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배생활 3년째에 접어들던 1842년 12월15일, 추사 김정희는 한장의 편지를 받는다. 예산 옛집에서 부친 지 한달 만에 도착한 편지는 부인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였다. 부고를 받은 추사는 부인에 대한 슬픈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붓을 들었다.
“어허! 어허! 내 일찍이 옥에 갇히기도 하고 귀양까지 왔지만 한번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소. 그런데 지금 부인의 상을 당해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 마음을 붙들 길이 없으니 이는 어인 까닭인가요.
어허! 어허!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 망정 오직 부인만은 죽어가서는 안될 처지가 아니겠소. 죽어서는 안될 처지인데 죽었으니 그 지극한 슬픔과 원한을 어찌 하겠소. 그 슬픔 뿜어내면 무지개가 되고 그 원한은 우박이 되어 내릴 것이니 공자님이라 하더라도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오(하략)”
‘부인 예안김씨 애서문(哀逝文)’이라는 추도사는 임종은커녕 시신조차 돌보지 못한 추사의 애끊는 마음을 담고 있다. 살아서의 이별이 사별(死別)로 이어진 기막힌 현실 앞에서 그는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그래도 부족했던지 그는 또다시 한편의 시를 지어 부인의 넋을 달랜다.
“내 저승에 가 월로(月老:결혼을 주관하는 신)에게 애원하여/내세에는 그대와 나 처지를 바꿔 태어나리/나 죽고 그대 살아 천리 밖에 남는다면/이 마음 이 슬픔을 그대가 알리마는”(那將月老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한시 ‘부인의 죽음을 애도함’(悼亡)은 현존하는 추사의 많은 시 가운데 절창으로 꼽힌다. 이 시는 워낙 유명해 옛날 선비들 사이에서는 널리 유행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378수의 시가 수록된 추사의 시문집 ‘완당선생전집’(신성문화사·1934)에는 이 시가 빠졌다.
영원히 잊혀질 뻔했던 이 시가 살아남은 것은 한 한학자의 혜안 때문이었다. 1980년대 ‘완당선생전집’을 번역하던 우전 신호열 선생(1914~93)은 문집 속에 추사의 도망시(悼亡詩)가 보이지 않자 서둘러 포함시켜 우리말로 옮겼다. 전집에 도망시를 추가해 넣었으며 국역본에도 실었다.
이로 인해 86년 간행된 ‘완당전집’(신호열 옮김·전3권·민족문화추진회)에는 추사의 도망시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좋은 시를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노학자의 열정이 원전에도 없는 시 한편을 되살린 것이다. 반면 99년 출간된 ‘추사 김정희 시전집’(정후수 옮김·풀빛)에는 빠져 있다. 똑같이 ‘완당선생전집’을 국역 대본으로 삼았지만 이 책은 원전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