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돈이든 세력이든 이익수단 된 ‘가짜뉴스’읽음

강한들 기자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불거진 가짜뉴스 논쟁

언론이 위기라고 합니다. 언론이 담는 세상도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언론이 사회의 공론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때 사회와 언론 모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6일 창간 75주년, 독립언론 출범 23년을 맞아 본지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소개하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들을 준비했습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가 아닌 사원이 주인인 사원주주회사 경향신문의 역사와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 그리고 인터넷의 보편화 등에 따른 종이신문의 변신 노력을 소개합니다. 이어 가짜뉴스, 기레기 등의 단어들이 횡행하는 언론 불신의 시대 상황과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을 돌아보며 언론의 참 역할과 언론개혁의 방향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목적이 돈이든 세력이든 이익수단 된 ‘가짜뉴스’

‘가짜뉴스’ 논쟁이 거세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타고 주로 확산되는 가짜뉴스는 코로나19 백신부터 가상통화, 각종 사건·사고와 선거 관련 뉴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여당은 가짜뉴스 생산의 주범으로 언론을 지목하면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 개정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그 개념이나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다. 또 유튜버 등 1인 미디어나 정치인들이 가짜뉴스의 생산 및 재생산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로 매도하는 등 역이용되는 폐해도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보도에 대해 매번 ‘페이크 뉴스(fake news·가짜뉴스)’라고 공격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 구제를 실효성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고, 언론개혁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한가. 여야의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를 계기로 가짜뉴스가 촉발한 논쟁지점들을 짚어봤다.

■ 소셜미디어 타고 유포되는 가짜뉴스

가짜뉴스란 용어가 본격 사용된 곳은 미국이다. 주로 언론이 아니면서 언론사처럼 꾸며낸 사이트를 통해 악의적으로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걸 의미했다. 특히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런 현상이 극심했다. 당시 러시아 여론조작 조직인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미국 소셜미디어에 미국인 신분으로 가짜 계정을 만들어 거짓 게시물을 퍼트렸다. 이들은 ‘#힐러리는 사탄이다’ 같은 문구를 살포하고, 프로그램을 사용해 자동으로 글을 올리는 ‘봇(Bot)’으로 약 140만건의 트윗을 생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스푸트니크 통신은 프랑수아 피용 당시 공화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들이 당시 실시했던 조사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이 1위, 마린 르펜 당시 후보가 2위, 피용은 3위였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등 매체들은 러시아 가짜뉴스의 목표가 대러시아 제재에 찬성하는 마크롱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경우 초기에는 소위 ‘증권가 지라시’ 형태로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유포되다가, 소셜미디어 발달 이후 온라인 공간을 통해 가짜뉴스가 확산되고 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면서, ‘팩트’를 기본으로 하는 언론들이 ‘팩트 체크’라는 별도의 코너를 앞다퉈 도입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하는 여당은 허위·왜곡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유튜버·블로거 등 1인 미디어, 정치인 등을 통해 유포되는 가짜뉴스도 적지 않다. 또 언론 등의 정당한 의혹 제기를 가짜뉴스라 비난하며 비켜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대 이슈가 된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과 관련해 연루 의혹이 제기되는 유력 대선 후보 측은 모두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하는 대장동 가짜뉴스를 박멸하겠다”(이재명 경기지사 대선 캠프), “가짜뉴스로 흠집 내기를 시도하는 데 대해 단호한 법적조치 취하겠다”(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 캠프)며 가짜뉴스 프레임을 들이대고 있다. 가짜뉴스라는 용어 자체가 정치적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 가짜 ‘뉴스’가 아닌 허위·조작 ‘정보’

생산 주범으로 언론 지목되지만
개념 명확지 않고 규정도 모호
학계 ‘허위·조작 정보’ 용어 사용

1인 미디어·정치인 통한 유포 많고
트럼프처럼 한국 정치도 ‘역이용’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로 치부해

