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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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1년, 정순신만 괴물입니까 2022년 3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회견에서 집권 각오를 내놨다. “오직 국민 뜻에 따르겠다.”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은 따로 없을 거다.”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 없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지켰는가. 아니거나 아직이다. 돌이켜보면, 지켜진 문답도 있다. “(대장동 수사?) 그런 모든 문제는 시스템에 의해서 하는 게 맞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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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민중의 노래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한 자들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en).’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적·백·청의 프랑스 국기를 들고 바리케이드 위에 선 민중의 합창으로 끝난다. 영화는 빵 한 조각을 훔쳐 19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의 쫓고 쫓기는 운명을 그리며 19세기 파리 뒷골목의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을 수없이 담아낸다. 프랑스대혁명 후에도 궁핍하고 홀대받던 이들은 ‘다신 노예로 살지 않겠다… 내일이 오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리라’고 분노의 노래를 마친다. 영화 피날레의 백미로 손꼽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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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건폭과 깡패 정치는 말로 열고 닫는다. 화살과 방패가 되고, 심금을 울리고, 천냥 빚을 갚기도 한다. 그중에도 대통령의 말은 무게와 힘과 파장이 다르다. 관저에서 나와서 들어갈 때까지 모든 언행이 기록되는 공인이다. 그 대통령과 야당 리더의 험한 말이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건폭(建暴)’의 근절과 단속을 지시했다. 건설현장의 채용비리·갈취·폭력 행위를 조폭(조직폭력)과 학폭(학교폭력), 주폭(酒暴)에 빗댄 것이다. 대통령이 만든 신조어는 바로 검경의 ‘건폭수사단’으로 이어졌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건폭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건폭’을 꺼낸 국무회의에서 “옛날 직업 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각”이나 “사이즈”가 잡힌다거나, “버르장머리” “골로 간다” “조리돌림” 식의 비속어 사용이 많다. 26년 검사 생활 중 피의자를 몰아세우며 몸에 밴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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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단폭격과 V2로 온 천지가 난리다 마음 심(心). 갑골문의 이 한자는 심장의 형상을 본떴다. 옛사람들은 감정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나오는 걸로 알았다 한다. 생각·감정·의지와 중심도 뜻하는 한자는 그렇게 발원됐다. 언제부턴가 그 심자에 대통령·권력자의 성이 붙으면 나라를 휘젓는 큰 힘이 됐다. 박통·전통이 귀에 익은 유신·5공을 지나 1987년 직선 대통령이 등장한 후일 게다. 제왕적 총재로 산 노심과 세 김심이 있었고, 당권·대권이 분리된 또 한번의 노심과 이심·박심·문심 뒤로 이제 윤심이 입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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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주애의 호칭 상승 누군가의 권력·서열은 최고권력자와의 거리에서 드러난다. 동서고금의 철칙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선 더 도드라진다. 북한·중국의 열병식 주석단이나 당대회 좌석, 관영매체 호명 순서, 군부대 방문 동행자가 바뀌면 뉴스가 만들어진다. 그 정치적 함의를 읽는 것이다. 북한 권력지도에선 호칭 변화도 주목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대 세습 후계자로 뜬 것도 2009년 ‘청년대장 김정은’이란 말이 전해지면서다. 청년대장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만 썼던 칭호다. 김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2010년 9월 조선노동당 3차 당대회에서 공개되기 전 일이다. 2011년 아버지 사후 국방위 제1위원장·노동당 제1비서로 시작된 그의 직책은 현재 국무위원장·노동당 총비서·무력최고사령관이다. 관영매체는 통상 ‘경애하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2021년 집권 10주기엔 ‘위대한 수령’도 등장했다. ‘장군님’으로 불린 아버지도 생전에 못 쓰고, 김일성 주석만 쓰던 말이다. 권력 장악 후 우상화를 시도하는 징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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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찬밥’ 부처 지난달 21일 기획재정부가 시작한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가 종착역에 다다랐다. 27일까지 28개 부·처·청·위원회에서 이뤄졌고, 내주 금융위원회가 마침표를 찍는다. 