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 미술비평가
손기환, <석촌호수-상념>,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2022

손기환, <석촌호수-상념>,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2022

지난 5월31일, 서울 지역에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경계경보 알림이 울렸다. 약 20분 뒤 ‘오발령’으로 일단락되며 일상 복귀가 이루어졌지만, 혼란의 여운은 길게 남았다. 영문 모르는 재난에 시민 각자가 대비해야 했고, 전쟁의 위험을 자각하며 공포에 떨었으니 말이다. 휴전국에 자리 박힌 트라우마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일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손기환의 <석촌호수-상념>은 마치 그런 우리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작가 특유의 만화적 기법이 가미된 이 그림은, 분할된 화면으로 도시의 여러 혼종 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평온한 도회적 전경 위로 전쟁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높이 솟은 빌딩에 자연의 이미지가 산수화처럼 겹쳐져 있다. 대중적 인기를 끈 서양의 유명 설치미술도 보이고, 청명한 하늘과 대비되는 개발의 복잡함도 눈에 띈다. 익숙한 모습에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무심함 가운데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 그 속에 우리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대피할 안전지대를 찾아야 한다면 어디를 지정할 수 있을까.

손기환은 1985년 전시 <한국미술, 20대의 힘>을 기획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바 있다. 현실을 드러내 풍자하거나 저항하는 미술이 박해받던 시기였다. 작품 압수와 검열이 자행되는 등 정치 외압이 미술의 언어를 삭제시켰지만, 그 상흔의 기록은 우리 미술사에 오롯이 남아 있다.

이런 기록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환경에도 내재해 있을 것이다. 전쟁과 분단, 수탈과 대립의 질곡을 통과하고 난 사회의 외상 증후군이자 다수가 공유하는 잔상 이미지로. 경각을 자극할 이들 신호를 켜두고 우리는 오늘도 일상에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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