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리더십’과 문화경영

정재왈 예술경영가·서울사이버대 교수

지도력이라는 뜻의 리더십을 어떤 사람의 ‘특출한 능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안정적으로 조직을 경영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출까지 아니더라도 특별한 능력 정도는 갖춰야 한다. 조직이 크든 작든. 리더십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된다. 예술경영이나 문화행정 등 제도권 교육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지만, 현장에서 그 중요도가 날로 높아가는 ‘과제’다. 과제는 숙제,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의미다. 리더십 자체가 변화무쌍한 생물 같아서 애당초 몇 가지 범주로 정의하기가 불가능한 일이긴 하나, 특히 문화예술계에선 보편적인 윤곽을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정재왈 예술경영가·서울사이버대 교수

정재왈 예술경영가·서울사이버대 교수

그 이유 하나를 들면, 문화예술은 아무래도 가치를 중시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숫자로 드러나는 계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기업과 달리 평가의 주요 잣대가 정성적인 요소다. 공공 공연장의 경우, 티켓을 얼마나 많이 팔아 입장 수입을 극대화하느냐보다는 기획 및 제작, 대상 소비자의 범위, 파급효과 등 ‘공공성’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가치를 앞세운다. 그런 경향이 강하다. 최고 경영자부터 본부장이나 팀장 등 중간관리자까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고차원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이럴 때 리더십과 추상적 가치 추구는 서로 대립하는 길항(拮抗) 관계일까. 리더십을 숫자로 드러나는 결과치로 판단할 때는 그렇다고 여길 수 있으나, 고차원적인 복잡성 속에서 발휘되는 리더십이야말로 묘미 중의 묘미다. 서로 주고받는 이익에 기반한 ‘거래적 리더십’보다 비전과 가치를 중시하는 ‘변혁적 리더십’이 문화예술계에 더 먹히는 이유다.

거래적 리더십보다 변혁적인 리더십 발휘에는 많은 기교가 필요하다. 기교를 구사하려면 눈으로 보이는 숫자보다 리더의 말과 글, 행동 등을 리더십 행사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탁상공론보다는 실천하는 행동이 앞서야 설득력이 있다. 현장의 법칙이다.

한 조직의 비전을 공유하고자 제시되는 말과 글, 행동에 더하여 특정한 ‘사물’ 또한 변혁적 리더십의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을 요즘 나는 매일 체험하고 있다. 특별한 경험이어서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문화예술과 교육 등 공공성이 강한 영역에서 취하면 유익할 것 같은 한 사례를 소개하면 이렇다.

사물, 대상은 거울이다. 여러분은 거울을 매일 보는가. 면도하다 화장하다 잠깐 본다 해도 의식 대상으로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정도. 그런데 이 거울을 매일 인식의 대상으로 마주하면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매일매일이 그렇다. 단순히 ‘나를 비춰보는 거울(경·鏡)’이 어느새 ‘나의 행동과 생각을 비춰보는 거울(감·鑑)’로 변화는 거울이라니, 거울이 요술을 부린다.

나의 새 일터인 대학교에는 곳곳에 거울이 달려 있다. 연구실마다 몸집의 두 배쯤 되는 붙박이 거울이 벽에 붙어 있고, 복도나 탕비실에도 여러 형태의 거울이 달려 있다. 어떤 것은 꽤 값나가 보이는 장식용 거울이다. 아무튼 다 거울이다.

처음 이 많은 거울들과 마주쳤을 때, 이건 뭐지 당황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거울이야말로 아주 효과적인 리더십 발휘의 수단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말과 글로 된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스로. 나는 이 깨달음을 이름하여 ‘거울 리더십’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이 분위기를 조직 공동체가 공유해 단정한 학교의 문화로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문화경영’의 사례로 소개하고 싶은 것이다.

일찍이 거울은 치세(治世)의 상징어로 통했다. 국사를 다루는 치세의 영역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어느 조직에서든 선인의 지혜를 본받아 먼저 거울로 나를 돌아보고 역사와 사람(충신)이란 거울로 끊임없이 성찰하는 자세라면 보통 사람도 특출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연구실의 거울 앞에서 나를 본다. 여러분도 수신(修身)용 거울 하나 가져 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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