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배드파더스’, 빈자리 걱정되는 이유읽음

김서영 기자

양육비 문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10월 말 운영 종료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미지급해온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배드파더스(나쁜 아빠들)’가 오는 10월 말 운영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고의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조치가 지난 7월 13일부터 시행되면서 이제 더 이상 민간에서 사이트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결정이다.

지난 3년간 배드파더스는 국가가 손 놓고 있던 양육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는 위험까지도 감수한 성과였다. 이제 일종의 ‘명예로운 퇴장’을 앞둔 셈이다. 그러나 배드파더스를 비롯한 양육비 문제 활동가들과 미지급 피해자들이 새 제도의 시행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온 ‘배드파더스’의 구본창씨가 7월 13일 오후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온 ‘배드파더스’의 구본창씨가 7월 13일 오후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정부에 ‘바통터치’는 하지만

“(이제 명단공개를) 정부가 한다니깐 당연히 바통터치를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바통터치를 하면서도 좀 불안한 것은,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지난 7월 13일 경기도 화성에서 만난 배드파더스 구본창 활동가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이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을 제도적으로 마련했다는 의의는 있으나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구씨는 출국금지 조건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지적했다. 출국금지 대상자는 양육비 채무가 5000만원 이상이거나, 3000만원 이상이면서 최근 1년간 국외 출입횟수가 3차례 이상(혹은 국외 체류일수가 6개월 이상)인 경우다. 책정된 양육비가 월 30만원이라고 했을 때 ‘5000만원 이상’에 해당하려면 166개월, 즉 14년 정도를 미지급해야 한다. 양육비가 월 50만원이라 하더라도 조건에 맞으려면 8년 이상이 소요된다. 구본창씨는 “이혼 후 8~13년이면 아이가 이미 성인이 돼버릴 수도 있다. 대부분 양육비가 월 50만원 안팎으로 책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출국금지 신청을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미납금액 기준을 500만원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도 국외 거주 직계존비속이 사망하거나,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가지고 출국하려는 경우 등은 출국금지 예외를 적용받을 수 있다.

명단공개 역시 마찬가지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미지급자의 얼굴(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공개되는 정보는 이름, 나이, 직업, 주소(도로명주소)다. 배드파더스와 배드페어런츠(나쁜 부모들)가 얼굴, 미납 금액, 거주지, 출신 학교, 신체적 특징, 직업 등 가급적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구씨는 “현실적으로 동명이인이 워낙 많지 않은가. 미지급자가 누군지 특정되지 않는다면 동명이인이 의심받게 되고, 당사자는 압박을 안 느끼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사진이 없는 신상공개는 압박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배드페어런츠를 운영하는 양육비해결모임 강민서 대표도 “오랜 시간 양육비를 주지 않던 부모가 갑자기 연락이 와 양육비를 주고선 가장 먼저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며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신상공개의 한계를 우려했다.

운전면허 정지 또한 ‘직접적인 생계유지 목적으로 운전면허를 사용하는 경우’ 등에 예외 가능성을 열어뒀다. 해외를 예로 들면 미국 일부 주는 양육비 미납자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운전면허뿐만 아니라 사업, 직업, 전문 등 생계 관련 면허, 여가와 관련된 면허를 제한하는데 한국은 오히려 생계가 제재를 빠져나갈 구실이 되는 것이다. 구본창씨는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생계에 지장이 생겨야 성실하게 양육비를 주게 된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은 오히려 생계유지 목적이면 면허정지도 면해주고, 사업 목적이 있으면 출국도 가능하다. 이 같은 예외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양육비를 미지급해도 아무 불이익이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육비 문제의 한 60% 정도 해결하고 나머지는 희망고문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떠나는 ‘배드파더스’, 빈자리 걱정되는 이유

“이번 조치는 덜 갖춰진 법”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신상공개 등이 ‘양육비 미이행으로 인해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고도 즉시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것도 난점이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입장에선 지난한 법적 절차를 거쳐 법원의 감치명령을 이끌어내고서야 세가지 조치를 겨우 ‘기대’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근로소득자가 양육비를 연체할 경우, 채권자(양육부모)는 직접 지급명령 신청→이행명령→담보제공명령 신청→일시금 지급명령 신청→감치신청의 절차를 거친다. 법원은 30일의 범위에서 감치를 명할 수 있지만, 선고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이를 집행할 수 없다. 이 기간에 양육비 채무자가 잠적하거나 위장전입하면 감치결정이 무효로 돌아간다.

수년의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이 같은 절차는 양육부모가 양육비 싸움을 포기하는 장벽이 된다. 실제로 이혼 또는 미혼 한부모 중 자녀양육비 청구 소송을 경험한 경우는 7.6%, 양육비 이행 확보절차를 이용해 본 경험은 8.0%에 불과했다(여성가족부, 2018년 한부모가족실태조사). 특히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경우는 피해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양육비 요구를 차마 하지 못하기도 한다.

올해 이혼 후 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딸 둘을 홀로 키우는 박모씨(54)는 “양육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양육비를 받기 위해 피땀 흘려 투쟁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큰딸은 “왜 피해자가 피해를 봐야 해”란 말도 했다. 박씨는 “양육자로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충분히 고생하고 있다. 큰딸 레슨비를 마련하기 위해 작은딸 학원을 끊었고, 투잡을 하며 쓰리잡을 알아보고 있다. 이미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법원을 오가며 소송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수백명이 대기 중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박씨는 “이번 조치는 덜 갖춰진 법”이라며 낮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감치명령을 받은 경우에만 해당한다는 조건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3개월 연체’ 혹은 ‘150만원 이상 미납’처럼 일정 금액이나 기간을 설정해 여기에 해당할 경우 제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양육비 미납자가 취업할 경우 당국이 고용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고용주가 월급의 일정 부분을 양육비 채권자에게 바로 입금하게 하는 방식(미국)도 소송이 필요 없다. 허민숙 조사관은 “한국 또한 국세청이 소득 정보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식이 가능하다. 결국 국가의 의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 조치로는 실효성을 거두기 매우 어렵다. ‘양육비를 안 줘도 영리하게 잘 빠져나가면 된다’는 사회적 메시지만 전달하게 될 우려가 높다”고 했다.

