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관동군 지하요새 극비 건설

둥닝 요새 박물관 모습.

둥닝 요새 박물관 모습.

일본 관동군이 2차대전 당시 중국·구소련, 중국·몽골 국경지대에 극비리에 대규모로 건설했던 지하 요새의 전모가 밝혀졌다. 이 요새에 주둔하는 군인들을 위해 한국인 위안부도 대거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항일전쟁사 연구회 소속 학자들은 14일 일본군이 1934년 5월부터 패전 직전인 45년 8월까지 14년 동안 지린(吉林)성 훈춘(琿瑃)에서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하이라얼에 이르는 국경지대에 총 19곳, 4,700㎞에 이르는 요새를 건설했다고 밝혔다. 지하에 건설한 지하 요새도 총 연장 1,700㎞에 이르고 있다. 투입된 공사비는 당시 돈으로는 천문학적인 규모인 5억위안(약 6백억원).

저우아이민(周艾民·49) 항일전쟁사연구회 부회장 등 학자들은 89년부터 헤이룽장성 일대 요새 발굴 작업에 나서 얻은 성과를 ‘중국 침략 일본군 요새 사진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지난 10일부터 하얼빈의 한 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일본군은 공사기간 내내 이를 극비로 취급한 데다 2차대전 패전 직후에는 관련 자료를 대부분 소각처리해 학자들은 관련 연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 최대 군사요새를 목표로 건설했던 중국 헤이룽장성 둥닝현의 둥닝요새 입구.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 최대 군사요새를 목표로 건설했던 중국 헤이룽장성 둥닝현의 둥닝요새 입구.

하얼빈시 사회과학원 진청민(金成民) 731연구소장은 “11년 동안의 요새 건설 기간중 일본군은 3백20만명의 중국인 근로자를 동원했으며 이중 1백여만명이 건설 과정이나 건설 직후 숨졌다”고 말했다.

상당수 근로자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공사가 끝나면 회식을 빌미삼아 제공한 식사에 탄 독약이나 예방 주사라는 이유로 독극물 주사를 맞은 뒤 숨졌다. 일부는 일본군의 구타로 사망해 개의 먹이가 되거나 ‘만인갱’과 같이 1만명 정도가 단체로 생매장된 경우도 있다고 학자들은 설명했다.

일본군이 아시아 최대 군사기지로 만들고자 했던 둥닝(東寧)현의 둥닝 요새는 구소련 국경을 마주하면서 총길이 110㎞, 폭이 50㎞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153㎞ 떨어진 둥닝에 일본군은 10개의 산에다 모두 지하 요새를 구축했다. 일본이 국경지대에 대규모로 요새를 건설한 것은 구소련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유사시 소련에 대한 공격용으로 마련한 것이다. 독일군의 침략에 대비해 프랑스가 건설한 ‘마지노선’에 빗대 일본인들은 ‘동방의 마지노선’이라고 떠벌이기도 했다.

日 관동군 지하요새 극비 건설

헤이룽장성 후린(虎林)요새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45년 8월8일 러시아 홍군이 대일 선전포고를 한 뒤 공격하자 끝까지 맞서다 8·15를 훨씬 넘긴 8월27일 항복했다. 2차대전 최후의 전투였다.

〈하얼빈|홍인표특파원 ip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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