먹지 않더라도 개고기 먹는 것을 ‘문화’라는 이유로 옹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문화라 할지라도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준다면 재고돼야 한다. 모든 문화는 변하기 마련이며, 인류의 많은 악습은 없어지고 개선돼 왔다. 미국의 노예제, 한국의 호주제, 영국의 여우사냥은 오래된 문화이지만 폐지됐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여성 할례 또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개를 먹는 것은 우리 한민족의 유구한 전통도 아니다. 우리에겐, 개를 신령한 동물로 여겼던 전통이 훨씬 더 깊다. 고구려 고군벽화에 나오는 개 그림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여겨졌던 개의 흔적이다. 불교와 동학에서 개고기를 금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제가 왜곡된 조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개고기를 먹는 것이 마치 한민족의 전통 문화인 것처럼 알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 농장에서 개들은 비좁고 더러운 ‘뜬장’에 갇힌 채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개고기는 중금속과 많은 양의 항생제, 약물에 찌들어 있다. 개고기가 결코 ‘보신’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개 농장의 개들만 보신탕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경매장에서 애견숍으로 팔리지 않은 개들이 싼값에 식용으로 팔리고, 유기견들이 개소주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개를 먹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과 베트남뿐인데, 이제 개식용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개, 고양이 식용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말복이 다가온다. 고통 속에 처참히 죽어갈 수많은 ‘캐리’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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