물론 제도 시행을 둘러싸고 일부가 ‘태세 전환’을 한 건 사실이다. 강민서 대표는 “시행에 임박해 지급률도 좋아지고 (미지급자들이) 먼저 전화하고 그런다. 말도 굉장히 공손해졌다”고 전했다. 예전엔 일단 협박을 하려 들었다면 이제는 “지급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고, 조금씩 지급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지느냐다. 구본창씨는 “도입이 논의되던 지난해쯤엔 미지급자들이 상당히 긴장했는데 예외조항과 빠져나갈 구석이 많다 보니 좀 마음 편해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이번 제도를) 앞으로 운영해보고 개정할 여지가 있다면 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지급제’ 가능하려면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양육비 대지급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양육비 대지급제란 국가가 양육비 채무자 대신 채권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한 다음, 강제징수 등의 방법으로 채무자에게 이미 지급한 양육비를 받아내는 것이다. 국가가 양육비를 우선 지급하고 채무자에게서 해당 금액을 회수하는 방법과 채무자로부터 양육비를 회수한 이후 채권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 미리 주고 나중에 받아낸다는 점에서 선지급, 양육비 회수로도 불린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국가가 이미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임기 내 시행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대지급제를 시행할 경우 이혼을 거치며 이미 악화된 감정 문제와 무관하게 양육비를 지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육비해결모임을 지원해온 법무법인KNK 이준영 변호사는 “이번에 도입되는 제도는 법적 조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양육자와 비양육자 간 갈등을 증폭시켜 원래도 좋지 않은 사이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이 같은 갈등의 피해는 아이들 몫”이라며 “자동차 주차 위반이나 교통 위반 과태료를 떼도 국가와 갈등이 생기지 않고 당연히 내야 하는 돈처럼 생각하듯이, 대지급은 갈등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육비 관련 단체나 미지급 피해자들은 대지급제 도입을 요구해오고 있지만, 막상 논의가 진전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흔한 반론은 ‘왜 세금을 쓰느냐’는 것이다. 국가가 양육비 채무자를 상대로 회수에 나선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100% 회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본창씨는 대지급제의 선행조건으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처벌(처분)을 엄격하게 해서 고의로 회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놓는 것”을 꼽았다. 그런 다음에야 대지급제 도입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씨는 “이번 제도는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점에서 대지급제에 설득력을 갖춰줄 여건이 전혀 안 돼 있다. 현 상태에서 도입해도 무의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우려를 내비쳤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대지급제 이전에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양육비를 내게 하는 풍토가 선행돼야 한다. 대지급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도 있어, 제재와 압류의 효과를 좀 지켜본 이후 대지급제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엄규숙 당시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도 ‘히트앤런 방지법’ 제정을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양육비 대지급제는 2004년 이후 꾸준히 법이 발의됐으나 재정부담 때문에 한 번도 통과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엄 전 비서관은 “정부가 미리 양육비를 주고 비양육부모에게 청구해 받아낸다고 하지만, 독일의 경우에도 실제로 정부가 받아내는 돈은 2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국가 예산으로 메우는 것이고 행정비용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허민숙 조사관은 “한국의 양육비 이행제도는 양육비를 공공의 문제가 아닌 사적인 채무관계로만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지급을 실시하는 국가들도 세금이 남아서라기보다는 아이의 권리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나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 도망다닌다. 생애빈곤이 예정돼 있다’는 것이 과연 선진국에서 아동에게 할 일인가. 아무런 죄가 없는 아이들이 왜 빈곤으로 처벌받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권리는

여태까지 시행된 그 어떤 제도보다 즉각적인 양육비 이행 효과를 보여준 배드파더스는 다시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부모가 구본창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월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가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다음달 중순 2심 선고가 나올 예정이다. 1심 재판부는 구씨의 행위가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나,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하며 어떠한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 피해자들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점을 무죄 이유로 고려했다.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측면도 인정했다.

배드페어런츠를 운영해온 강민서 대표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선 벌금 80만원으로 뒤바뀌었다. 1심과 2심 모두 강 대표가 공개한 정보에 직업 등과 관련해 허위사실이 포함됐다고 봤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강민서 대표가 양육비 지급만을 수차례 강조했을 뿐 분노 등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고 허위사실까지 게재할 동기가 없었으리라고 본 반면, 2심에선 불특정 다수가 열람할 수 있는 공간에 ‘파렴치한’ 등 표현을 사용해 고통을 준 점을 고려했다. 강민서 대표는 “대법원에서 어떻게 될진 몰라도 계속 배드페어런츠를 운영할 것 같다. 양육비 지급을 위해 전화나 만남으로 중재하는 것에 가장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송은 아이들의 생존권과 무책임한 부모의 명예라는 두가지 권리가 충돌하는 겁니다. 어떤 것이 더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권리냐는 것이지요.” 구본창씨의 말이다. 구씨에 따르면 배드파더스 신상공개를 통해 해결한 양육비 미지급 사례는 890건, ‘안 주면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사전통보만으로 해결된 사례는 690건이다. 그 어떤 합법적인 제도도 해주지 못했던 일을 해낸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법에 어긋난다고 해서 다 나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배드파더스가 우리 사회에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이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