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프로파일러 권일용읽음

백영옥 | 소설가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 없어… 사람 목숨을 도구처럼 생각

사진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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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범들 대부분 “나는 불행한데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사회적 문제 왜곡해 내면화… 그들의 내면 끌어내는 게 내 역할

“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 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죽음으로 이윤을 올렸다.”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 <시인>의 첫 문장을 읽다가, 나는 어둠을 응시하는 한 사내의 사진을 떠올렸다. 권일용, 이 남자의 얼굴이었다.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을 만났다.

■ 90년대는 막가파 등 사회저항, 지금은 분노 범죄 증가

- 만약에 한 명이라도 내 인터뷰를 보고 범죄에 도움을 얻는다면 그 죄책감은 씻을 수 없을 것이란 얘길 했습니다.

“아이가 토막 나 죽은 현장이 있었어요. 손가락으로 하수도까지 긁고 팠는데도 결국 발가락을 못 찾았어요. 아이의 몸이라도 다 찾아야 부모에게 보여줄 텐데 다 덮어놓고 얼굴만 확인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사건의 피해자만큼은 제 기사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말하는 게 점점 조심스러워져요. 어떤 것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자라나지 않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 경감님은 인간의 ‘악’에 대해 하실 얘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성악설을 믿으세요.

“제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강호순, 유영철, 정남규 등 한국 연쇄살인범들의 공통점이에요. 이들은 1970년생으로 동갑입니다. 어떻게 같은 시대에 성장한 이들이 지금의 연쇄살인범으로 동기화되었느냐 학문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다면, 환경이 영향을 줬을 수 있죠. 그건 성선설이에요. 하지만 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훌륭하게 자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개인적이거나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겁니다. 이건 성악설에 가깝죠.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진짜로 미워해본 경험이 있다면, 마음속으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보복을 했을 거예요. 악이라는 건, 우리 중 누가 그것을 실행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복잡한 문제인 거죠.”

-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이제 일반적인 명사가 되어 있어요.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정남규는 살인충동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끊을 수 없다고 말한 게 정남규예요. 정남규는 자살한 게 아닙니다. 살인욕망을 참을 수 없어 자기 자신까지 살해했어요. 살인의 궁극적인 끝을 본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식을 통해 인간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해선 안돼요.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프로파일러들이 그들을 보는 건 사물을 보는 방식과 같습니다. 커피포트면 그냥 커피포트로만 보는 겁니다.”

-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모방범>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오해를 각오하고 말하자면, 범죄란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추리소설은 읽으세요.

“읽습니다. 뭘 읽는지는 얘기할 수 없고요. 1980년대엔 생계형 범죄나 원한, 치정 문제가 많았어요.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지존파, 막가파 같은 부류들이 ‘부자는 다 죽어야 한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등의 사회저항적인 얘길 하면서 등장하죠. 그러다 2000년 초반에 유영철, 정남규 같은 연쇄살인범들이 나타납니다. 지금은 분노하는 범죄가 가장 많아요. 이 배경에는 경제적인 요인이 있어요. 미국의 연쇄살인범들이 나타났던 시기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있습니다. 정부가 축소되고 자유경쟁에 맡기자는 정책으로 경제발전을 했지만 그 이면에 엄청난 대가가 있었고, 그게 연쇄살인이에요. 제가 800명의 범죄자들을 만나본 결과 엄청난 분노가 있어요. 사회적으로 배제되었고, 노력해도 잉여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사실 이건 인류 전체가 겪고 있는 현상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이 문제를 왜곡된 형태로 내면화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시기합니다. 빼앗고 파괴하는 것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거죠. 범죄자들에게 ‘왜 죽였어’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요. ‘나는 불행한데 너무 행복하게 웃길래 화가 나서 그랬다’고.”

- 높이 올라가 있는 사람을 끌어내림으로써 내가 높아지는 것 같은 착시현상 같은 건가요.

