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은 무공천… ‘현실정치’ 못 넘은 ‘약속정치’

구혜영·구교형 기자

새정치연합, 명분보다 실리 선택… 비중 58% 호남 당심이 결정적

중진들 단결 호소, 김부겸은 “분노”… 혁신공천·경선 등 난제 산적

새정치민주연합이 10일 결국 기초선거 공천으로 회군(回軍)했다. 현실이 약속을 누른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무공천 철회로 선거 정국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기호 2번은 부활했고, 여야 ‘1 대 1’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야권은 무공천 혼란을 잠재웠지만 여진은 남아 있다. 향후 후보 공천과 경선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 무공천 철회가 논란의 종식이 아니라 당내 혼란의 시작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국민여론조사관리위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0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관련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국민여론조사관리위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0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관련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 ‘공천 회군’은 명분보다 실리

당심은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 당의 무공천 방침으로 최근 6·4 지방선거 완패론이 확산되는 추세였다. 여론 재수렴 결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셈이다. 당원투표·여론조사 결과는 ‘공천해야 한다’ 53.44%,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 46.56%였다. 권리당원만 참여한 당원투표는 ‘공천해야 한다’ 57.14%,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 42.86%로 나타났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오더가 먹히지 않는 호남에서 대거 공천 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호남 권리당원은 17만8000여명으로 전체 당원의 약 58% 비중이다.

국민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공천해야 한다’는 49.75%,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는 50.25%로 두 의견이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국민들은 명분(무공천)에 크게 동의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비켜갔다. 당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 내에서도 무공천을 지키라는 의견이 45% 정도나 된다”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주저앉은 무공천… ‘현실정치’ 못 넘은 ‘약속정치’

여론 재수렴 결과는 ‘무공천=새정치’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무관심하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당원 투표만 하더라도 전체 권리당원 35만2152명 중 8만9826명이 참여해 투표율은 25.5%에 그쳤다. 국민여론조사의 경우 ‘잘 모르겠다’는 응답률은 두 기관 종합 21.5%로 파악됐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갑수 대표는 “민감한 쟁점에 무응답이 20%를 넘겼다는 것은 무공천 쟁점이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자해적 개혁이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가 불공정하게 치러진다”는 뜻을 강조한 설문 문항도 공천 회군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 ‘환영·분노’ 엇갈린 새정치연합

당 내부는 여론 재수렴 결과를 놓고 찬반 대립으로 들끓었다.

당원들의 의견을 다시 묻자고 주장했던 문재인 의원은 “이제 두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오로지 지방선거 승리만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세균 의원은 “리더십의 위기니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지도부 책임론을 방어했다. 친손학규계인 조정식 의원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하나로 단결할 때”라며 화합을 촉구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안철수 대표가 도덕적·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김부겸 전 의원은 “중앙정치권과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계속 움켜쥐겠다는 결정이다. 분노를 금할 길 없다”고 비판했다. 대구시당 위원장인 홍의락 의원도 “새정치연합은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오전에 예정된 기자회견을 오후 4시에 열 정도로 충격이 커 보였다. 안 대표는 기자회견 전까지 국회 본관 당 대표실에서 나오지 않고 기자회견문 작성에만 몰두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선 안 대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야당이 선거에서 참패한다면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최소한의 힘조차 잃게 될 것이라고 (국민들은) 걱정했다. 그것이 정치개혁에 대한 내 생각과 엄중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며 여론 재수렴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 여야 일대일 대결구도 확립

새정치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을 철회하고 공천으로 선회하면서 지방선거는 여야 1 대 1 대결 구도가 선명해졌다. 게임 규칙도 단일 룰로 정리됐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정권견제론’을 호소할 수 있는 기반도 구축했다.

하지만 야권 입장에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선거 구도가 불명확해졌다. 새정치연합이 최전선에 세웠던 약속 프레임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체 전략이 시급하다. 공천과 경선관리 등 모든 선거 절차를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밀실 공천, 기득권 공천, 지분 공천이 횡행한다면 선거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안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기자회견에서 “내가 혁신 선봉장이 돼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겠다”며 혁신 공천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내비쳤다.

무공천을 지지하는 민심도 많은 편이다. 지지층 통합과 2030세대, 무당파 유입이 쉽지 않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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