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들에게 별은 희망이죠”

그의 작업실 한쪽엔 아주 특이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아픈 이들에게 별은 희망이죠”

가족들의 머리를 X레이로 찍은 사진이다. 가족뿐 아니라 강아지에서부터 금붕어 MRI의 사진, 심지어 축구공을 발로 차는 순간까지 쭈욱 걸려 있다.

“보통 X레이 사진 하면 무서운 생각밖에 나지 않지만 이렇게 하면 정감이 느껴지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 정태섭 교수(52). 그는 별을 헤는 의사다.

그의 작업실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별 사진이다. 눈길 닿은 벽마다 마치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별이 초롱초롱하다. ‘별’. 어쩌면 땅의 마지막 생명이 가쁜 숨을 내쉬는 곳이 병원이고 그 병원을 떠난 아이들은 하늘의 별이 되어 뜨는 것일까. 그래서 그는 별을 보는 것일까.

그가 별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 병원 강당에 ‘별보기 교실’을 열었다. 그와 별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초등학교 때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온 그를 도시아이들은 ‘시골뜨기’라며 따돌렸다. 그때 “별을 봐. 마음이 가라앉을 거야”란 말이 들려왔다. 지금 그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음성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음 붙일 곳 없던 그에게 그날 이후 별은 친구가 되고 사랑이 되고 동경이 됐다. 그러다 잊었다. 세상 삶에 바빴던 그 스스로 별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해지던 어느때. 병상에 누워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그는 그 친구의 별을 떠올렸다.

당장 돈 1천만원으로 굴절 망원경을 마련해 병의 고통에 찌들린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예상했겠지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뿐 아니라 긴 투병생활에 지친 환자들도 망원경 렌즈에 눈을 맞추려 했죠. 제대로 ‘필이 꽂힌’ 거예요.”

밤하늘의 자그마한 별을 보면서 아픔을 잊는 아이들, 그 부모들. 그래서 그는 그날 이후 별밤잔치를 열기 시작했다. 그게 10년이다.

95년부터 별보기는 병원의 가장 큰 연례행사가 됐다. 처음에는 병원 행사였지만 점차 그 소문과 울림과 기쁨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많을 때는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별을 보는 날만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 환자들도, 도시에 살면서 제대로 별을 보지 못했던 아이들도 모두 하나가 되어 꿈을 키우는 날이 됐다.

“별보기 행사에 참가한 환자 중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오래 입원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환자는 정신 상태도 흐리고 말도 잘 못했는데 망원경으로 목성을 보여주자 갑자기 얼굴 표정이 밝아지더니 더듬거리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이 마술이라도 부린 것 같았지요. 환자들과 아이들이 별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까지 밝아졌습니다.” 그 기쁨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의 가슴에 충만한 기쁨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는 별보는 기쁨과 환희를 이렇게 어눌하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MBC에서 어린이 과학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인 그는 “쉰살을 넘은 나이에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아이들에게 별과 같은 아름다운 마음과 고통을 잠시라도 잊는 행복을 전할 수 있다면…”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뒤에 그가 할말은 무엇인지 알 만했다.

어느 시에서 읽은 것 같다. ‘어린 영혼은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어서 뜬다’고. 인생의 기쁨과 슬픔도 모른 채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 그가 1천만원짜리 망원경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하늘의 별이 아니라 이 땅에서 병마를 이기고 살아가야 할 아름다운 생명, 별이 아닐까.

〈글 김윤숙·사진 김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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