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전사들, 우산시위대, 가자지구의 아버지… 2014 세계 10대 뉴스 속 인물

정유진 기자

2014년 한 해 동안 세계는 질병과 내전, 유혈충돌로 몸살을 앓았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엔 ‘신냉전’의 전선이 그어졌고, 중동에선 유례없이 잔혹한 극단세력이 준동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화를 위해 싸운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치사율이 50%가 넘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맞선 의사들은 인도주의의 참모습을 보여줬고 미국과 쿠바 지도자는 50여년 만에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올해 세계를 움직인 사람들을 되새겨본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자 ‘국경없는의사회’ 등의 의료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서아프리카로 달려갔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자 ‘국경없는의사회’ 등의 의료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서아프리카로 달려갔다.

(1) 에볼라 전사들 |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서아프리카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가족들마저 감염자를 버리고 떠났고, 시신은 거리에 방치돼 썩어갔다. 세계 곳곳에서는 아프리카 관련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됐고, 서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호텔 투숙을 거부당하는 등 인종차별 문제로 확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서아프리카로 목숨을 걸고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사마리아인의 지갑’ 의료진을 비롯해 아프리카 현지 의사와 간호사, 구급차 운전기사 등이 그 주역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많은 의사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의사들은 눈을 뜨자마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올해의 인물’로 에볼라 의료진을 꼽은 미국 주간지 타임은 “그들 덕분에 인류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며 “그들은 총 대신 영웅적인 가슴으로 에볼라와 전쟁을 치렀다”고 평했다. 안타깝게도 에볼라 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서아프리카 에볼라 사망자가 7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바이러스 공포 때문에 성탄절과 연말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금지됐다.

에볼라 전사들, 우산시위대, 가자지구의 아버지… 2014 세계 10대 뉴스 속 인물

(2) 오바마와 라울 | 미·쿠바 국교 정상화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만나 악수를 나눴다. 외신들은 ‘역사적인 악수’ ‘만델라의 마지막 선물’이라고들 했다. 그후 1년 만에 미주 대륙의 마지막 남은 냉전이 종식됐다. 12월17일(현지시간) 오바마는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전격 선언하면서 “쿠바 봉쇄 정책은 실패했다”고 자인했다. 라울은 같은 시각 대국민연설에서 “미국과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함께 해결책을 찾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라울은 형인 피델과 마찬가지로 1959년 쿠바혁명을 이끈 좌파 게릴라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2008년 2월 의장에 취임하면서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경제를 개방했고 해외투자 유치에도 나섰다. 오바마는 쿠바의 변화에 적극 호응했다. 올해 내내 ‘집권 2기 2년차 신드롬’을 겪으며 곤욕을 치렀던 오바마에게 쿠바와의 화해는 최대의 승부수였다. CNN이 24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경제호전과 쿠바 국교 정상화 덕에 오바마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48%에 이르러, 2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과 쿠바의 악수 후 지구상에서 미국과 적대하는 국가는 북한만 남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3) 블라디미르 푸틴 | 서방과의 갈등과 ‘신냉전’

‘강한 러시아’ 시대를 연 서구의 대항마인가, 세계를 신냉전으로 몰아넣은 차르인가. 올 한 해 격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푸틴이 있었다. 지난 3월 푸틴은 러시아군 기지가 있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반군을 러시아가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 속에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고조됐고 지난 7월 말레이시아항공 민항기 격추사건으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국제유가 하락으로 루블화 가치가 추락하고, 서방의 경제제재가 힘을 발휘하면서 푸틴은 지금 사면초가에 몰렸다. 푸틴은 러시아의 경제난이 “서방의 책임”이라고 맹비난했고, 유럽으로 가는 농산물 수출을 중단하는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계속되면 민심이 돌아설 수도 있다. 이미 모스크바 등 곳곳에서 사재기가 일어나고 있다. 내년은 푸틴에게 가장 험준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인질들을 잇달아 참수하고 학살을 자행, 중동을 다시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인질들을 잇달아 참수하고 학살을 자행, 중동을 다시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4) 지하디스트 | 이라크·시리아 내전

탈레반보다 악랄하고 알카에다보다 잔인했다. 소수민족·종파를 학살하고 서방 인질들을 잇달아 참수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등장은 중동을 또 다른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지난 6월 시리아 내전에 가담한 IS는 시리아와 이라크에 걸친 지역에서 ‘독립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다시 이라크의 수렁에 발 딛기를 꺼렸던 미국 오바마 정부는 자국 기자들이 잇달아 끔찍하게 살해되자 결국 이들에 맞선 공습을 시작했고, 지금껏 개입하지 않았던 시리아로도 공격을 확대했다.

유럽과 걸프 국가들도 연합군을 결성해 IS와의 전쟁에 합세했으나 테러 공포는 오히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프랑스, 호주, 영국 등 80여개국에서 1만5000명이 국경을 건너 시리아로 가 IS에 합류했다.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범죄도 늘고 있다. 캐나다 오타와 의회 총격 사건, 호주 시드니 카페 인질극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프랑스에서는 사흘 연속 이슬람과 연관된 공격 3건이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은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에 우산으로 맞서며 ‘우산혁명’을 일으켰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은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에 우산으로 맞서며 ‘우산혁명’을 일으켰다.

