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그문트 바우만 영국 리즈대 명예교수읽음

글 안희경 재미저널리스트·사진 안선영 사진작가

진보의 길은 똑바른 직선이 아니에요… 실제 추와 같습니다

시스템 변화 원한다면… 국가 아닌 시 단위 정부에 기대하라

아이들을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학원으로 돌리면서도 부모들은 불안하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있는 그 자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에 직장도, 대출 신청한 장사 밑천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이 돼 버렸다. 그러니 자식들이 살아갈 시대는 더 안갯속이고 오로지 매달릴 곳은 스펙 쌓기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 모두 경주마가 되어 각자의 트랙에서 최선을 다해 달린다. 21세기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또래와 경쟁하면서 앞세대, 뒷세대와도 또 경쟁을 해야 하는 결승점 없는 레이스.

경제 규모가 커졌고 과학이 발달했고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부자는 부자대로 현상유지에 대한 두려움, 가난한 이는 가난한 이대로 냉랭한 복지 정책에 마음 둘 곳이 없다. 그래서 밤낮 없이 공부하고 일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생활전선에서 문명의 파국에 대한 위기감이 느껴진다. 우리들이 느끼는 불안의 원인과 탈출 방법을 듣기 위해 지그문트 바우만 영국 리즈대 명예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더 이상 위기를 말하지 말자고 했다. 그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실체를 파헤치자고 했다. 불안은 세계화된 권력이 우리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쥐고 흔들 만큼 강력해졌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정치의 지역적 한계에서 온다고 했다. 그는 고용불안, 소비환경, 교육 전반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시도해 볼만한 방식도 제시했다. 바로 도시의 지도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6월4일 지방선거를 맞는 우리가 귀 기울여볼 제안이다.

바우만 교수와의 만남은 지난달 14일 영국 리즈에 있는 그의 집에서 이뤄졌다. 89세의 나이지만 그의 목소리와 몸짓에는 기백이 넘쳤고 눈동자는 형형한 빛을 뿜었다. 온 기운을 모아 피륙을 짜내듯 풀어내는 말에는 세밀하게 집중해도 다 품어내기 힘든 방대한 지식과 사유가 넘쳐났다. 바우만의 글쓰기, 바우만의 언어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그의 의미를 조금 더 깊게 쫓아갈 수 있을 터이다. 바우만에게 다가가는 길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어 내지 못한 듯하여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고 그의 언어를 골라낼 수는 없었다. 독자들이 그를 음미하도록 번역자로서의 개입을 삼갔다. 바우만은 1시간30분의 인터뷰를 마친 다음, 온 에너지를 빼주고 남은 껍데기마냥 의자 속으로 까부라져 들었다.

세계화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의 대안은 무엇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은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대가 창조해야 하고, 기존의 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화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의 대안은 무엇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은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대가 창조해야 하고, 기존의 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 권력은 일이 되게 하는 능력… 요즘 권력 전 지구적 작동하나
국가가 조절하는 영역 밖 위치 불확실한 현실, 안전감 결핍
일생을 거는 프로젝트 만들라

안희경 = 우리의 문명, 위기인가요?

바우만 = 우리는 이곳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엄청난 규모의 문명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극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죠. 뉴욕타임스 일요일판에 나온 기사 하나에 담겨진 정보가 18세기에 살던 가장 똑똑한 어른이 평생 흡수하는 정보보다 더 많습니다. 지식과 기술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 감이 올 거예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결론을 이끌어내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매우 엄청난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죠. 하지만 결과를 예견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이 느낌을 ‘파멸’, ‘거대한 혼동’, ‘우리를 위협하는 쓰나미’라고 부르곤 하는데, 나는 이것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봅니다. 대신 현재 일어나는 일의 실체가 무엇인지 해석하고 답을 제출하는데 집중해야 돼요.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단순화해 말하면 최고 권력의 공백 기간 속에서 살고 있는 ‘인터레그넘(interregnum)’입니다.

안 = 인터레그넘, 생소한 단어입니다.

바우만 = 두 명의 왕 사이에 있는 시기예요. 프랑스말로 하면 “Le roi est mort, Vive le roi.(왕이 서거했다, 새 왕 만세)” 옛 왕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죠. 죽었으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터레그넘(궐위)의 의미입니다. 오늘날 이는 무슨 뜻일까요? 옛 방식이 매우 빨리 노화하고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데, 새로운 활동은 그 방법조차 개발되지 않은 상태인 거죠. 우리는 무엇이 안 좋은지 알고 제거하고 싶은데, 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는 아는데 어디로 가는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비전이 명확하지 않은 겁니다.

