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철·사무엘 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서 첫 호흡… 바이로이트의 두 남자, 세계 오페라팬이 주목하다

문학수 선임기자

노르웨이 선장·네덜란드인 역

연 “역할 위해 몸가짐 바꿔”

윤 “10년째 도전 멈추지 않아”

독일 바이에른주의 바이로이트는 인구 약 7만명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 음악팬들의 이목이 쏠린다. 7~8월 열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때문이다.

1876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주도로 창설된 이 음악제에서는 오로지 바그너의 음악극만 공연된다. 도시 인구에 거의 맞먹는 약 5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그래서 이곳은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불리며 해마다 바그너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올해에는 한국의 두 성악가가 화제다. 베이스 연광철(49·오른쪽 사진)과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43·왼쪽)이 26일 공연되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함께 오른다. 타이틀 롤인 ‘네덜란드인’에 사무엘 윤이, 또 하나의 중심 배역인 노르웨이 선장 ‘달란트’에 연광철이 캐스팅됐다. 이미 바이로이트에서 일급 성악가로 꼽히는 두 사람이지만 같은 작품에서 주역으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로이트에서 전화를 받은 연광철은 “나도 사무엘도 이곳에서 불리는 이름은 Youn”이라면서 “바이로이트 사람들은 Youn이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줄 안다”며 웃었다. 지난 8일 연습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연광철·사무엘 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서 첫 호흡… 바이로이트의 두 남자, 세계 오페라팬이 주목하다

베이스 연광철은 현지시간으로 오전 10시에 이미 연습실에 도착했다. 연습 시작까지 아직도 2시간이 남았지만 일찌감치 혼자 나와 목을 풀면서 악보를 보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워밍업하고 있어요”라는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악가로서의 자기 관리, 작품에 대한 준비에서 누구보다 철저한 면모를 느끼게 하는 말이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세 작품을 거의 동시에 공연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외에 <탄호이저>의 헤르만 영주 역과 <발퀴레>의 훈딩 역으로도 무대에 선다.

“바이로이트에서 세 개의 역할을 맡는 경우는 드물죠. 옛날에는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많아야 두 가지 역할이거든요. 저는 이번 축제에서 4주 동안 16회 공연을 합니다. 좀 많죠? (웃음)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역할만 생각해요. 행동과 몸가짐을 전부 바꿉니다. 일상적인 일들, 예를 들자면 밥을 먹거나 사람들 만나 인사하고 대화하는 것까지 그날 역할을 염두에 두고 일거수일투족을 다 바꿔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달란트 선장은 사업가적 스타일의 캐릭터로 표현할 생각이고요, <발퀴레>에서는 전쟁의 느낌, 사람을 죽이는 거친 악역인 ‘훈딩’을 보여줘야 합니다.”

세계의 주요 오페라 무대 중에서도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연광철은 1996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추천을 받아 첫발을 내디뎠다. 첫 역할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 등장하는 야경꾼. 그야말로 단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지로 향하는 계단을 꾸준히 올랐고 2008년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 역으로 마침내 흔들리지 않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지난 18년을 이렇게 돌아봤다.

“바이로이트는 저에게 시험의 무대였죠. 바그너의 손자인 볼프강 바그너(1919~2010)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이곳은 젊고 유능한 가수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무대였어요. 작은 역에서 시작해 점점 큰 역할을 맡으며 성장한 겁니다. 여기서 발판을 굳히고 나니까 유럽의 오페라극장에서 프러포즈가 잇따르기 시작했어요.”

그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함께 공연할 사무엘 윤에 대해 “앞으로의 활약이 대단히 기대되는 동료”라고 평했다. 그는 최근 국립오페라단 단장직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저는 연주하는 사람이잖아요. 국공립 단체를 맡기에는 경륜이 부족합니다. 한국의 음악 발전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하지만 국립오페라단은 민간오페라단처럼 운영되고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 단장직을 맡을 순 없죠. 또 예술단체는 정치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무엘 윤과 통화가 이뤄진 시각은 현지시간으로 오후 3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연습이 막 끝난 시간이었다. 대기실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연습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네덜란드인’은 이제 바이로이트에서 사무엘 윤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2012년부터 3년 연속 네덜란드인으로 무대에 선다. 그만큼 성공적인 열연을 펼쳤다는 방증이다. 뉴욕타임스는 사무엘 윤의 연기에 대해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적 고통을 느끼게 하는 네덜란드인”이라고 평했다.

“바그너 오페라는 100% 이뤄내는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면 할수록 그런 느낌이 들어요. 게다가 바이로이트 무대는 유난히 긴장이 됩니다. 제가 베를린이나 하노버에서도 이 작품을 했지만 바이로이트는 좀 더 특별해요. 관객들의 수준 때문이죠. 바그너 오페라에 대해 전문가적 식견을 갖췄죠.”

사무엘 윤은 2004년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추천으로 바이로이트에 입성했다. 올해로 꼭 10년째다. 첫 무대는 <파르지팔>의 성배기사 역. 한마디로 ‘지나가는 역할’이었다. 사무엘 윤은 “그 작은 단역을 4년이나 했다”면서 “그래도 더 큰 역할에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속 오디션에 지원했습니다. 2007년에 드디어 <로엔그린>의 헤어루퍼 역을 받았어요. 2010년부터 그 작품을 했죠. 올해까지 5년째예요. 네덜란드인과 더불어 저의 주요 캐릭터인데 이번에도 두 작품을 다 합니다.”

그는 바이로이트에서 활약하는 한편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 전속가수로 활동 중이다. 쾰른에 발을 디딘 것은 1999년. 어느덧 15년째 그곳에서 활약하면서 이제 쾰른의 오페라계를 대표하는 성악가로 자리 잡았다. 지난 6월에는 쾰른 시의회로부터 ‘오페라 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독일어를 못했어요. 독일의 극장 성악가는 월급도 아주 적었죠.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인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이 없었다면 아마 버티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쾰른은 저에게 제2의 고향입니다. 지금도 가족과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어요. 바이로이트는 제가 성악가로서 도약한 곳,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랑을 받은 곳이죠. 그리고 연광철 선배는 저보다 앞서 이곳을 헤쳐나간 분입니다.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그의 경험과 연륜, 무대에서의 카리스마 같은 것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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