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문제와 역사교육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을 둘러싼 논점의 하나는 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제195호(III)로 결의된 ‘한국 승인과 외국군 철군 감시에 관한 결의문’ 내용과 연관이 있다. 대한민국이 유엔으로부터 승인받은 ‘유일한’ 합법정부인가, 집필 기준처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가이다.

교과서에 따라서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또는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에서’로 한정해 유일한 합법정부를 명기한 곳도 있다. 8월 검정 결과를 발표할 때는 아무런 지적이 없었지만, 교육부는 21일에 이들 문장의 ‘삭제’를 요구하였다. 그동안 신우익과 일부 언론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기술이라고 비판하였다.

[시론]‘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문제와 역사교육

그래서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고자 자료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교육부 검정기준이 일관되지 않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 때 합격한 미래엔컬쳐의 검정신청본에는 “국제 연합 총회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이에 검정을 책임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내용조사’를 통해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하였다”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며 수정을 요구하였다. ‘감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가기관이 먼저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을 명기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를 그대로 따라한 두산동아, 미래엔컬쳐의 교과서는 ‘삭제’를 지시받았다. 이 문장을 풀어서 해석한 천재교육에도 ‘삭제’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집필기준이 바뀐 이유를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 역사적 사실과 제195호 2항의 내용을 어떻게 연관지어 이해할 것인가다. 분명한 점은 원문에 한반도라고 번역할 만한 용어가 없다. 제2항에는 Korea가 모두 네 번 나오는데, 외무부는 1952년 발행한 책자에서 모두 한국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 있는 ‘in Korea’를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한반도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다. 따라서 집필기준대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맞다. 더구나 1948년 시점의 대한민국을 기술할 때는 이렇게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제2항에서는 대한민국정부를 “한국 국민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한국 지역”의 합법정부라 하고 있다. 이어 대한민국정부가 “한국의 이러한 지역 유권자의 자유의사의 정당한 표현”이라고도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문장을 사용하되, 여기에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 또는 38도선 이남에 수립된 정부라는 해석을 첨부하더라도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서술은 아니다. 교육부의 삭제 지시는 정교하지 못한 판단인 것이다.

셋째, 그런데 집필기준이 국제정치의 흐름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정부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할 때이다. 한국정부는 조약의 제3조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조약 체결 직후 한국정부가 “조선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함으로써 38도선 이남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입장을 유지하였다. 한국과 일본이 각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유엔의 결의와 현실 국제정치의 괴리가 메워진 것은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었다. 이어 남북한 정부는 그해 12월에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여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제1조에 명기하였다. 따라서 1948년의 결의문을 가지고 1990년대 또는 오늘날의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까지 연결시키는 태도는 역사적 흐름을 간과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역사교육 속에서 유엔결의와 남북관계를 어떻게 연결지어 가르칠 것인가이다. 정통성과 체제 우월성의 맥락에서만 이를 바라보는 학교교육은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