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중앙교회 길성운 담임목사 “청년들에게 아침밥 나눔, 하루 살아갈 힘 보태는 것”

류인하 기자

새벽 3시에 밥·반찬 준비 시작

섬유질 풍부한 나물·과일 포함

교인 5명씩 5개조로 나눠 배식

서울 유학 자취·취준생 등 이용

부모들이 고춧가루·쌀로 보답

부담 안 주려 전도 않기 등 원칙

길성운 서울 성복중앙교회 담임목사는 21일 교회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지난해 2월부터 1년5개월째 ‘온라인 예배’를 주로 하고 있다”며 “우리가 불편하더라도 이웃에게 근심을 주지 않고 잠시 멈춰 있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석우 기자

길성운 서울 성복중앙교회 담임목사는 21일 교회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지난해 2월부터 1년5개월째 ‘온라인 예배’를 주로 하고 있다”며 “우리가 불편하더라도 이웃에게 근심을 주지 않고 잠시 멈춰 있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석우 기자

매일 밥을 먹는 것은 ‘일상’이지만, 그 밥을 짓고 나눠주는 것은 ‘마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울 성북구 성복중앙교회는 2013년 2월부터 현재까지 8년 넘게 새벽마다 밥을 짓는다. 섬유질이 풍부한 나물과 과일, 샐러드부터 일주일에 2번씩 나오는 고기반찬은 지역 청년들의 든든한 ‘아침밥’이 된다. 이곳에서 밥을 먹는 청년들은 교인이 아니다. 지방이나 해외에서 서울로 ‘유학’ 온 자취생들과 졸업생, 취업준비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길성운 담임목사가 평일 오전 7시부터 8시10분까지 교회 무료급식 프로그램인 ‘새벽만나’를 시작하게 된 것은 ‘콩자반’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학교 내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반찬, 국, 종류별로 가격을 매기다보니 정해진 예산 3000원을 금방 넘겼고 돈이 없어서 콩자반을 내려놨다는 겁니다.”

그냥 넘겼던 청년의 말이 다음날 새벽기도를 하는 길 목사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눈물이 났다. ‘내가 그 친구의 어려움을 덜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침밥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21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재료준비에 필요한 예산 마련은 물론이고 새벽마다 밥을 짓고 배식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김희정 권사가 나섰다. 김 권사는 교회 인근인 고려대 앞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경력자였다. 두 달여 준비기간을 거쳐 ‘새벽만나’가 문을 열었다. 요리부는 매일 새벽 3시에 밥과 반찬을 준비한다. 교인 5명이 5개 조를 만들어 일주일씩 배식업무를 맡았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20~30명에 불과했던 ‘밥 먹는’ 청년들은 몇년 새 100여명으로 늘었다.

‘새벽만나’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균형잡힌 식사 제공하기’ ‘전도하지 않기’ ‘국산 식재료 쓰기’다. 길 목사는 “양질의 밥과 반찬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자취생들이 먹기 힘든 섬유질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밥과 반찬에 들어가는 재료는 100% 국내산이다. 소고기만 수입산을 쓴다. 길 목사는 “국에 들어가는 고기는 한우를 쓰지만 단가를 맞추다보니 반찬으로 제공되는 소고기만 수입산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식재료 값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새벽만나’에만 연 5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어간다. 자녀가 이곳에서 아침밥을 해결한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들이 보내온 고춧가루, 쌀 등도 귀하게 쓰인다. 덕분에 교회식당임에도 고려대 커뮤니티 ‘맛집’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길 목사는 “청년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이유는 배불리 한 끼 먹고 가라는 의미인데 밥 먹으러 온 청년들에게 전도한다면 목적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그는 아침밥을 먹는 청년들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한다.

청년들에게 하루 한 끼는 단순히 ‘밥’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길 목사는 알고 있다. “무료급식을 하면 청년들 버릇이 나빠진다는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잘못된 생각이라고 봐요. 청년들은 높은 주거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제일 먼저 ‘밥값’을 줄입니다. 꿈을 좇기 위해 먹는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포기한 밥을 주는 것, 그것은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는 이곳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유행 때는 식당 문을 열 수 없어 대신 도시락을 만들어 나눠줬다. 지금은 여름방학에 맞춰 식당 운영을 멈춘 상태다. 2학기가 되면 다시 문을 연다.

‘언제까지 아침밥을 줄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길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을 꺼냈다. “‘새벽만나’를 이용해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익을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면 그때는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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