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보고서에 청년은 없다···정치권, MZ 틀 깰 수 있을까읽음

문광호 기자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이태원참사진상규명과재발방지를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울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이태원참사진상규명과재발방지를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울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2017년부터 매년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핼러윈인 이태원은 늘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었습니다.”(생존자 김초롱씨)

“놀러가서 죽었다고요? 우리 청년들이 놀면 안 되나요? 어떻게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모든 걸 덮어씌우십니까.”(유족 최선미씨)

“현장에 그 젊은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문화회관이라도 하나 만들어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그런 공간을 만들어서 그 젊은이들 159명이 영원한 등불이 되도록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이태원 상인 남인석씨)

이태원 참사로 20대 106명, 10대 13명(극단 선택한 학생 포함)의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희생자의 74.8%에 달한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공청회에서 청년들에 대한 몰이해가 참사를 불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생존자 김초롱씨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공청회에서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을 향해 “위에 계신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간에 대한 이해”라며 “몰랐다면 스스로 무지했던 점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2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태원 참사 유족, 생존자들의 외침에도 참사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 국정조사 보고서에 ‘청년’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 밖에 등장하지 않았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지난 17일 55일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내놓은 902쪽짜리 보고서, 총 10만5693개 단어 중 단 한 번 쓰인 것이다. 보고서는 참사의 원인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규정에 따른 안전관리대책을 세우지 않은 점과 재난 상황 발생 초기 보고 및 대응 체계가 작동하지 못한 점”이라고 짚으면서도 왜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청년들의 문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핼러윈 인파’가 기사에 등장한 것만 해도 2013년부터다. 정부와 관할 지자체의 미흡한 예방조치는 국정조사보고서에서 수차례 지적됐다. 보고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2022년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관련 기관들은 다중인파관리 등에 대한 안전관리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대통령실, 행정안전부, 서울시, 경찰청등을 질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참사 트라우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희생자에게 “스스로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며 청년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2022년 12월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청년추모행동 관계자들이 행진에 앞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2022년 12월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청년추모행동 관계자들이 행진에 앞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빠지’가 뭐냐고?…청년층 문화에 무지한 기성 정치권

입법부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013년부터 이번 참사 직전인 2021년까지 국회 상임위 등에서 핼러윈이 언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2021년 11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언급된 것도 거리두기 완화로 인한 방역 조치에 관한 내용에 그쳤다.

관할 지역 의회인 서울시의회나 용산구의회도 마찬가지였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의원이던 2017년 11월 행정사무감사에서 “핼러윈 데이라든가 특별한 기간에는 견인차조차도 오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건 알고 있다”면서도 지역의 견인 문제만을 거론했다. 구의회에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온 건 2019년 2월13일 용산구의회 복지도시위원회 회의에서다. 당시 정의당 설혜영 구의원이 “지금 이태원을 봤을 때 이슈가 되는 부분이 할로윈축제”라며 “이태원이 굉장히 무법지대이고, 여러 가지로 혼잡하다고 한다. 구가 할로윈축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용산구는 관련 질의에 ‘구에서 주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

청년세대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입법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단적인 예로 청년들의 새로운 여가문화로 ‘빠지’(주로 강가에서 즐기는 수상 레저), ‘파티룸 대여’ 등이 떠오르지만 안전대책 등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지한 논의는 이뤄진 바 없다. 스토킹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청년들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음에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후에야 국회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제정했다. 이태원 참사 역시 재난안전관리법 개정안 등 사후약방문격의 뒷북 입법이 쏟아졌다.

대신 정치권은 청년층을 ‘MZ세대’로 호명하며 기성 정치권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12일 MZ세대에 대해 “MZ세대는 조국 사태,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LH사태를 보면서 좌파 기득권 카르텔이 만든 불공정에 분노한다”며 “이런 MZ세대의 새 물결이 일자 화물연대 파업도 동력 잃었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하는데 MZ세대라는 용어가 동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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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도 참여 못한 국정조사…“MZ세대로 매도되는 청년들에게 책임 전가”

최근 일부 매체는 MZ세대라는 단어로 청년층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 희화화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댓글에는 “징징대는 애들 많긴 하다” “MZ세대 책임감 없는 애들 많다” 등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달린다. 지난달 13~22일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가 20대 695명을 대상으로 MZ세대론에 대해 ‘20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보여 긍정적인지’, ‘20대를 마음대로 규정하는 것으로 보여 부정적인지’를 묻자 ‘부정적’이라는 답이 50.9%로 과반을 넘겼다(95% 신뢰수준 최대표본오차 ±3.7%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이른 바 ‘청년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해법으로는 청년 정치의 확대가 거론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1대 국회에 20대 청년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국회 국정조사특위도 20대 청년 없이 구성됐다. 국정조사 보고서 속 7가지 재발방지대책에 청년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국회 차원의 선제적 입법대책이 담기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55일의 국정조사 일정 중 청년 생존자 혹은 유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2일 2차 공청회 단 하루였다. 지난 10일 1차 공청회에서 차지호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옆에 있는 사람을 도왔던 가장 처음의 구조자였다”며 “이런 분들이 정책 결정 과정 중에 앞으로 재난 관련 안전 특위들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이 배워야 될 목소리가 정책들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책 결정과정에서 청년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정당의 청년 정치인 교육 및 충원시스템 연구’에 따르면 청년 정치의 대표적 모범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사민당에서는 청년조직이 토론회 등을 통해 당내는 물론이고 독일 정치의 중요한 현안들을 다양하게 논의한다. 사안에 따라 공식성명서를 내는데 중앙당 지도부에 강한 반대 의견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힘은 비례대표제 하에서 청년 할당을 보장하고 청년조직의 확실한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서 온다.

송영경 10.29 이태원참사 청년추모행동 지회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국정조사 결과로 밝혀낸 참사의 원인이란 것이 진짜 원인인지, 앞으로 이런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인지 물으면 아닌 것 같다”며 “이런 꼬리자르기식 결론은 청년이라는 매도되기 쉬운 대상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이 그곳에 왜 갔는지에 대해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았고, 한 총리처럼 청년세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말들만 이어가고 있다”며 “보고서에서 대다수가 청년인 희생자들을 그 자리에 있었던 운이 안 좋은 사람들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기성세대, 기득권 정치권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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