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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서 이뤄진 ‘경찰국 신설’···행안부 “경찰자문위 회의록 없다”읽음

‘행안부 이중대’ 논란 자문위 회의 자료 공개 안해

문재인 정부 경찰개혁위원회는 자체 회의록 작성

전문가들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가능성 농후”

행전안전부 내 경찰국 공식 출범을 하루 앞둔 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행전안전부 내 경찰국 공식 출범을 하루 앞둔 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권고한 행안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자문위)’가 한 달여간 회의를 하면서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어긴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1일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따르면, 행안부는 천 의원실에 “자문위는 행안부 정책자문위원회 규정(훈령)에 의거해 구성된 회의체로 관련 법령상 회의록 의무 작성 대상이 아니다”며 “그에 따라 회의록, 결과보고서는 별도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자문위 회의와 관련된 발제 자료, 토론 자료, 현장 배포 자료, 회의 이후 작성한 회의록 및 회의 결과보고서 사본을 달라’는 천 의원실 요구에 “자문위 회의는 위원들이 직접 의제를 선정하고 토론을 통해 권고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면서 이같이 설명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지난 5월12일 취임 즉시 경찰제도개선자문위를 꾸릴 것을 지시했고, 자문위는 바로 다음날인 5월13일 구성을 마무리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자문위는 4차례 회의 후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이 포함된 제도개선 권고안을 마련했고, 경찰국은 이에 따라 지난달 15일 직제안 완성, 지난달 26일 국무회의 통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절차에 따라 신설이 확정돼 2일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경찰위 신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자문위가 회의에서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행안부는 자문위 회의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은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법 시행령 18조 5항에 의거해 ‘개별법 또는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위원회 또는 심의회 등이 운영하는 회의’가 아닐 경우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행안부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 18조 9항에 ‘회의록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의 경우 회의록과 기타 근거 자료를 남기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국 설치 및 지휘규칙 제정과 관련한 사안은 경찰 독립과 관련돼 있을뿐 아니라 헌법과 법률 위반 논란이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그런데도 회의 흔적을 일절 찾아볼 수 없는 것은 행안부가 경찰국 설치를 답으로 정해 놓고 자문위를 ‘알리바이’ 삼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또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 18조 4항에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가 참석하는 회의’는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다고 규정돼 있는 점에 비춰봐도 자문위 회의 기록 부재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문위는 한창섭 행안부 차관과 황정근 변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은 사실상 차관급 주재 회의”라며 “회의 자료가 없다는 행안부 해명은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공동 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대 자문위원. 황정근 변호사,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연합뉴스.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공동 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대 자문위원. 황정근 변호사,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연합뉴스.

앞서 ‘자문위가 행안부에 종속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자문위원들은 이를 부인했다. 민간위원이던 정웅석 서경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달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행안부에서는 (자문위 활동에) 전혀 관여한 바 없고, 교수들끼리 주제를 분담해 발제했다”며 “정리만 행안부에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의록이나 속기록이 작성돼 있지 않은 이상 자문위의 역할과 논의 내용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문재인 정부 당시 운영된 ‘경찰개혁위원회(경찰개혁위)’가 자체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천준호 의원은 “자문위 활동 기록 자체가 없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국 설치 논의가 철저히 밀실에서 이뤄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경찰국 신설 ‘마이 웨이’ 행안부

위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행안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경찰국 산하에 총괄지원과·인사지원과·자치경찰지원과 3개과를 설치하고 인원은 16명 규모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초대 경찰국장은 경장 경력경쟁채용으로 입직한 김순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장이다. 인사지원과장에는 사법고시 출신인 방유진 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장이, 자치경찰과장에는 경찰대 출신인 우지완 경찰청 자치경찰담당관이 배치됐다. 총괄지원과장에는 임철언 행안부 사회조직과장이 임명됐다.

경찰국장을 포함한 직원 16명을 입직별로 분류하면 경찰대 출신은 단 1명이다. 경찰대를 ‘개혁 대상’으로 공식화 한 윤석열 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인사로 풀이된다.

행안부가 경찰국 필요성을 강조하며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한 임모 행안부 치안정책관은 이날 경찰 경무관 전보 인사에서 한직인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발령됐다. 임 경무관 역시 경찰대 출신이다.

여야는 교착 상태에 있던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오는 8일 열기로 합의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경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이 청문회에 나오지 않는 대신 이달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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