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국공’논란

(상)공정과 불공정 사이 부정당한 삶의 노력

이효상·정대연·심윤지·김희진 기자

정규직화를 바라보는 시선

장기호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위원장이 지난 25일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공정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연 후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기호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위원장이 지난 25일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공정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연 후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취준생들 “불공정한 취업”
비정규직 “매일매일 시험”
누구는 “민간은 왜 안하나”
이것은 청년의 문제가 아닌
한국사회 속 계급의 문제다

‘청년들의 분노.’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거센 반발을 미디어는 이렇게 규정한다. 취업준비생들은 공정한 입직경로를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멀게는 ‘정유라 부정입학’과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문제부터 최근의 ‘조국 사태’를 관통했던 ‘공정’ 논란의 재부상에 정치권과 정규직 노조가 호응했다.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노력하는 청년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며 ‘로또취업방지법’ 발의를 거론했다. 인천공항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 제기를 언급했다.

그러나 청년은 단일하지 않다. ‘인서울’(In Seoul) 4년제 대학 졸업생은 그 나이대 청년의 10%를 넘지 않는다. 올해 1분기 2030 실업자의 수를 보면 전문대 이하 학력자 32만5000명이 실업 상태에 놓여 4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실업자(20만명)보다 1.6배 많았다.

3년제 전문대를 나와 프리랜서 음향 엔지니어 일을 하는 임모씨(27)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찬성한다. 비정규직이 얼마나 불안한 처지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은 민간기업으로 확산되지 않는 공공기관만의 정규직 전환은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머지 청년들은 ‘주류 청년’들의 분노를 관조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서원도씨(32)는 “인국공 정규직 전환 기사는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차라리 이천화재 같은 산재 사고가 더 내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공동체와 유리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인천공항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공격을 바라보며,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열심히 살아온 노력들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일터에서의 노력에 익숙한 이들은 ‘취업준비생의 노력만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실제 고용불안정은 이들에게 매일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도록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콜센터)에서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상담사 이모씨(33)는 “정규직들은 입사를 하기 위해 한 번의 시험을 보지만 저희는 일을 하기 위한 시험을 매일매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공시족’의 분노는 이해하면서도 ‘공정’이란 말 자체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ㄱ씨(32)는 오랜 취업준비기간을 거쳐 현재는 한 공기업에 다니고 있다. ㄱ씨는 “지금 논의되는 공정은 채용과정에서의 기회 평등에만 한정돼 있지만 시험 한 방으로 신분이 결정되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며 “과도하게 임금이 높다는 지적을 받는 기존 정규직의 임금을 줄여서 새로 정규직화되는 사람들한테 돌아간다면 오히려 그게 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어쩌면 청년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다. 주류 청년들의 ‘공정’에 대한 갈구가 이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는 한, 한국의 불안정 노동시장과 ‘정상 노동시장’의 간극은 끝도 없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규직·비정규직·프리랜서·용역노동자…우리에게 ‘공정’이란 무엇인가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기사를 봐도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이천 물류창고 화재나 23세 성악도의 죽음, 이런 산재 기사가 더 내 일처럼 느껴지지.”

일용직 형틀 목수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서원도씨(32)는 건조하게 말했다. 그는 어려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 시절 한 학교에 한 명쯤은 보이던 “머리 떡지고 옷에 뭐 묻은 거 그대로 입고 다니는 애”가 서씨였다.

전문대 진학을 희망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스무 살 남짓,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락시장과 동대문시장, 카페와 카카오택시 콜센터를 거쳐 27세의 서씨는 건설현장을 찾았다. 그는 한 달에 400만~500만원은 거뜬히 벌고 매달 300만원씩 적금을 붓는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택한 업에 자부심은 없다. 가끔 대학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서씨의 동창 중 한 명은 한부모가정에서 자라 박사학위까지 땄다. 언젠가 그 친구가 “나는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 넌 왜 노력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서씨는 “나도 너 같은 엄마 있었으면 오늘 뭐 먹을지 걱정 안 하고, 다음달 고시원비 어떻게 내나 걱정 안 하고, 공부만 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럼 달랐을 거라고, 너 정도는 아니라도 대학은 가지 않았겠느냐”고 수세적 항변을 했다. 서씨는 “남들은 왜 하찮게 볼까. 나는 내가 가진 조건에 대해 선방하며 살았는데”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늘 당장이 급했던 서씨는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청년세대의 분노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다. 그는 “저는 한국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이 공동체와는 유리돼 있다는 느낌이 커서 그냥 관조하는 게 딱 제게 맞는 포지션 같다”고 했다.

‘주류 청년’들이 불을 지핀 인천공항 불공정 논란을 지켜보는 청년 아닌 청년들이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채에 합격한 정규직도 아니고, 장기간 NCS(국가직무능력표준·공공기관 채용에 활용되는 시험)를 준비해온 취업준비생도 아니다. 이들 상당수는 침묵 또는 무관심 속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물론 이들 중에도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하다는 목소리는 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부터 생업에 뛰어든 성모씨(27)는 간호조무사다. 벌써 7번째 병원인 지금의 개인병원에서는 주 6일 일하고 월 190만원 남짓을 번다. 성씨는 “(병원에선) 이 돈만 줘도 불법적인 일을 군말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했다.

