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대표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정반대’

안홍욱 기자

‘정치인 박근혜’의 말과 행동이 버선속 뒤집히듯 180도 달라졌다. 야당 대표 시절 야당 존중과 상생을 외쳤지만, 대통령이 돼선 야당의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국정운영은 대화와 타협에 기반을 둔 ‘정치’가 아니라 무조건 따라오라는 ‘일방 통치’로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 구상’을 통해 올 하반기 민생 문제에 집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야당을 비(非)민생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민생 대 비민생’ 구도로 압박하려는 뜻도 엿보인다. 그러나 ‘정치 실종’ 상태에서 야당 협조 없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반대로 달라진 ‘정치인 박근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 때인 2004~2005년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을 향해 줄곧 상생정치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인 후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다.

박 대통령은 2004년 5월 “힘없는 쪽이 양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위해 노 대통령이 큰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해 12월에는 “여당이 야당을 존중하고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데 매진한다면 한나라당도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2005년 9월7일 노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인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삼지 않고 무시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딴판으로 변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에 ‘명분과 실리’를 준 사례가 거의 없다. 야당과 처음 맞붙은 정부조직법 개편안 문제도 박 대통령이 원안에 손댈 수 없다고 버티면서 처리가 지연됐다. 수정을 요구하는 야당을 설득하기보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로 압박하는 식이었다.

국가정보원 사건을 두고는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아예 선을 그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지난 16일 ‘국회 3자회담’에선 국정 정상화를 위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7대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청와대는 “민주당이 만나자고 해서 만나줬고, 하고 싶은 말을 다했으면 국정에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였다. 야당 대표 시절에는 상호 존중과 양보, 타협, 상생을 강조했지만 정작 대통령이 된 후에는 양보는커녕 제1야당 대표와의 회담 자체를 시혜를 베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 없이 민생 가능할까

박 대통령의 올 하반기 국정운영에서도 야당의 자리는 크지 않다.

박 대통령이 추석 연휴 기간 청와대 관저에서 골몰한 국정 구상 중심에는 민생 문제가 놓여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후반기 박 대통령의 거의 모든 관심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있다”고 했다. 민생을 앞세우는 데는 취임 이후 내치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야당과의 대치 전선을 명확하게 하려는 뜻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야당에서 장외투쟁을 고집하면서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아예 야당을 비민생 세력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은 민생을 살리기 위해 매진하는데 야당은 발목을 잡고 있다는 프레임이다. 야당에 대한 격한 비판은 당장 야당과 타협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국가정보원 파문,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이를 정도로 민심이 불리하지 않다는 자신감이 ‘강공 드라이브’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국 정상화를 위해선 박 대통령이 야당과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민생 등 각종 법안과 내년 예산안 등 정기국회에 산적한 현안을 감안할 때 야당의 항복을 강요하는 ‘강 대 강’ 대결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기국회 파행이 길어질 경우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박 대통령을 향한 책임론이 커질 공산도 크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대선 승자인 박 대통령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야당에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닫힌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여야 대치가 장기화하면 박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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