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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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과 지는 벚꽃이 닮았다 표는 준엄했다. 108 대 192. 보수여당이 대참패했다. 1988년 ‘1노3김’이 겨룬 13대 총선 이래 여당 지역구 의석이 처음 두 자릿수(90석)로 쪼그라들고, 그 의석마저 셋 중 둘은 영남(59석)이었다. 2년 전 대선에서 이긴 한강·금강에서 완패하고, 낙동강과 서울 강남에서 명줄만 부여잡았다. 중대선거구제와 비례제 확대를 반대한 여당은 누굴 탓할 것도 없다. 윷 던지듯 한 소선거구 진검승부에서 ‘모 아닌 도’를 잡았다. 그 투표함이 까진 4월10일 밤, 한국 정치는 또 한 번 개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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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더 늦기 전, 이재명은 청룡언월도를 들라 총선 공기가 달라졌다. 설 전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지지율(한국갤럽)이 ‘35 대 34’에서 ‘31 대 37’로 역전됐다. ‘김건희 디올백’ 파장은 끝난 건가. 여론조사 전문가 3명에게 물었다. 답이 재밌다. 그렇진 않을 거라고…. 설 전후엔 지역구 공천 여론조사·발표가 많았던 여당 표가 더 반응했을 수 있다고…. 여당의 ‘김무성 불출마·김성태 낙천 수락’ 뉴스와 민주당의 ‘친명·비명·친문 싸움’ 뉴스를 대비시킨 이도 있다. 선거 공학이든 몸부림이든, 셋의 총선 평은 모아졌다. 여당 상승세, 야당 내림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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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V2’의 디올백, 용산은 오늘도 잠 못 든다 엿새 전 새벽 2시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평 변호사의 페이스북 자작시에 ‘좋아요’를 눌렀다. 제목은 ‘슬픔의 의미’. “이제는 나의 때가 지나갔다고/ 헛헛한 발걸음 돌리니…”로 시작하는 시다. 대선 때 일찌감치 공개 지지해 ‘윤석열 멘토’로 불린 그는 얼마 전 “임금님놀이” “수직적 당정관계” “검찰정권”이라며 대통령을 직격했다. 왜 좋아요를 눌렀지? 시가 좋다는 건가? 세상을 멀리하겠단 말이 좋았나? 그러다 사람들의 눈이 다시 꽂힌 건 새벽 2시다. 대통령은 왜 깨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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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서울민국’, 그들만의 떴다방 정치 빛의 속도로, 대한민국과 한류는 압축성장했다. 반대로, 그 속도로 무너지는 게 있다. 46개월째 주는 ‘인구’, 브레이크 풀린 ‘기후위기’, 감사원이 100년 뒤 8개 시군구만 살아남는다고 경고한 ‘지역소멸’이다. 이 세 가지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고, 다 ‘서울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그 수도 서울을 집권당이 다시 넓히자고 해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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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강서에서, 한국 정치가 리셋된다 설은 형 집에서, 추석은 우리 집에서 지낸 지 두 해 됐다. 친지들도 여럿 모인다. 그 추석상엔 금칙을 정했다. 정치 얘기 않기로…. 소주 떨어져 슈퍼 갔다 오는 길, 어느 집에선 대낮부터 정치 언쟁이 붙었다. 툭 웃음이 터졌다. 하나, 두더지게임 같은 게 정치다. 술 한 순배 돌 때마다 “그런데~” 하며 튀어나오고, “그만요~” 하며 덮는 두 이름이 있었다. 윤석열과 이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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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오른쪽 날개가 앞으로 가고 있는가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8월을 휘저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논객들의 글도 한 달째 그 말을 붙들고 있다. “국가 지향점을 이념”으로 잡은 첫 대통령이어서일 게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맹종·추종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틀 짓고, 그들이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고 공격했다. 대통령이 곧 국가였고, 말끝은 야당·비판언론·진보적 시민사회를 겨눴다. 세상은 그날로 두 동강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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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무책임장관제’ “지금부터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지난 4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잼버리 담화는 다급했다. 