안 =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죠.

바우만 = 예를 하나 들게요. 현대화된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기술을 컴퓨터가 접수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됐고요. 그들이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합니다. 앞으로 공장에 고용될 살아있는 생명체는 오로지 둘일 거라고요.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데, 사람은 개밥을 줘야 하니까 필요하고, 개는 그 사람이 뭐라도 만질까봐 지켜야 한다는 거죠. 단순화했지만, 뼈아픈 지적입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우리 시대를 일컬어 위험사회라고 했습니다. 위험의 의미는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망치는 것이었어요. 또 한국에 늑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늑대가 위험 요인이었습니다. 그때의 위험은 매우 선명하게 눈에 보였습니다. 현대는 여기에 사람들이 유발하는 위험이 들어와 있어요.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거죠. 모든 사람들이 계속 성장하는 번영에 익숙해져서 더 좋은 걸 향해 가다 느닷없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빚을 갚다가 그 원금을 또 담보로 더 큰 빚을 내서 굴려보려다 파산하고 만 겁니다.

안 =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금융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수많은 중산층들이 집을 잃고 가족이 흩어지고, 또 이어진 정리해고 여파에 이혼 부부가 속출했습니다. 청년 실업은 젊은층의 결혼기피 현상까지 낳았고요. 불안감은 전반적인 인간관계의 유대감도 흔들고 있는데요.

바우만 = <리퀴드 러브>(Liquid Love, 사랑하지 않을 권리)에서 저는 우리가 점점 더 매우 부서지기 쉬운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고 썼습니다. 인간의 유대,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어울려서 파트너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만족을 느낄 때까지입니다. 만족한 기분이 사라지면, 같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항상 새로운 기회를 찾고 사용할 수 있죠. 그러나 여기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관계를 만들 때는 두 사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만, 그 관계를 깨는데는 한 사람의 결정이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결국 양쪽 파트너는 늘 불안 속에 살 거라는 뜻이죠. 인간의 유대는 이제 이런 계약 문구를 갖게 됐어요. ‘추후 알림까지만.’ 임시적인 거죠. 오늘날 혼자 사는 가구가 주거인구의 다수를 차지합니다.

안 = 개별화된 개인들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바우만 = 이는 자유화로 불리면서 등장한 규제 완화의 경향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을 연결하는 끈이 특정한 환경에 처하면서 옭아매는 힘이 약해지는 거죠. 50년 전에 포드나, 피아트, 닛산에 들어가면 40년은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안전한 조건이었죠. 오늘날 젊은이들의 꿈의 직장인 실리콘 밸리는 평균 고용기간이 8개월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라가 계산하기를 젊은이들 앞에 놓인 미래를 보면 노동 가능기간 동안 직업을 11번 바꿀 거랍니다. 한편으론 이동의 자유, 변화, 끌림의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불확실한 현실에서 안전감이 결핍된 것이죠. 실제 사회에서 우리가 성공했다고 느끼는 기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이어 새로운 성공으로 재확인되지 않으면 바로 낭패감에 빠지기에 일생동안 한 순간도 멈출 수 없게 되어요.

안 = 그래도 아직은 스펙을 더 잘 쌓으면 안전한 사회적 위치와 안정된 가정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바우만 = 노동시장이 매우 유연해졌습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말하길, “더 이상의 안정성은 없다. 이제 평생직장은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당신 나이였을 때 위대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조언하기를 일생을 거는 프로젝트를 만들라고 했어요. 그 당시는 무엇을 하고자 정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정확히 알았죠. 그 때의 세상은 매우 안정적이었으니까요. 몇 년 전, 제가 학생들한테 평생 과제에 대해 말했더니 크게 웃더군요. “교수님 당장 내년에 할 프로젝트라도 있으면 진짜 행복하겠어요”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는 참으로 혹독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공동체에서 담당했던 일들이 이제 개인에게 부과되고 있어요. 만약 당신이 실패하면 자신이 저지른 실수라고 책임을 느끼며 고통 받을 겁니다. 스스로에게 혐의를 씌우게 돼있어요. 재능이 충분하지 않았고 독창적이지 않았고 더 열심히 했어야 했고 좀 더 상냥했어야 했다고 책망합니다. 미안한데 울리히 벡을 다시 한 번 더 언급해야겠는데요. 그가 말하기를 “지금은 사회적으로 유발된 문제에 대해 개인이 해법을 찾기를 희망한다”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건데 책임은 개인에게 주어진다는 거죠. 하지만 개인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조절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건데 해결은 도시에 떠맡겨져 있죠.