(5) 우산시위대 | 홍콩 민주화 시위

9월28일부터 75일간 지속된 홍콩 민주화 시위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래 중국의 일당체제에 대한 가장 대담한 도전이었다.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에서 친중국계 인사로 후보를 제한하겠다는 중국의 결정이 도화선이 됐으나 그 이면에는 소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젊은층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수십만 시민이 정부청사 주변 애드미럴티에 모여들었다. 17세 고등학생 조슈아 웡은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를 우산으로 막아내자고 제안해 ‘우산혁명’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시위대는 철수했지만, 젊은 세대가 홍콩 개혁의 주축으로 부상했고 홍콩은 중국과 같을 수 없다는 시민들의 정체성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우산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성탄절을 앞둔 24일에도 애드미럴티와 몽콕 등에서 시민 수백명이 거리행진 등 산발적인 시위를 했다고 빈과일보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을 맞은 마카오에서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에게 사살되면서 흑백 갈등과 소요가 일어났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에게 사살되면서 흑백 갈등과 소요가 일어났다.

(6) 마이클 브라운 | 미 퍼거슨 흑인 사살과 인종 갈등

8월9일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머리와 가슴에 6발의 총을 맞고 숨졌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던 꿈많은 청년은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총을 쏜 백인 경관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브라운은 당시 비무장 상태였다. 브라운의 죽음은 민권법 제정 50주년을 맞은 ‘흑인 대통령’ 시대의 민낯을 드러냈다. 20여년 전 로드니 킹을 구타해 로스앤젤레스 소요를 촉발했던 백인 경관들처럼, 브라운을 쏜 경찰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억눌렸던 흑인들의 분노가 거리를 뒤덮었다. 미국에서는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숨질 확률이 백인보다 21배 높고, 흑인 실업률이 백인보다 2배 이상 높다.

백인 경관에 의한 흑인들의 죽음은 계속됐다. 뉴욕에서는 에릭 가너라는 남성이 백인 경찰에게 목이 졸려 숨진 뒤 ‘숨을 쉴 수 없다’는 구호를 내건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퍼거슨과 인접한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지난 23일 또다시 백인 경찰이 18세 흑인 안토니오 마틴을 사살했다. 뉴욕에서 흑인의 경찰 ‘보복 살해’가 일어나면서 인종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파키스탄탈레반(TTP)은 페샤와르의 공립학교를 공격, 140여명을 학살했다. 그중 130여명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파키스탄탈레반(TTP)은 페샤와르의 공립학교를 공격, 140여명을 학살했다. 그중 130여명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7) 마울라나 파즐룰라 | 파키스탄탈레반의 학교 공격

전쟁과 테러에도 최소한의 윤리는 있었다. 힘없고 약한 어린이들이 적어도 1차 목표물이 되어선 안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마울라나 파즐룰라가 이끄는 파키스탄탈레반(TTP)은 이 믿음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지난 16일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의 군 부설 공립학교를 공격해 12~16세 어린이 130여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것이다. 파즐룰라는 정부군이 TTP 소탕전을 벌이자 그 보복으로 군인 자녀 등 아이들에게 총구를 돌렸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른 유례없이 악랄한 이번 테러에 세계 각국 정상과 유엔은 물론, 알카에다 등 다른 테러단체들마저 “무차별 어린이 학살은 안된다”고 비난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테러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500여명을 집단 처형하겠다고 하는 등 보복에 나서고 있어, 피의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어린이들을 비롯해 숱한 민간인들이 숨졌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어린이들을 비롯해 숱한 민간인들이 숨졌다.

(8) 가자지구의 아버지 |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한 아버지가 부상한 자식을 안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잿더미가 된 거리를 달린다. 또 다른 아버지는 숨진 아이 앞에서 머리를 감싸쥔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7월8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을 시작한 후 50일 동안 외신 사진에는 자식을 잃은 가자지구 아버지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넘쳐났다. 커피숍과 모스크가 폭격 당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어린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전체 사망자 2000여명 중 4분의 1이 넘는 538명이 어린이였다.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대가는 이스라엘에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유럽 국가들은 잇따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했으며, 이스라엘 상품 보이콧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외신들은 “이스라엘이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졌다”고 평했다.

유럽우주국(ESA)의 탐사선 로제타에서 발사된 탐사로봇 ‘필레’가 사상 처음으로 혜성에 착륙했다.

유럽우주국(ESA)의 탐사선 로제타에서 발사된 탐사로봇 ‘필레’가 사상 처음으로 혜성에 착륙했다.

(9) 로제타호 ‘필레’ | 사상 첫 혜성 착륙

‘쿵’ 소리는 2초에 불과했지만, 이 순간 우주 개발과 연구의 새 장이 열렸다. 유럽우주국(ESA)이 2004년 발사한 우주탐사선 로제타호의 탐사로봇 ‘필레’가 11월12일 혜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하는 순간 전 세계 과학자들이 환호했다. 약 10년 동안 48억㎞를 비행한 끝에 도달한 곳이었다. 필레의 성공은 우주탐사 경쟁에 나선 다른 나라들을 더욱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우주 개발의 새 축으로 등장한 중국, 인도는 달 탐사에 나섰다. 일본은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2를 발사했고 미국은 화성 탐사선 오리온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바야흐로 제2의 우주탐사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됐다.

에볼라 전사들, 우산시위대, 가자지구의 아버지… 2014 세계 10대 뉴스 속 인물

(10) 재닛 옐런 | 미 저금리 기조와 경제회복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첫 여성 수장인 재닛 옐런의 마법이 통했다. 뉴욕 증시에 산타랠리가 시작된 것이다. 저유가 쇼크와 러시아의 루블화 위기 등으로 하락하던 미 증시는 12월17일 옐런의 기자회견 후 급반전됐다. 옐런은 ‘상당 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던 기존의 입장을 ‘인내심을 갖고’로 교체했을 뿐이었다. “저유가는 오히려 미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양적완화가 종료되고 유럽 경제가 출렁일 때마다 옐런은 적절한 언어의 마술과 일관성 있는 태도로 안정적인 첫 해를 보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진짜 시험은 내년부터다. 미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만큼, 금리 인상 시기도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옐런은 금리 인상이 세계에 미칠 충격파를 슬기롭게 관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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