“그렇죠. 인터넷에선 주로 유명한 연예인이 타깃이 되지만 평범한 사람도 언제든 노출될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이 뭔 줄 아세요?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사이코패스가 되는 순간 연쇄살인범이 되는 게 아니라, 언제든 필요하면 사람 목숨을 도구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사이코패스인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연쇄살인 범죄가 아니라 경제범죄에 훨씬 더 많아요. 나주의 성폭행범이나 올레길 사건의 범인들을 만나면 묻습니다. ‘너도 그렇지만 그 아이도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떡밥을 물어요. ‘맞아요! 걔네가 재수가 없었던 거죠!’ 이건 일반 사람들이 하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에요. 이들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주 성폭행범의 말이 이래요. ‘원래 언니를 납치하려 했는데 걔가 거기 자고 있었으니까 그 아이 문제다.’”

■ 과학도 미완벽… 때론 법의학적 단서도 무시해야

- 강호순이 “나가면 또 범죄를 저지를 거다. 이번엔 절대로 걸리지 않을 거다”라는 말을 한 걸 본 기억이 나는데요. 프로파일러는 이해되지 않는 악인을 끝내 이해해서 그 사람의 내면을 끌어내는 일 아닌가요.

“말을 끄집어내는 것까지가 저의 역할이고, 그 실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강호순이니 유영철이니 하는 사건에 대한 부담은 언론의 비난 같은 게 아니에요. 내 무능 때문에, 내가 멈칫거리고 있는 순간 누군가 죽는단 생각을 하면 그 비극이 전부 내 책임 같아요. 제게 기억나는 범죄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다 기억 못합니다. 하지만 2000건의 현장들은 단 한 건도 잊지 못해요.”

- 살인범의 얼굴은 잊어도 범죄현장은 잊을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장면도 아니고, 안 보고 살면 더 좋은 장면들을 저는 늘 봅니다. 현장의 메커니즘은 경험으로 쌓이는 겁니다. 프로파일러들에겐 형사들을 어떻게 설득시키느냐 하는 과제가 있어요. 아무리 분석을 잘해도 수사관이 움직이지 않거나 동기화가 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인 겁니다. 한국은 미국처럼 영화나 책에 나오는 그런 프로파일러가 아니라 범죄행동 분석가예요. 용의자가 있을 때 수사관이 어떻게 심문해야 하냐는 전략까지 수립해야 돼요. 미국 같은 곳에선 범인이 반경 3㎞ 안에 있다는 프로파일링이 나오면, 그 안에 집이 5개밖에 없어요. 그런데 한국은 마포 지하철역에서 반경 3㎞ 안에 범인이 있다고 하면 형사들이 난리가 나는 거죠. 그 안에 유동 인구가 몇이에요, 대체.”

- 한국의 범죄자 검거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게 주민등록증과 지문 날인 때문이란 얘기도 있던데요.

“문제는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도 있고, 지문이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 옛날엔 동생이 대신 찍는다거나 하는 일도 있어서 지문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학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오류와 오차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그게 진짜 용기인 겁니다. 미국의 콜드케이스(미제사건전담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심지어 법의학적 단서들도 무시할 수 있어야 미제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 수사라는 건 지향점을 갖고 돌진하다보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 전문적인 프로파일링은 결국 범인 쪽이 아닌 피해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CSI>를 보는데 지문을 남기고 가는 범죄자는 극히 희박해요. 그래도 지문을 연구하는 이유가 있어요. 단 한건이라도 범인을 잡을 수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 가끔 프로파일링의 적중률이나 통계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무의미한 질문이에요. 해결된 한 건의 사건은 100%인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UDT가 6·25 이후에 출동한 적이 몇 번일까요? 제대할 때까지 한 번도 출동을 안 하는 UDT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센 훈련을 받는 이유는 언젠가 필요할 때 그 사람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들의 존재 이유가 거기 있는 거예요.”

- 오원춘 토막살해사건이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인육괴담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 전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번지던 일이 떠오릅니다. 전문가 집단에선 다문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될 거란 얘길 하시는 분이 많더군요.

