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사냥 나가기 전, 부시맨들은 왜 서로 화살을 교환했을까

한윤정 선임기자

▲ 불평등의 창조…켄트 플래너리·조이스 마커스 지음, 하윤숙 옮김 | 미지북스 | 1004쪽 | 3만8000원

[책과 삶]사냥 나가기 전, 부시맨들은 왜 서로 화살을 교환했을까

항공기 1등 객실에서 마카다미아넛을 잘못 서빙한 죄로 오너 부사장 앞에 무릎을 꿇은 사무장과 스튜어디스.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정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천부적 인권 개념은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하면서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인간 사회는 언제부터, 왜 불평등해졌나.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가장 유명한 답변을 내놓은 이는 에밀 루소다. 1753년 가을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가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주제의 논문을 현상공모했을 때 루소는 100쪽짜리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점점 수가 많아진 부유한 집단이 가난한 집단에게 사회 계약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단한 파급력을 가졌던 이 논문은 프랑스 혁명의 도덕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미시건대 고고학과 동료 교수인 두 저자가 인간 불평등이라는 주제에 정면 도전했다. 이들은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보여주는 고고학과 현 인류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인류학을 종횡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불평등의 변천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책을 집필했다. 또 가장 중요한 전제는 루소의 길을 따라 불평등이 “자연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 즉 불평등의 탄생과 심화는 “인간 집단의 고유한 사회논리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저서는 지금까지의 관련 논의를 종합,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흔히 불평등의 토대인 계급은 수렵채집사회가 농경사회로 발전하면서 생긴 잉여생산물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저자들은 이런 자연적 조건에다 뛰어난 개인의 야심, 집단 간의 경쟁을 추가한다. 태어날 때부터 힘, 민첩성, 지능 면에서 우월한 개인은 잉여생산물을 차지하고자 하는 야심을 품는다. 또 집단 간의 경쟁에서 집단의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회, 즉 불평등이 제도화된 사회가 다른 사회에 정복되지 않고 자치권을 지킬 수 있다는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인간은 빙하시대인 기원전 15000년 무렵부터 경쟁자를 멸종시킨 뒤 주요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 시기의 인류 조상은 소규모 집단으로 먹이를 찾아다니며 살았고, 나눔이나 이타심을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그러나 기원전 2500년 무렵이 되면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진정 평등한 사회는 몇몇 지역에만 한정되기에 이른다.

초기 인류가 평등을 유지한 방식은 지금 관점으로도 신선하다. 남아프리카의 쿵족(부시맨족)은 유능한 사냥꾼이 실력자로 부상하는 일이 없도록 서로 자신의 화살을 교환했다. 사냥감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을 때 그것이 누구의 화살인지 감추고 공동작업의 결과로 간주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한 개인의 우월의식을 막기 위해 유머를 이용했다. 한 사냥꾼이 커다란 동물을 잡아 끌고 가는 동안 사람들은 그를 조롱함으로써 사냥감을 독차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평등을 향한 사회논리의 조작은 점점 광범위하게 이뤄졌고 그 방식도 다양했다.

대표적인 방식은 신의 후손을 자임하는 것이다. 위계서열이 없던 수렵채집사회에서 일인자는 초자연적인 존재이고, 이인자는 조상의 영혼이었다. 인간은 신과 조상 영혼의 보호 아래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믿었다. 이때 잉여생산물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가진 뛰어난 개인, 가계는 자신이 신의 후손이라고 동료들을 설득한다. 자신이 사냥을 잘하는 건 신이 자신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동료들이 이를 받아들이면 그 개인과 후손은 족장 가계로 등극한다.

많은 사회는 이처럼 계급이 생기고 이것이 세습되면서 이전의 평등사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도 있다. 버마 고지대의 카친족 사회는 세습적 불평등이 등장했음에도 주기적으로 불평등을 없애고 세습지위가 없는 평등 사회로 회귀했다. 개인이 야심을 발휘해 명망을 축적할 수 있는 성과 기반 사회이면서도, 이것이 세습되는 불평등 사회가 아니라 평등 사회가 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를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성과 기반 사회가 가진 대단한 안정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 행위자 중 일부 집단이 더 큰 특권을 얻기 위해 싸운 반면 다른 이들은 가능한 한 모든 힘을 모아 특권에 저항했다는 사실”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의 집필 취지는 점차 명료해진다. 불평등을 주기적으로 없애는 것이 지속가능한 인류를 위한 조건이며 과거로부터 이를 배우자는 것이다. 지배계급이 사회논리를 교묘하게 조작함으로써 불평등을 자연화한 방식을 살펴보면, 이 방식을 거꾸로 풀어내 평등으로 회귀하는 길을 알 수 있다는 취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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