안 = 농사도, 축산도 산업화되는 시절이라 규모를 키우지 못하면 손 털고 일자리가 많은 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화된 농업 때문에 케냐 농부들은 자기 밭을 내주고 커피농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고요.

바우만 = 세계화는 모든 곳에서 작동되고 있습니다. 세계화되기 전에 있던 기술들에까지 다 영향을 미치죠. 농사가 산업화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는 생계를 꾸리는 모든 방법들이 힘을 못 쓰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라서 도시들은 또 다시 세계화의 결과에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결국 밖에서 온 원인 때문에 지역과 개인이 고통을 떠안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의 뒤에는 ‘권력과 정치의 이혼’이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는 300년 동안 권력과 정치가 한 곳에서 결합되어 있었어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용불안, 소비환경 등 세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의 상호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수원시는 ‘생태교통 수원2013’ 행사를 열고 자전거 택시를 운행하며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모색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그문트 바우만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용불안, 소비환경 등 세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의 상호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수원시는 ‘생태교통 수원2013’ 행사를 열고 자전거 택시를 운행하며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모색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세계화 때문 상호의존적 상황
경쟁보다 협력해야 하는데 국가는 태생부터 협력과 멀어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단위가 서울·런던 같은 시 정부지요

안 = 권력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바우만 = 권력은 일이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욕망하는 바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안 = 정치는 무엇인가요?

바우만 = 정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실제로 40년 혹은 50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와 권력은 하나로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터레그넘’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사는 요즘은 권력이 지구 전체로 작용합니다. 금융이 세계화됐고 무역이, 거기에 무기교역에다 테러리즘까지도 세계화되었습니다. 모든 종류의 권력이 국가가 조절하는 영역 밖에 거주하죠. 세계화된 권력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주무를 수 있어요. 만약 어느 지역에서 원하는 대로 명령할 수 없다면 그 세력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겁니다. 그곳은 자본도, 일자리도, 산업도 없이 버려지겠죠. 이 상황에서 정치는 19세기에 하던 대로 전에 있던 영역 안에 머물고 있어요. 한국의 의회가 무언가 법적 효력을 결정한다 해도 그 구속력은 한국 안에서만 발휘될 뿐입니다. 국경 저 너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죠. 그런데 문제는 세상 다른 곳에서 뻗어 들어오고 있어요. 이렇게 권력과 정치가 이혼한 상태입니다. 저는 늘상 이와 같은 이슈에서 맴돌고 있어요.

안 = 정치적으로 제재를 만들어도 세계화된 권력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가 내에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선거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주머니가 텅 빈 계층조차 최상위 부자를 위해 투표합니다. 이는 대한민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보수정권이 경제를 잘 운영할 거라는 기대심리가 대중에게 있다고 합니다.

바우만 = 인간의 삶이 그렇습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어요. “비틀어진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직선은 없다. 이것이 인류이다.” 이 말이 당신을 실망시켜서 미안한데 이 반어적 문구, 또 당신이 말한 모순은 필연적으로 우리랑 영원히 함께할 겁니다. 인간의 조건은 고질적으로 양면적이죠. 제가 인생 말미에 도달한 결론이 있어요.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그 길은 똑바로 뻗은 직선이 아니었습니다. 젊었을 때 상상하길, 진보는 얽히고설킨 장애 없이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행진이라 여겼어요. 구부러진 비틀림 없이 말이죠. 그러나 실제 진보는 추(Pendulum)와 같습니다.

안 =진자의 운동이란 거죠. 앞으로 나간 만큼 반동의 힘을 받아 뒤로 밀렸다 다시 추동하여 나가는 거요. 한국에서는 1980~90년대에 거리로 나온 시민의 물결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변화시킨 민주주의 제도가 있죠. 그리고 21세기 ‘점령하라’ 운동이나 아랍의 봄, 터키 탁심공원의 열기는 지독히 세계화된 자본 아래 개별화된 개인들이 모여 요구하는 변화였습니다.

