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수 실격으로 55명 중 54위… 참담했다 그러나 난 꼴찌가 아니다”

글 김창영 기자·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허민호

런던올림픽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던 지난 7일. 수영 마라톤 사이클을 함께 겨루는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끝났다. 선수들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믹스트존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기자들의 질문세례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믹스트존을 빠져나왔다.

허민호(22·서울시청). 런던올림픽이 끝났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트라이애슬론이라는 종목도 낯설거니와 그런 종목에 한국 선수가 출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랬다. 허민호는 항상 그랬다. 훈련할 때도 혼자였고 좋은 기록을 올렸을 때도 혼자 기뻐했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도 역시 혼자였다. 훈련 파트너조차 없이 프랑스에서 홀로 전지훈련을 했다. 대회 전 몸 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겉으론 브라질 대표선수들과의 ‘조인트 훈련’이었지만 실제는 스케줄만 받아서 홀로 자전거를 타고, 수영하고, 고독하게 달렸다. 인기 종목 선수들이 훈련파트너와 함께 런던까지 날아가 막판까지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든 것과는 딴판이었다.

“다른 선수 실격으로 55명 중 54위… 참담했다 그러나 난 꼴찌가 아니다”

▲ 훈련 파트너조차 없이 프랑스서 전훈
하수라고 여겼던 일본 선수는 20위
새롭게 뭔가 해야 한다는 절박감 느껴
진정한 철인으로 거듭나려 각오 다져

초등학교 1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건네준 직업조사서에 허민호는 이렇게 썼다. ‘철인 3종 선수’. 철인 3종이 뭔지 정확히 몰랐다. 그냥 유치원 때부터 해온 수영과 달리기가 좋아 그렇게 쓴 것뿐이었다. “사실 초등 1년생이 철인 3종이 뭔지 알고 썼겠어요? 하지만 그게 이렇게 나의 운명을 바꾸고 이제는 그게 나의 인생이 돼 버렸습니다.”

런던올림픽에서 허민호는 55명 가운데 54위에 머물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세계적인 ‘철인’ 사이먼 휘트필드(캐나다)가 사이클 종목에서 넘어져 실격만 하지 않았다면 정확히 꼴찌였다. 참담했다. 어렵다고는 여겼지만 이렇게 정말 꼴찌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도 컸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밝은 얼굴이다. 자신이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대회를 휩쓴 뒤 중학교 1년 때부터 그는 올림픽을 생각했다. 그것도 금메달을 꿈꿨다. 하지만 국내 트라이애슬론 환경은 척박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종목 자체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 길을 걸었다. “내가 스스로 나에게 한 약속이라 여겼어요. 직업조사서이지만 그것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에 도중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벽은 높고도 높았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세계 55위 안에 들어야 했다.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은 유럽선수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시아계 선수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는 올림픽 티켓 전쟁에서 당당히 47위로 출전권을 따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다시 한 번 절감했지만 그는 메달을 받았다고 했다. “꼴찌한테도 메달 주시는 것 아세요? 저는 누리꾼이 주는 ‘납메달’을 받았어요.”

“다른 선수 실격으로 55명 중 54위… 참담했다 그러나 난 꼴찌가 아니다”

누리꾼들은 올림픽이 끝난 뒤 각국 종목별 꼴찌에게 ‘납메달’, 두번째 꼴찌에게는 ‘양철 메달’, 세번째는 ‘아연메달’을 줬다. 허민호는 누리꾼들이 준 납메달의 의미를 아는 듯했다. “승패와 무관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주는 ‘금메달’ 아닌가요.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사람 좋게 웃었다.

그는 런던에서의 치욕적인 실패를 통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하이드 파크 호수 주변을 네 바퀴(10㎞) 도는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제 뒤에 16명이나 있었는데 마지막 바퀴를 도는 순간 ‘이제 꼴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3등과 15초 차이가 나길래 죽을힘을 다했지만 도저히 따라잡히지 않더라고요.” 역부족을 새삼 느꼈다. 그러나 런던올림픽의 꼴찌는 그를 진정한 ‘철인’으로 태어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허민호는 지난 9일 쓸쓸히 입국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마중 나온 사람도 없었다. 집으로 가 쉬고 싶었지만 소속팀인 서울시청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동료들이 보고 싶었어요. 함께 훈련하고 땀 흘리고 야식으로 치킨을 나눠 먹던 동료들에게 가고 싶었어요.” 아마도 약간의 위로를 받고 싶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허민호의 목표는 더 분명해졌다. 아니 새롭게 정해졌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겼던 일본의 다야마가 런던에서 20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엄청 자존심이 상했죠. 무엇인가 나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적이든, 체력적이든. 그냥 도전하는 그 자체로 올림픽에 나왔다는 그런 의미가 아닌 새로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다야마를 통해 느꼈어요.”

도전하는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고 한국 트라이애슬론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지만 이제는 그런 의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는 다야마를 통해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1차 목표를 2014 인천아시안게임으로 잡았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달리고 헤엄치고 페달을 밟을 겁니다. 런던올림픽 도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듯이 새로운 목표를 위해 또 다른 도전을 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더 강해진 저를 확인하겠죠.”

그러면서 “인천아시안게임을 찍고 2016년 브라질올림픽에서는 꼭 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했다. 꼴찌에게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어디 있느냐며 이제는 오를 것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귀국한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귀국 다음날 그는 부안 격포에서 열린 전국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했다. 쉬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도 뿌리쳤다. 그리고 ‘스프린트’ 종목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후 16일까지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당연히 대표선수들이 즐기는 ‘올림픽 휴가’도 반납했다. 이어 그는 다음달 22일 열리는 통영월드컵에 참가한 뒤 10월 개최되는 전국체전에서 국내 1인자에 도전한다.

이제부터 그는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차근차근 준비할 계획이다. 그래서 과거처럼 마치 한국트라이애슬론이 이만큼이라도 발전하고 성장한 것이 대견하지 않으냐는 식의 자기 만족적이고 소극적인 도전은 그만둘 참이다. 정말 한국트라이애슬론 개척자니 선구자니 하는 수식어가 아닌 세계 수준의 선수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기량을 닦을 생각이다. 그것이 이번 런던올림픽이 허민호에게 준 교훈이다.

“런던에서 넘어져 실격한 사이먼 휘트필드가 꼴찌다. 나는 꼴찌가 아니다”라고 자신을 격려한 허민호. 처음 ‘철인 3종’이라는 직업을 써냈던 초등1년 때처럼 허민호의 레이스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는 더 이상 꼴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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