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오지호·김주경이 1938년 발간한 2인 화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화집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화집은 단순한 ‘효시’의 의미를 넘어선다. 내용이라야 두 작가의 작품 사진 20장과 논문 2편이 고작. 그런데도 당시 6원이던 이 화집이 요즘 골동가에서 1백만원을 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인상주의 회화의 유입 및 정착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크고 희귀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광(光)의 예술이다. 태양에서 난 예술이다. 회화는 태양과 생명과의 관계요, 태양과 생명과의 융합이다. (중략) 회화의 내용은 생명이요, 형식은 생명의 표현이다”
인상주의 회화와 그 화법을 우리 화단에 정착시킨 오지호(1905~82). 김주경과 함께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한 그는 다른 인상주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빛과 대기의 흐름을 중시했으나 굴절된 일본의 인상파를 결코 답습하지 않았다. 우리 여건에 맞게 그 뜻을 재해석, 수용해나간 것이다. 그 키워드는 ‘한국 산하의 아름다움’. 암울한 회색조의 일본 풍경과는 달리 밝고 대담한 색채를 사용해 한국의 자연을 그렸다. 그것도 일제 강점기에서 였으니 그의 주체적 의식이 없었다면 인상주의의 토착화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런 오지호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전람회가 마련됐다. 20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오지호전. 49년 ‘봄 풍경’에서 80년의 ‘거리의 풍경’에 이르는 25점이 출품됐다. 비록 소품들이지만 한국 인상주의 흐름의 윤곽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40년대의 향토적 해안풍경, 50년대의 흥취어린 색채와 필치의 시골풍경과 꽃 작품, 60년대 한결 중후해진 붓놀림의 작품, 70년대 자주색조 분위기의 화필작업 등이 시기별로 정리됐다.
그의 ‘색채와 빛’의 탐구여정은 50년대 후반 기법적 독자성을 이루고, 70년대 이후 말년 작품에 이르러서는 완전 만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화려하고 강렬한 필치의 바다풍경은 그 기량이 유별나게 돋보이는 경지에 도달했다.
작가는 이론에도 밝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론집인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알파벳 문명의 종언’ 등의 책을 냈으며, 한글전용정책에 반대해 한자교육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아직 할 일이 많다”며 생전에 회고전 한 번 갖지 않은 것도 그의 곧고 고집스런 성품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런 탓인지 18주기가 다 되도록 추모전 등 그의 작업을 본격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활동무대가 ‘호남’에 국한됐다는 이유로 세속적인 작품가격에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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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을 살펴본 미술평론가 이구열씨는 “오지호는 인상주의를 따르면서도 재현적 사실주의와 거리를 둔 순수한 회화 창조로서의 조형성을 중시했다”며 “그의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02)732-3558
〈이용전문위원 ly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