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정든 부천필서 자리옮긴 지휘자 임헌정 “코리안심포니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도전”

문학수 선임기자

지휘자 임헌정(61)이 25년간 이끌었던 부천 필하모닉을 떠나 코리안 심포니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취임했다. 최근 국내 음악계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뉴스다. 그의 임기는 지난 27일 시작돼 앞으로 3년간 이어진다. 그와의 인터뷰는 진즉 예정됐으나 108세 노모의 병세가 위중한 탓에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건너편 카페에서 이뤄졌다. 마침 그날은 코리안 심포니의 전임 지휘자인 최희준의 고별 연주회가 예정돼 있었고, 앞으로 이 악단을 이끌어갈 수장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연주회”였다.

이날 지휘자 임헌정은 “모름지기 음악은 마음을 모아 영혼을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기자정신이 있듯이 음악가에게는 음악가정신이 있다”면서 “음악가는 남을 감동시켜 영혼을 위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우 원론적인 이 말이야말로 지금 자신이 코리안 심포니 단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임을 강조하면서 “단원들은 음악에 마음을 바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부천필에서 말러 교향곡 전곡을 한국 최초로 연주해 ‘말러붐’을 일으켰던 주인공답게 그는 교향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오케스트라의 자부심은 결국 교향악에서 나온다”는 그가 취임 이후 코리안 심포니와 함께 도전할 교향곡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9곡)이다.

사진 | 예술의전당 제공

사진 | 예술의전당 제공

▲ 무명의 부천필 키운 주인공…말러 전곡 연주로 유명
자리 옮기기 쉽지 않고 부담도 있었지만 ‘즉각 수락’
단원들에게 “마음을 모아 영혼을 감동시키자” 주문

- 1989년 부천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해 25년간이나 자리를 지켰습니다. 처음에는 존재감이 미미했던 지방 교향악단이었는데요.

“처음엔 무척 고민했어요. 당시에 제 첫 반응이 ‘거기가 어디야’였죠.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안됐을 때잖아요. 당시 서른여섯 살이었는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악단을 키워내는 것도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단원도 몇 명 없었어요. 거꾸로 생각하면 장점이었죠. 좋은 연주자들을 데려올 수 있는 빈 자리가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3년 동안 특채로 단원을 충원했어요. 누가 부천에 와서 오디션 보려고 합니까. 후배와 제자들 중에 잘하는 친구들을 꾀었죠. 오케스트라 하나 잘 만들어 같이 살아보자, 그러면 행복하지 않겠냐…. 그렇게 접근했던 거죠(웃음).”

- 아무래도 지휘자 임헌정과 부천 필하모닉의 존재감이 각인된 것은 1999년부터 시작했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겠지요. 4년간 이어졌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말러 사이클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으로 통하던 시기였지요. 그런데 반응이 예상 밖으로 대단했습니다.

“음, 제가 서울대 음대 70학번이잖아요. 대학 시절에는 동숭동 학림다방에서 음악을 연주했어요. 그 다방이 우리 아지트였는데, 그곳에 가면 법대 다니던 이덕희 선배, 아 그렇죠? 나중에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를 하셨죠. 음악비평가 이덕희, 맞아요. 또 문화기획자 1세대로 불리는 강준혁 선배, 이런 분들이 늘 계셨어요. 이덕희 선배는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면서 뭔가 생각에 빠져 있고 강준혁 선배가 학림다방 DJ였죠. 제가 보조로 DJ를 했어요. 그렇게 판으로 음악을 듣다가 즉석 연주회가 열리곤 했어요. 저는 첼로를, 강준혁 선배는 클라리넷을 했죠. 그랬는데 모교에 교수로 부임하고 보니까 이제는 뭐 오케스트라가 가능한 상황이 됐죠. 악기를 전공하는 학생수가 정말 많이 늘었으니까요. 1993년에 학교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을 했어요. 학교니까, 공부하고 연구하는 곳이니까 말러 교향곡을 하는 게 가능했죠. 또 개교 50주년을 맞았던 1996년에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대단했어요. 굉장히 감동적인 연주였어요. 처음엔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던 학생들이 연주가 끝난 다음에 막 울고…. 저한테 그 기억이 선명했어요. 그래서 예술의전당을 졸랐던 거죠. 말러 전곡 연주를 부천 필하모닉과 해보자고. 그렇게 시작한 거죠. 관객이 오겠냐, 그 시끄러운 음악을 누가 듣는다고…, 그런 회의적 시선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했어요. 저도 미처 예상 못했죠. ‘말러붐’까지 일어날 것이라곤.”

- 지휘자마다 ‘적절한 리허설’에 대한 개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리허설을 많이 하시는 편입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할 만큼 해야 한다’고. 횟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말러는 80회가 넘는 리허설을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음악을 제대로 만들어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겠죠. 베를린 필하모닉이 브람스 교향곡을 연주할 때는 두 번만 리허설 해도 되거든요. 100년 이상 축적된 노하우, 전통과 연주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처음 연주하는 곡인지 익숙한 곡인지, 또 곡의 난이도에 따라 리허설 양상이 달라지겠죠. 한데 양보다는 역시 질입니다. 저는 연습할 때는 물고 늘어지지만, 실제 연주에서는 단원들을 믿고 맡기는 편입니다.”

- 부천 필하모닉을 맡았을 때 처음에는 갈등이 적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번에 코리안 심포니의 수장을 제안받으면서는 어땠는지요.

“갈등은 없었어요. 즉각 오케이했죠. 또 새롭게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마음이 들었죠.”

- 부담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2000년대에 말러붐을 일으켰던 것처럼.

“아직 단원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오늘 연주를 듣고 곧 만날 겁니다.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라고요. 사실 답은 뻔하죠. 하지만 그걸 느끼고 실천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핵심은 좋은 연주죠. 연주자들이 마음을 바쳐 연주하고 청중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것. 물론 전곡 연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11월부터 브루크너 교향곡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프로젝트는 단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거든요. 하지만 여기서도 핵심은 역시 감동적인 연주죠. 요즘 이런저런 연주를 듣다보면, 남을 이기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자기를 내세우는 탐욕스러운 연주들도 적지 않아요. 저와 단원들이 마음을 합쳐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 단순한 명제야말로 앞으로의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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