유관 조직을 2~5개씩 묶고 전문가도 참여한 윤석열식 업무보고에선 세 그룹이 읽힌다. ‘실세’ 부처, 물 들어와 노 젓는 부처, ‘찬밥’ 부처이다.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병무청·방위사업청의 공동 업무보고에서 빠진 통일부는 27일 윤 대통령을 따로 만났다. 북한이 험담하며 거부한 ‘담대한 구상’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미사일·무인기 대치 후 “1000배 응징” “전쟁 불사”를 외치는 대통령 앞에서 분단국의 통일·대화 업무는 밀렸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는 외교안보 부처인데도 형식·내용 모두 ‘외톨이’가 된 업무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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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공안 본색’ 대통령과 동강 난 설 설이 코앞이다. 3년 만에 거리 두기 없고 ‘탈(脫)마스크’도 가까워져 설렌다. 정초부터는 기부한 출향인에게 지역 특산품을 주는 ‘고향사랑기부제’도 새로 자리 잡았다. 정지용의 ‘향수’나 이은상의 ‘가고파’ 노랫말처럼, 나고 자란 언덕배기·바다·골목을 잊을 이는 없다. 살다 쌓인 말과 그리움과 시름을 안고 저마다 고향·가족·친지를 찾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설 공기를 무겁게 하고 낯가리게 하는 대화가 생겼다.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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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오존층 회복 지구를 곧잘 사람의 몸으로 비유한다. 더워진 지구의 기후재난(홍수·가뭄·폭염·혹한·태풍·산불)을 늙어가는 인체(혈관·오장육부·이목구비·뼈·치아) 질환으로 설명하면 쉽다. 둘 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빈발하고, 되돌리기 쉽잖은 퇴행성인 까닭이다. 그 반전이 지구 성층권에서 일어났다는 희소식이 10일 세계를 흥분시켰다. 세계기상기구(WMO)·유엔환경계획(UNEP)·미 항공우주국(NASA) 등이 2040년까지 대부분의 지구 오존층이 1980년대 수준으로 회복될 거라는 공동 보고서 ‘오존층 감소에 대한 과학적 평가: 2022’를 내놓았다. 심각하게 훼손된 극지방 오존층도 북극은 2045년까지, 남극은 2066년까지 복원될 걸로 봤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는 냉장고·에어컨 냉매나 스프레이·발포제 등에서 나오는 프레온가스(CFCs·염화불화탄소)가 대표적으로 지목된다. 1989년 프레온가스를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된 지 33년 만에 세계 각국에서 이 가스 발생량을 99% 줄이는 데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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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인간 펠레 벌써 45년 전이다. 1977년 미국에서 ‘축구 황제’ 펠레의 은퇴 경기가 열렸다. 그는 전반전은 마지막 몸담은 뉴욕 코스모스팀, 후반전은 15살에 입단해 18년간 뛴 브라질 산투스팀 옷을 입었다. 축구계 최고 상인 발롱도르도 유럽 선수만 주던 때였다. MZ세대는 낯설 흑백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 있는 삼바축구의 영웅, 펠레가 30일 암투병 끝에 영면했다. 향년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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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자유’, 누구를 위해 외칩니까 추워도, 서쪽 하늘은 붉다. 낙조와 상념이 포개진다. 해를 넘는 일이 줄지어서일 게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대통령 사과와 문책이 그렇다. 이재명·문재인 청와대·김건희 수사가 그렇고, 영수회담이 그렇고, 화물차 안전운임제·노란봉투·건보 국고지원·차별금지·공영방송 지배구조 입법이 그렇다. 어느 12월이 다를까마는, 답 없는 번뇌와 울화로 가는 해를 놓지 못하는 이가 저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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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관저정치 밤에, 휴일에 대통령이 누굴 만나는가. 정가의 영원한 관심사다. 관저에서 세상 얘길 나누는 이가 대통령 복심도 가장 잘 읽고 움직일 거라 보는 것이다. 박철언(노태우)·김현철(김영삼)·박지원(김대중)·유시민(노무현)·이재오(이명박), 민간인 최순실(박근혜)과 정권 초의 김경수(문재인)도 그런 위치였다. 왕의 남자와 숨은 실세로 불린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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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대통령이 참 좀스럽다 몹시 끔찍할 때 무참(無慘)하고, 더없이 부끄러울 때 무참(無慚)하다. 6개월 넘긴 ‘윤석열 시대’가 그렇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4주째 사과의 덫에 갇혀 있다.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는데도, 국민은 제대로 다시 하란다. 158명이 억울하게 죽은 참사에 책임 물은 장관 하나 없어서일 게다. 대통령의 사과는 납득할 문책 뒤에 누가 뭘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어찌보면, 타이밍과 진정성은 이미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