바우만 = 만약 시스템의 변화를 원한다면, 제 관심은 어떤 종류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데 있지 않고 누가 그것을 할 것이냐에 있습니다. 우리에겐 정치적인 조절로부터 벗어난 권력과 권력의 부족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통 받는 정치가 있어요. 정부는 좋은 의도로 유권자의 요구를 시행하려고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권력이 부족하니까요. 그리고 만약에 실행하려 한다면, 증권시장의 반격으로 즉시 무기력해질 겁니다. 이 시점에서는 권력과 정치 둘 다 작동될 조건을 만드는 게 필수입니다. 권력과 정치를 다시 재혼시키지 않으면 시스템을 바꿔내겠다는 꿈은 그 일을 할 단위의 부재로 무참히 깨져버릴 거예요.

안 = 방법이 있나요?

바우만 = 미국의 정치학자 벤저민 바버가 몇 달 전에 출간한 책이 있어요. <만약에 시장들이 세상을 통치한다면(If the mayors ruled the world)>입니다. 시장은 선거로 뽑혀 시를 통치하죠. 시보다 상급은 주정부, 연방정부, 국가이고 그 하부는 개별적 정치층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 등등이오. 도시는 이 둘 사이에 있고 상부와 하부 그룹 모두에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안 = 도시의 경우 국가보다 오히려 역사가 오래 됐네요. 한국에도 상당수가 왕조시대부터 도시기능을 활발히 해온 곳입니다. 나름의 정치와 권력이 결합된 진행방식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우만 = 그렇죠. 영토를 소유한 주권국가가 생긴 것은 베스트팔렌조약이 있던 1648년입니다. 종교전쟁을 끝내기 위해 유럽 대표들이 모여 영토 주권을 수용했죠. 벤저민 바버가 꽤 정확하게 말했는데요. 당시는 전쟁을 막기 위해 특정 지역 거주민의 국가 종속을 인정하는 영토주권 방식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세계화 때문에 상호 의존적인 상황이라 국가적인 접근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오늘날 글로벌 이슈로 벌어지는 상호의존적인 의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보다 협력해야 되는데 국가는 협력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자국의 영토를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수비하라고 생긴 거니까요.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위가 시 정부라는 겁니다. 이보다 낮은 단위들은 너무 약하고요. 서울, 런던, 뉴욕 같은 도시가 규모도 적당하고 인구밀도도 적당합니다. 지구상의 인구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어요. 개발도상국은 70%가 넘어요. 국가라는 단위는 복잡한 관료체계를 유지하면서 소통의 네트워크가 이웃 단위의 감성까지 끌어안을 수 없는 추상적인 체제인데 비해 도시는 지역공동체를 수용하는 소통을 하며 통합해 나가는 체제입니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안 = 시장들이 모이는 강력한 국제의회까지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1000여 지방정부가 모인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ICLEI)의 경우는 이미 로스앤젤레스 대기오염을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도 서울, 수원, 성남 등 많은 도시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바우만 = 만약 시장들이 뭔가 유용하고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본다면 자기 시에도 적용하려 나설 거고, 보다 효율적인 소통규모이기에 빠르게 실천될 수 있을 겁니다. 한 도시에서 시작된 긍정적인 변화가 트렌드가 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겁니다.

안 = 한국은 6월4일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회네요. 정책을 세심히 살펴 우리의 고통, 세계의 고통을 줄이도록 신중해야겠습니다.

바우만 = 오늘 제 말 가운데 유일한 예측이 21세기에는 우리들이 권력과 정치의 또 다른 결혼에 전념할 수 있으리라는 건데요. 인생의 아름다움은 매우 어려운 도전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기존 방식에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세대가 그 길을 발견하도록 제 모든 행운을 전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대안은 어딘가에서 여러분이 발견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창조해야 합니다. 기회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거니까요. 저는 그저 사회학자입니다. 카운슬러가 아니에요. 우리의 삶에 어떤 선택이 놓여있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 지그문트 바우만
“유럽 사상의 최고봉”… 사회과학 부문 다수 수상


영국 리즈의 자택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안희경씨와 얘기하고 있다.

영국 리즈의 자택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안희경씨와 얘기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89)은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이다.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1954년부터 바르샤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으로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났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가르치다 시온주의의 공격성과 팔레스타인의 참상에 절망을 느끼며 영국으로 이주해 1971년부터 리즈대학교에 재직했다. 1992년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을, 1998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했다.

1989년 <현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를 출간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사회 관련 책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2000년대에는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 시리즈 <Liquid Modernity(2000), Liquid Love(2003), Liquid Life(2005), Liquid Fear(2006), Liquid Times(2007)>로 폭넓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왕성한 저술을 하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엔 뒷마당에서 따온 딸기를 내주는 등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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