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국립묘지 묻힌 유일한 독립투사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남북 국립묘지 묻힌 유일한 독립투사

두 묘지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1934년 양세봉이 일본 밀정에게 총맞아 숨지자 부하들은 그의 시신을 환인현의 고구려성 아래 삼성자에 가매장했다. 그러나 직후 일본영사관은 양세봉의 가묘를 파헤쳐 그의 목을 잘라다 통화 시내에서 효시했다. 뒤늦게 조선혁명군이 양세봉의 목을 추적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해방 뒤인 1960년 북한은 양세봉의 무덤을 평양 근교로 이장한 후 1986년 9월 평양 애국열사릉에 다시 안치했다. 앞서 1946년 북한은 양세봉의 처 임재순과 아들 양의준을 평양으로 불러 살도록 했다.

북한이 이처럼 양세봉을 우대하는 것은 양세봉과 북한 김일성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남만주 시절 양세봉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며, 말년에는 김일성의 유격대부대와 항일합작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 부대간 합작은 결렬됐지만, 조선혁명군 해체 후 상당수 대원들이 동북항일연군으로 들어갔다.

현충원에 양세봉의 묘지가 안장된 것은 1974년. 1962년 양세봉 등 조선혁명군 관계자들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고 애국지사 묘역 조성이 논의되면서 양세봉의 묘지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유골은 모셔져 있지 않은 허묘(虛墓)다. 국내에 유족이 없는 관계로 다른 묘비와 달리 ‘공훈판’에 아무런 내용도 쓰여 있지 않는 게 특징이다.

〈조운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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