“괴담 부분은 그 사건의 본질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정확한 팩트를 모르니 언론 보도의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저도 몇 년 전부터 다문화 문제를 제기했는데, 잘못해서 그들이 잠재적 범죄자라고 오해될까봐 조심스러운 부분이에요. 미국의 전철을 따라가면 그런 친구들이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 만든 게 갱들입니다. 갱 정도의 개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그런 일들이 소소하게 벌어지고 있어요. 우리 사회는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가 표출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지금 16~18세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공교육 탈락률이 60~70%가 넘었어요. 더 우려되는 건,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시골 조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들이에요.”

- 세계 경찰의 트렌드가 범죄 예방 쪽에 맞춰져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환경이나 도시 구조를 바꾸는 ‘셉테드’ 연구가 활발하다고 들었어요. 가령 골목의 구조를 바꾸거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담장을 허문다거나, 적절한 곳에 철망을 설치하고, 아이가 입구에서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의 환경을 오픈하게 해서 공간의 구조를 바꾼다거나 말이죠.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은 공간을 분석해내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걸 전문적으로 ‘스누핑’이라고도 말하는데요. 하지만 일부러 범인이 범죄현장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인간의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목적을 갖고 행동을 해도 사람마다 길을 가는 방법들이 다릅니다. 그게 시그니처예요. 커피를 조금씩 남긴다든지, 피해자 얼굴을 가린다든지, 성범죄를 저지를 때 항상 옷을 입힌 채로 폭행한다든지 하는 고유의 행동이죠. 책을 보면 이렇게 정의되어 있어요. 성폭행 범죄자가 미장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성폭행을 하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옷을 다 벗게 하고 사진을 찍어요. 그건 다른 피해자들에게 수치심을 줘서 신고를 못하게 하거나, 피해자들이 자기 신체를 가리기 위해서 전환하는 의식 때문에 범인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할 거란 계산이 깔린 거죠. 그게 바로 범행 수법입니다. 그런데 범인이 옷 벗은 사람들을 촬영해요. 특정 자세, 가령 무릎을 꿇게 한다든지 하는 게 개입이 되면 그건 시그니처가 돼요. 수법은 범행 현장이 바뀌면 계속 바뀌지만, 현장에는 범행을 완성하기 위해 범인이 남기는 불필요한 행동들이 있어요. 과거 강원 지역에서 여성 살인사건이 있었어요. 남자가 저지른 것처럼 성폭행 범죄로 위장했지만 우리는 범인이 여자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위장하고 은폐할수록 역설적으로 단서들이 남아요.”

- 증거물이 나와도 범인이 자백을 안 하면 범죄가 성립되지 않나요.

“수사의 목적은 자백을 통해 왜 이 일이 벌어졌는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거예요. 물론 DNA가 나오면 법정에 갈 수 있죠. 하지만 경우의 수들이 많습니다. 과학수사가 발전하는 이유는 한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상황과 정황이 이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과학이 그것이 아니라는 걸 밝혀줄 수 있을 때 더 큰 의미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자백 없는 상태에서 시체도 안 나오고, 오직 DNA만 김길태 것이라고 하면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를 신의 영역이에요.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닌 겁니다.”