5년 전쯤 한 종합병원에서 일할 때는 아웃소싱업체가 매달 30만원 이상을 ‘떼먹었다’. 간호조무사는 파견이 금지된 직종이지만 인력파견업체와 계약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이라 고용이 불안정해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며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니까 타협하고 살아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을 믿는다. 성씨는 교육기간(준비기간)의 차이를 들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단언했다. 그런 그가 인천공항 보안검색요원에 대해 “정규직 전환 자체는 상관없지만 급여가 크게 오르거나 승진 기회를 기존 정규직과 동등하게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병원에서 수없이 부당한 처우를 당하고도 개선되는 모습을 본 적 없는 그에게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은 어딘가 불공정하다. 성씨는 “정규직 기회를 줄 거면 모든 회사, 모든 직종에 기회를 줘야지 한 곳에서만 대량으로 하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는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가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단초가 됐다는 사실에 대해 “스크린도어 수리는 위험업무여서 직접고용하는 게 맞지만 공항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럴 거면 공사현장 일용직 노동자부터 (정규직화)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의 남편은 공사현장에서 일용직 용접공으로 일해왔다.

32세 일용직 “내 일처럼 와닿지 않아”…27세 간호조무사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야”
34세 공공기관 정규직 “가점 부여, 공채서 실력 입증해야”
그러나 현장서 매일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뉴얼만 1060개, 건보공단 콜센터 용역 37세 박씨는 매달 등급·수당이 걸린 시험을 치렀다
‘고된 업무’ 외주화 13년 만에 노조가 지난해 직접고용 추진했지만 기존 정규직의 반발
무엇이 이 시대 노동자들을 이렇게 갈라놨는가

■ 정규직이 될 자격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채에 합격한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이 될 자격을 묻는다. 한 공공기관의 정규직 김모씨(34)는 “정규직들은 300 대 1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는데 전환된 비정규직들은 경쟁률이 2 대 1이거나 미달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교환학생을 다녀왔으며, 토익은 만점에 가까웠다. 졸업 후 한 해가 지나기 전에 그는 첫 직장인 지금의 공공기관에 취업했다. 김씨는 “이들에게 공채를 보게 하는 대신 가점을 주고, 공채에 떨어져도 남은 계약기간 동안 고용을 유지했다면 문제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전환 자격을 비정규직이 입증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등잔 밑에서 매일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모씨(37)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객센터(콜센터)에서 3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그는 4년제 지방대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꽤 오래도록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용역업체 소속으로 상담원 일을 시작했다. 일은 얕더라도 방대한 지식을 요했다. 보험징수·자격·부과·급여 등의 민원에 대응하는 업무매뉴얼만 1060개에 달했다. 지난해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원은 1인당 평균 116.4건의 전화를 하루 6시간18분 동안 받았다. 3분 안에 상담 전화를 끊고 새로 온 전화를 받도록 한 내부규정은 갓 입사한 신입에게 잠시의 머뭇거림도 허락하지 않았다. 박씨를 제외한 7명의 동기 전원이 입사 3개월 만에 퇴사했다. 박씨는 “업무 자체가 신입들에게는 너무 어렵다”고 했다.

용역업체는 한 달에 한 번 업무매뉴얼을 바탕으로 퀴즈시험을 본다. 시험을 못 치면 상담원의 등급이 내려가 수당이 깎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단은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12개 용역업체를 대상으로 3개월에 한 번씩 자체 시험을 봤다. 공단의 시험날짜가 정해지면 15일 전부터 매일 모의고사를 치르는 업체도 있었다. 업체의 재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보공단이 추진하던 고객센터 상담원 직접고용은 올 들어 잠정 중단됐다. 박씨는 “정부에서 너희가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시험 친다고 하면 그건 인정하겠지만, 일반직군처럼 업무에 도움 안 되는 NCS를 우리에게 치라고 하면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용직 형틀 목수 서씨도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세우는 건 학교의 룰이지 사회의 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는 당신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궁금한 게 아니라, 누가 잘 빨리 만드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4년제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이모씨(35)는 최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그는 고시원 총무를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 80만원과 몸 하나 누일 방 한 칸을 얻는 대가로 주인이 오지 않는 고시원을 종일 관리했다. 길었던 ‘공시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그는 최근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다. 학창 시절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이제는 학교 시설관리를 하고, 보험영업을 하던 어머니는 재가 요양보호사 일을 한다. 이씨는 마트와 중소기업, 물류센터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이씨는 “중소기업 직원들도 밤 9시까지 추가근무하면서, 다 노력하면서 산다”며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 직전, 학창 시절에 한 일만 노력이고 열심히 직장생활하는 건 노력이 아닌가”라고 했다.

■ 독식의 시대

그러나 관망하는 청년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분절화는 오히려 속도를 높일 모양새다. 노동자 간의 연대가 설 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4년제 대학 출신인 오모씨(35)는 한 공공연구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 기관에 들어오기 전 복수의 업체에서 3년 이상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공부를 병행했고 기관 취업에 성공했다. 오씨는 “전환 대상 비정규직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진작에 나라에서 그런 자리를 없앴어야 하는데, 젊은 후배들은 이해를 못하더라”고 했다.

건보공단 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고객센터의 직접고용을 추진했다. 고객센터는 14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규직 직원들이 하던 대민 업무였다. 2006년 외주화됐다가 13년 만에 직접고용이 추진된 것이다. 하지만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정규직화 반대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노조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이 담긴 조합원 교육 자료를 만들어 전국 30곳을 돌며 조합원 설득에 나섰지만, 가는 곳마다 “위원장은 건보 노조위원장이 맞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좌중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결국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고객센터 직접고용을 설문에 부친 결과 75.6%의 반대로 직접고용 추진은 잠정 중단됐다.

건보공단 노조 관계자는 “‘비’자 빼고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묶어야 큰일을 할 수 있는데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싸우게 만들었다”며 “우리의 이익만을 위해 노조가 있어야 한다면 노조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한 공공기관의 사무직 정규직인 ㄴ씨(33) 역시 “‘절차의 공정’이란 말이 불평등한 출발선을 인정하는 ‘차별의 언어’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능력주의’가 청년들에게 최고의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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