민주당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이라고 부른다. 개정안에서 말하는 가짜뉴스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무엇을 가짜뉴스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학계에서는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폐기하는 추세다. 용어의 규정이 모호하고, 정치인들이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를 대신해 ‘허위·조작 정보(disinform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허위·조작 정보의 핵심은 ‘내용의 허위’와 ‘고의성’이다.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하는 이들은 팩트 확인을 하지 않고 정치적 혹은 금전적 이익만을 위해 고의적으로 가짜정보를 남발한다. 이 같은 정보는 주로 전통 언론매체보다는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취재’ 없이 전달된다. 이들 정보에 ‘뉴스’나 ‘보도’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이유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한 번 유통되면 ‘사이버 레커차’들이 따라붙기도 한다. 사이버 레커차란 교통사고 현장에 달려가는 레커차(견인차)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유튜버를 비판하는 말이다. 지난 4월 발생한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에서 결정적 증거가 없음에도 유튜버들은 허위정보를 쏟아냈다. 한 유튜버는 고 손정민씨의 친구 A씨가 다른 사람들과 손씨를 물에 던졌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는 다른 사람들이 한강에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허위 정보를 만들어낸 이유는 수익 때문이었다. 손씨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유튜버 6명이 최소 1500만원에서 최대 3000만원의 수익을 얻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허위·조작 정보가 시민들에게 많이 노출될수록 건전한 여론 형성에 방해가 되고, 민주주의에 해악이 크다고 지적한다. 박아란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민주주의는 성숙한 시민의 토론을 바탕으로 진실된 사실에 기반해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며 “허위·조작 정보는 시민들이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박병석 국회의장,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지난 8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상정 등과 관련한 국회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사진 크게보기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박병석 국회의장,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지난 8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상정 등과 관련한 국회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언론 보도 규제, 해외에선 신중

프랑스는 선거 정보 대상 법 규제
독일, 대형 소셜미디어 플랫폼 대상
국내 환경 맞게 ‘언론 체질’ 개선을

직접적으로 허위·조작 정보를 규제하는 법이 있는 나라로는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정보조작대처법’은 선거 전 3개월 동안만 선거 관련 정보를 대상으로 한다. 허위 의심 정보를 삭제 요청하면 판사는 48시간 이내에 선거에 영향이 있는 허위정보인지를 판단해 유포를 중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법 역시 허위 정보에 대해 ‘허위 정보를 구성할 가능성이 있는, 검증 가능한 요소가 부족한 사실에 대한 모든 주장이나 비판’이라고 모호하게 돼 있어 판사가 48시간 이내에 허위성을 판단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독일의 ‘네트워크집행법’은 독일 형법에서 불법 정보라고 하는 가짜뉴스, 범죄 모의, 테러·폭력 선동, 혐오표현 등 22개 사안을 인터넷에서도 규제한다. 규제 대상은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등록 이용자 수 200만명 이상 대형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다. 이 법은 플랫폼이 ‘명백한 불법 내용물’일 경우 신고 접수 후 24시간 이내에 삭제 또는 접속 차단하도록 하고 있다. 단 뉴스 웹사이트, 이메일이나 문자 서비스 사업자는 규제 대상에서 예외로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회는 의사 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사업자 자율 규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경우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정치인의 언행에 대해 거짓된 인상을 주는 조작된 동영상·사진을 게시하는 경우,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음란물로 합성해 유포하는 경우를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뉴스 매체, 풍자, 패러디 등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 언론 ‘징벌’ 넘어서 미디어 개혁 논의를

더불어민주당은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다 언론 자유를 제약할 것이라는 국내외 언론·인권단체의 반발이 이어지자 보류했다. 여야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말까지 논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고 매체도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는 기성 언론사들도 공감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및 언론사주 단체들은 시민들의 언론 불신 원인을 고민하고 언론 보도가 저널리즘 가치에 부합하는지 가리는 자율 심의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는 자율 규제 기구로는 언론중재법이 규정하는 언론사 내 고충처리인 제도와 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위원회 등이 있다. 고충처리인은 언론의 침해행위에 대한 조사, 사실이 아니거나 타인의 명예, 그 밖의 법익을 침해하는 언론 보도에 대한 시정 권고 등 언론사 내부 자율 규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현재 고충처리인 관련 의무를 다하고 있는 언론사는 70% 정도다. 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위원회 등은 동일한 이유로 거듭 규정을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여할 수 있으나 대체로 주의, 경고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

미디어 바우처 제도 등을 통해 한국 언론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미디어 바우처 제도는 시민들에게 ‘바우처’를 주고 언론을 후원하게 하는 것이다. 신뢰하는 매체에 경제적 보상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보상을 통해 보도의 질적 향상을 유도하는 ‘당근책’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자율 규제는 저널리즘의 품질을 제고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사전예방에 힘쓰고, 문제가 제기됐을 때 법보다 더 신속하게 실질적인 구제에 나서야 효과가 있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와 관계없이 추진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원은 “모바일 뉴스 생태계가 되며 과거보다 경쟁이 치열해져 저널리즘의 퀄리티가 떨어졌다”면서 “미디어 바우처는 언론사들이 상업적 경쟁, 속보 경쟁하는 것에서 벗어나 품질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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