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 차사고 운전자 ‘보험료 폭탄?’

윤호우 기자

·연 60만원 내는 보험가입자 사고 2번 나면 보험료 23만5000원 올라

앞으로 자동차 보험료 폭탄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보험업계가 자동차 보험료 산정기준을 25년 만에 점수제에서 사고건수제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무사고 운전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소비자단체는 소액 사고 운전자에게 보험료를 과도하게 할증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 사이에 ‘자동차 보험료 폭탄’을 둘러싼 입씨름이 한창이다.

한 자동차 정비업체에 수리를 의뢰한 사고차량들이 대기해 있다. / 김영민 기자

한 자동차 정비업체에 수리를 의뢰한 사고차량들이 대기해 있다. / 김영민 기자

사고 점수제에서 건수제로 변경 추진

7월 11일 서울 여의도 보험개발원에서 금융감독원 주최로 ‘자동차보험 할인·할증제도 개선 간담회’가 열렸다. 지난해 11월과 지난 2월에도 똑같은 주제로 열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업계에서는 새로운 제도 도입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간담회가 열린 당일 금융소비자연맹은 자동차 보험료 건수 할증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손보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건수 할증제는 60%가 넘는 소액 사고 운전자에 대해 보험료를 과도하게 할증시켜 소비자들의 자비 처리를 유도하거나 보험료를 더 내게 해 손보업계의 이익만 늘리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현행 제도는 사고 내용별로 1점에서 4점까지 할증해 1점당 1등급 할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새로 시행될 건수제는 사고 1건당 3등급씩 최대 12등급(4건 이상)까지 할증된다. 단 50만원 이하 소액 사고의 경우 2등급만 할증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 특수보험팀 원일연 팀장은 “소액 사고의 경우 2등급 할증으로 할지, 아니면 1등급 또는 3등급 할증으로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등급 할인 대상은 현행 제도에서는 사고 후 보험료 할증 시 3년간 무사고여야 1등급이 할인되지만, 새로운 제도에서는 사고 후 보험료 할증 시 1년간 무사고이면 1등급이 할인된다. 금감원은 소액 사고나 첫 사고, 생계형 사고 등에 대해서는 사고 건수제도의 예외 적용을 둘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감원 원 팀장은 “지난 11일 간담회는 제도 변경에 대한 좋은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면서 “금감원에서는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 팀장은 “제도 변경은 법안 또는 약관 개정이 아니라 보험개발원에서 요율 결정을 신고하면 금감원에서 신고를 받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사고금액에 상관없이 무조건 1건당 3등급을 할증하면 보험료가 약 21% 인상되고 이 할증이 무서워 사고가 나도 수리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차량을 운행하거나 보험 처리 대신 자비 처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4건 사고 발생 시 할증은 82%까지 늘어난다.

보험개발원이 지난 2월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자동차보험 정책토론회 설명자료’에 의하면 현행 60만원을 부담하는 소비자의 경우 50만원 이하 자기 차량 손해사고가 한 건 발생했을 때 2등급을 할증하면 보험료는 다음해 6만4000원(기존 제도 시 0원)이 인상된다. 사고 2건이 발생하게 되면(50만원 이하 물적사고 1건, 대인 부상 13급 1건 기준) 다음해에 23만5000원(기존 제도 시 3만8000원 인상)의 보험료가 더 인상된다.

정비업계는 소비자단체와 마찬가지로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2011년 자기부담금이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뀌었고, 여기에다 사고 건수제로 바뀔 경우 소비자들에게 이중의 부담을 안긴다는 것이다. 정비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전원식 대전 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이사장은 “이미 3년 전에 정률제를 만들어 소비자의 부담을 사실상 늘려놓고 또다시 건별 할증을 하겠다고 하면 소비자들만 이중으로 부담을 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정률제로 바뀐 후 보험 가입자는 최저 20만원에서 최고 50만원까지 자기부담금을 내야 되기 때문에 만약 50만원짜리 수리를 하게 되면 보험회사에서 30만원을 내고 보험가입자가 20만원을 내게 돼 있다”면서 “이 돈을 영세 정비업체에서 받도록 떠넘기는 바람에 정비업체에서는 보험 가입자들에게서 ‘왜 보험에 들고도 돈을 내야 하나’라는 불만만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비업계에서는 제도를 바꿀 경우 자비 처리가 늘어나거나 아니면 부적격 정비업체에서 싸게 수리하는 편법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손보사들 보험료 투자로 막대한 이익

보험개발원의 자료는 현장의 목소리와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자동차보험 정책토론회 설명자료’에 의하면 “사고가 발생한 해를 포함해 3년간 소비자 부담을 비교한 결과 현행 제도든 바뀌는 제도든 자비 처리가 가장 불리(50만원 사고 기준)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반된 주장에 대해 금감원 원일연 팀장은 “할인·할증의 단계가 서로 다르고 총수리비, 향후 사고 여부 판단 등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어떤 제도에서 자비 처리가 더 유리하다, 불리하다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제도가 바뀌게 되면 업무용 차량을 자주 운행하는 중소기업에는 보험료 부담이 가중된다. 소액 사고 시에는 보험 가입자의 부담이 더욱 커진다. 특히 대형 사고를 낸 운전자보다 경미한 사고를 낸 운전자의 보험료 할증이 많아지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금융소비자연맹의 이기욱 보험국장은 “자동차보험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경미한 사고임에도 과다하게 할증시켜 소비자의 자비 처리를 유도해 결국에는 보험업계만 배불리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금융감독원의 2013년 회계연도(4~12월) 자료에 의하면 손해보험사들의 당기순이익은 1조5761억원이다. 보험영업이익은 1조396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보험료를 받아 채권·주식·부동산에 투자해 버는 이익이 3조7383억원이었다. 손해보험사 중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14개 회사의 자동차보험 영업이익은 7960억원 적자였다. 자동차보험 자체로는 손해이지만 손보사는 보험료를 자산으로 운용해 자동차보험의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대다수 무사고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경감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전체 80%를 차지하는 무사고 차량 1385만대에 3.42%의 절감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사고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부담할 보험료의 일부를 무사고자 등 사고 위험이 낮은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문제를 새로 도입될 제도가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보험업계에서는 또 제도 변경으로 인해 보험사의 보험료 수입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으나 향후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사고 예방 촉진에 따른 사고율 하락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보험업계의 주장에 대해 전원식 대전 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이사장은 “사고가 언제든 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에 드는 것”이라면서 “보험에 들고도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면 보험의 의미가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의 이기욱 보험국장은 “보험사에서는 제도를 변경해도 이득이 없다고 하지만 보험 가입자들이 소액 사고 시 자비 처리를 하는 게 더 유리하다면 보험 처리 건수가 줄게 되므로 보험사의 수익이 자동으로 늘게 되는 것이고, 소비자들은 자비 처리로 돈을 더 지불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Today`s HOT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2024 파리 올림픽 D-100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