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세계가 외면한, 유대인의 만행과 팔레스타인의 비극

윤성노 기자

▲예닌의 아침…수전 아불하와 지음·왕은철 옮김 | 푸른숲 | 456쪽 | 1만3500원

작가는 800년간 40세대가 이어 살아온 고향을 빼앗기고 난민이 되어 떠도는 팔레스타인인 박해사를 복원한다. 주인공 아말 가족의 4대에 걸친 삶을 통해 유대인들의 만행에 파괴되는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복수를 다짐하며 ‘저항의 소총’에 장전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수전 아불하와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다. 그는 소설 전반부에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된 유대인의 만행과 팔레스타인인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이는 자신의 삶이 그 시대의 아픔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불하와는 그의 부모가 1967년 일어난 ‘6일전쟁’ 때문에 요르단, 시리아, 쿠웨이트로 피란생활을 하던 중 태어났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미국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열 살 때인 1980년 예루살렘에 있는 고아원에 들어간다. 이때 고아원 생활은 작품 속에서 아말의 예루살렘 고아원 생활로 묘사된다. 열세 살 된 아불하와는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후 미국에서의 고단한 삶 역시 소설 후반부에 등장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테러리스트라며 탄압하고 배척했던 미국 사회의 어두운 과거를 고발한다.

요르단강 서안 예닌은 이스라엘에 나라를 뺏긴 팔레스타인인의 난민 캠프가 있는 곳이다.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인적이 끊어진 예닌 거리에 서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요르단강 서안 예닌은 이스라엘에 나라를 뺏긴 팔레스타인인의 난민 캠프가 있는 곳이다.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인적이 끊어진 예닌 거리에 서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국에 정착한 아불하와는 놀이를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위해 ‘운동장 만들어주기 운동’을 시작한다. 2002년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들어선 예닌을 방문한다. 작가는 그곳에서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예닌 난민촌 대학살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예닌의 참상은 세계로부터 외면받고 감춰졌다. “유엔은 오지 않았다. … 유엔의 공식보고서는 대학살이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같은 말이 반복되었다. ‘예닌에는 대학살이 없었다.’ ‘이스라엘에 따르면, 전투원들만 예닌에서 죽었다.’” 이 일이 그를 소설 <예닌의 아침>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엄마를 죽이고 그들의 헤드라인 속에 묻어버렸어요. 엄마, 제가 어떻게 용서하겠어요? 어떻게 예닌을 잊겠어요.’

팔레스타인 북쪽 에인 호드 마을에서 살던 아불헤자 가족은 예루살렘에 유대국가가 건립되자 예닌의 난민촌으로 쫓겨난다. 난민촌에서 구차한 삶을 이어가던 아불헤자가의 가장 하즈 예야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쳐놓은 철책선을 넘어 고향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예야의 아들 하산은 달리아와 결혼해 두 아들 유세프와 이스마엘을 낳는다. 1948년 여름, 이스마엘은 난민촌에 쳐들어온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유괴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이스마엘을 유괴한 모세는 아이의 이름을 다윗이라 지어주고 애지중지 키운다(이스마엘과 다윗은 각각 아랍족과 이스라엘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하산과 달리아는 이스마엘이 유괴된 뒤 딸 아말을 낳는다.

1967년 벌어진 ‘6일전쟁’ 때 하산은 행방불명되고 남은 아들 유세프도 이스라엘군에 잡혀가 고문을 받는다. 고문을 받던 유세프는 눈가에 큰 흉터가 있는 이스라엘 군인을 알아본다. 자신의 부주의로 갓난아이였던 동생 이스마엘을 떨어뜨렸던 기억, 그때 못에 찢겨 동생의 얼굴에 난 긴 흉터.

아들과 남편을 잃은 달리아가 넋을 잃고 지내다 세상을 떠난 뒤 아말은 예루살렘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고아원에서 공부하던 아말은 미국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떠난다. 아말은 미국에서 만난 의사 마지드와 결혼해 딸 사라를 낳는다. 그러나 의료활동을 위해 레바논에 갔던 마지드마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사망한다. 충격으로 마음을 닫은 아말은 딸 사라와도 멀어지게 된다.

[책과 삶]세계가 외면한, 유대인의 만행과 팔레스타인의 비극

이스라엘과 협상을 주도한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환멸을 느낀 유세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서 탈퇴해 지하드 조직원이 돼 미국 대사관 테러에 참가한다. 그 소식을 들은 아말은 예닌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한 아말의 앞에 이제는 다윗이 된 작은오빠 이스마엘이 나타난다.

작가 수전 아불하와는 한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출신의 ‘오리엔탈리즘’ 이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야기에 문학성이 너무 부족하다’고 개탄한 적이 있는데 그의 실망이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옮긴이 왕은철은 “스토리가 없다는 것은 담론싸움에서 밀리는 것이다. 담론싸움에서 밀린다는 것은 역사의 뒤안길이나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고, 소설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세계로부터, 세계의 역사와 미래로부터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이라며 <예닌의 아침>의 가치를 평가한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로 나치로부터 박해받은 유대인 이야기를 퍼뜨림으로써 담론화에 성공했다. 반면 홀로코스트 유대인들로부터 홀로코스트를 당한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로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흔하지 않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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