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

김지연 전시기획자
이상호, 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밑그림), 200x150cm, 한지에 먹, 2002 ⓒ이상호

이상호, 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밑그림), 200x150cm, 한지에 먹, 2002 ⓒ이상호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고통의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섣불리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진행형인 역사적 날을 통과하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희생한 이름 없는 많은 이의 피에 한없이 감사하게 되는 계절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오늘이 먼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믿고 싶다. 퇴행의 날 안에 멈추어 있는 것만 같은 오늘도, 먼 과거 중 하루로 여겨질 미래의 오늘을 바라본다면, 조금씩 나아져가던 날 가운데 하루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지금을 살고 있는 자들은 지금을 제대로 기억하고 기록할 일이다. 기록을 선택하고 기억을 왜곡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하는 이들의 불순한 욕망 앞에, 기록이 배제하려는 숱한 사람의 역사는 나약하므로.

광주 메이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초대한 이상호는 이번 전시에서, 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에 남아 있던 16명의 초상을 그린 ‘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을 선보였다. 아직 밑그림만 마무리한 상태로, 채색의 과정이 남아 있는 미완성의 그림이지만 화가의 단정한 선이 기록한 열사들의 초상은 42년 전 그 시간의 통증 앞에 관객을 데려간다.

과거를 추상적으로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의 역사를 토대로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화가는, 윤상원 열사 외에도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있던 이들을 작품으로 조명하겠다는 의지를 세웠다. 서호빈, 박성용, 문재학, 문용동, 이강수, 박진홍, 안종필, 권호영, 김동수, 박병규, 유동훈, 민병대, 이정연, 홍순권, 김종연 등 살기 위에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단호한 표정을 바라보며, 이 밑그림 위로 색이 차오를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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