■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진행 중, 공소시효 없어져야

-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혼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공소시효 폐지는 인간에 대한 국가의 철학문제라는 생각을 했어요. 공소시효가 끝난 화성 연쇄살인사건 때문에 프로파일러가 됐단 얘기를 읽었고요.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진행 중입니다. 그놈이 길거리에 침이라도 뱉으면 그걸 채취해서라도 잡을 겁니다. 미국에 BKT(묶고 고문한 뒤 살해하는 수법) 범인이 30년 만에 잡혔어요. 연쇄살인이 지속되다가 30년의 공백이 있었어요. 근데 미국 경찰이 그때의 정보를 보관하고 있다가 30년 만에 범인을 잡은 거예요. 작년부터 경찰청에서 각 지방청 형사과에 미제사건전담팀을 2~3명씩 배치했어요. 최초로 시작한 대전청에선 실제 성과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법 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걸 만들어내서 반대하는데 저는 공소시효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혼신을 다해 살인마를 연기한 배우, 살인귀가 등장하는 소설을 쓴 작가의 입장이란 게 있습니다. 흔히 감정이입이란 말을 쓰는데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혼란을 느끼게 돼요. 정신과적인 질환을 앓거나 극단적인 경우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경감님은 직업적 고충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나눌 수 없는 프로파일러예요.

“후배들에겐 이런 말을 해요. ‘죽은 이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줘라. 그 사람이 죽기 전, 마지막까지 기다린 사람이 우리일 수 있다.’ 그걸 생각하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집니다.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는 피해자들과의 약속이에요. 이건 불타는 정의감이 아니라 죽은 피해자들과의 공감이에요. 범죄자들이 날 가르치는 선생님이란 심정으로 그들의 얘길 경청합니다. 면담을 통해 유사한 놈들이 나타나면 정리하고 적용합니다. 그놈을 통해 제2의 살인마가 나왔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을 거라고 결심해요. 증거물 확보나 자백이 끝나면 본격적인 범죄자 면담이 이어져요. 심정을 물으면 처음에는 죽고 싶단 얘길 해요. 면담이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죽고 싶냐고 물으면 자기가 몇 년 정도 구형을 받을지 물어요. 그리고 자기 얘길 들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설혹 자기 얘길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공감해주질 못하니까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제2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겠단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어집니다.”

■ 사람의 가치 알고도 파괴하는 살인범들이 더 나빠

- 프로파일러에게 공감능력이란 철저히 피해자를 막기 위한 전문적인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걸로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이해가지 않는 인간을 이해하고 공감되지 않는 자들을 공감하면서 자료화하고, 철저히 공무상 수단으로만 이용해야 하는 일을 상상하는 건 힘든 일 같습니다.

“가끔은 머릿속에서 판이 튀기도 해요. 어떻게 나로 돌아오는지, 내가 악마인지, 내가 악마가 된 꿈을 꾸고 사는 건지, 내가 악마를 만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려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강호순, 유영철 같은 사람들을 면담하면서도 언제든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 그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살인범들은 사람의 가치를 알고 있어요. 사람이 중요한지 알면서 파괴하기 때문에 나쁘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율신경계 문제들이 교란을 일으킬 때가 있어요. 질병이 생겨 병원에 갈 일이 생깁니다. 정말 웃긴 건 그 많은 시체들을 봤는데, 정작 제가 주사 맞는 건 못 봅니다. 아무렇지 않게 피를 쭉 뽑고 주사를 팍 놓고 가는 간호사들을 보면 무서워요. 그냥 주사만 그래요. 특히 아동과 관련된 사건이 힘듭니다. 일주일 동안 브리핑을 다 하고 바닷가에 혼자 앉아 있는데, 저도 모르게 뛰어들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어요.”

- 경감님에게 아름다움은 뭔가요.

“인간이 아름답지 않으면 뭐가 아름답겠습니까. 인간이기 때문에 꽃이 아름다워 보이지, 꽃이 아름답게 피려고 했겠어요? 그걸 보는 인간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죠. 노래방 18번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예요.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인간이 당연히 아름다워야죠. 제 시간은 각각의 사건에 멈춰져 있어요. 10년 전에 겪은 사건이 있으면 항상 그 시간에 머물러 있어요. 3년 전에 투입된 사건, 김길태를 만나서 눈을 마주치던 시간, 지금도 그때에 멈춰 있는 거죠. 인간이 많은 걸 잊어버리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데 사건은 잊으려 해본 적도 없고, 절대 잊혀지지도 않아요. 그 시간들이 점들로 박혀 있는 거예요. 언제든지 나는 그 시간으로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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