중앙·지방 정부를 갈라친 속은 바로 읽혔고, 그 자체로 유체이탈이었다. 일국의 장관 셋이 공동조직위원장, 총리가 정부지원위원장이다. 열달 전 국회에 “태풍·폭염 대책 다 세워놓았다”던 김현숙(여가부 장관), 개막 3일 전 새만금에서 “사고 없도록 최선의 준비해왔다”던 이상민(행안부 장관), 연관어 ‘청소년’을 빼면 존재감 희미했던 박보균(문체부 장관)은 다 허깨비였나. 그러곤 목도한대로다. 냉방버스가 투입됐고, 화장실 청소에 1400명이 가세했다. 새만금엔 긴급 예산 99억원이, 대원들 전국 분산에 또 수백억원이 쏘아졌다. 세수 펑크난 나라에서 무슨 일인가. 총리가 할 게 걸레질인가. 그래야 움직이는 나라가 됐나. 왜 처음부터 못했나. 이 처참한 블랙코미디에 물을 게 끝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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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2년째 물난리, 국가는 또 없었다 “세숫대야로 들이붓네.” 물난리 난 16일, 부여 고향 친지는 전화 너머로 “비가 무섭다”고 했다. 예부터 하늘 뚫린 큰비를 세숫대야로 비유했었다. 친지는 그땐 한나절이고, 지금은 온종일 퍼붓는다고 했다. 백마강 벌판의 논·축사·비닐하우스는 다 흙탕물에 잠겼다고 했다. 나흘간 600㎜ 쏟아졌다니 눈에 선하다. 부여 비는 많이 온 축이다. 아니어도, 이 장맛비는 셌다. 산사태가 노부부·납골당·이주노동자를 덮쳤다. 오송 지하차도에선 수몰 참사가 또 벌어졌다. 50명이 세상 뜨고, 시·군·구 110곳에 이재민 나고, 여기저기 인재라니, 수해 민심은 펄펄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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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정녕 이동관뿐인가 2015년 8월27일자 경향신문 1면엔 ‘하나고, 남학생 늘리려 입시 조작’이 단독 톱기사로 실렸다. 사회면 톱 제목엔 ‘하나고, MB정부 청와대 고위인사 아들 교내 폭력 은폐’가 달렸다. 서울시의회 하나고 행정사무조사에 참석한 이 학교 교사 전경원씨 증언과 인터뷰를 담은 것이다. 학폭 사건엔 피해자가 4~5명이란 진술서, 교사 2명이 학폭위 안 열리는 걸 문제 삼은 교직원회의, 이사장이 이 실세의 전화 받은 걸 실토한 게 적시됐다. 며칠 후, 언론계 선배 전화가 왔다. “여기 밥자리에 통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 있어 바꿔줄게.” 이 기사 데스크(부장)를 보던 때였다. “이동관입니다.” 사실관계와 입장을 되묻는 말이 사무적이고 딱딱했는지, 통화는 짧게 끝났다. “4년 전 일”이고, “학교에서 공식 대응할 거”라던 말이 기억난다. 이동관을 옥죄는 학폭 사건은 8년 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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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민주당, 부수고 내치고 비워라 진보·보수 가릴 것 없다. 논객의 화두가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4월에 ‘전대 돈봉투’를 민주당이 서둘러 사과할 때까지만도, 신문 칼럼·방송 토론의 주과녁은 대통령이었다. 내세울 것 없고, 공약 파기·갈라치기·굴욕외교로 얼룩진 1년의 난타였다. 그 채찍과 진언도 잠시, 5월의 동네북은 ‘김남국 사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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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1년, 막 던지다 길 잃었다 ‘정권 심판 대 거야 심판.’ 지난 10일자 조간신문 1면에 꽤 많이 등장한 제목이다. 내년 4·10 총선의 여야 맞구호이고, 오늘의 국회를 압축한 여덟 글자다. 때마침, 2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같이 32%를 찍었다. 한 주 전 36%로 솟은 민주당이 다시 빠졌다. 여권이 외교·막말로 죽 쑤는 중에 거야엔 돈봉투 불씨가 지펴졌다. 여론의 진폭은 수도권·중도층에서 크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율도 한 달째 27~31%에 갇혀 있는 여권에는 빨간불, 제1야당엔 노란불이 켜진 걸 게다. 시소 타는 민심은 어느 쪽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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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전두환 손자의 ‘폭로’ 2002년이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에게 인사를 간 정치인을 따라 연희동을 찾았다. 밖에서 보이지 않고 접근도 어려운 집은 성채 같았다. “저 잔디마당에 비자금 금고를 묻어놨단 얘기가 있습니다.” 한 기자의 질문에 거실에서 담소하던 전씨는 “이봐 기자양반. 내려가서 파보쇼. 뭐 나오면 다 가져”라고 호기롭게 웃었다. “전 재산 29만원”이라는 문제의 법정 발언은 이듬해에 나왔다. 그렇게 비밀 많은 연희동 저택의 정적이 15일 한 손자의 폭로로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