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계속된 ‘언론개혁’ 논쟁이 최근 언론사주 구속문제로 또다시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현직 중견 언론인들이 공석에서 자사 이익을 위한 편향·왜곡 보도의 실상을 털어놓는가 하면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언론사 내부의 민감한 문제들을 과감하게 제기해 언론계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20일 서강대 언론대학원 주최로 열린 ‘언론개혁과 뉴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동아일보 전진우 논설위원은 현 정부의 ‘언론탄압’ 조치가 조선·중앙·동아 3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영남시장 확보를 위해 DJ 비판기사를 브레이크 없이 경쟁적으로 과장·확대·왜곡해서 써온 이들 3개사에 정부가 ‘괘씸죄’를 적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동아일보가 그간 지면을 통해 보여온 ‘비판언론 목조르기’론에서 일견 크게 나아간 것이 없는 듯 보이나 지난해 추석 즈음 ‘신음하는 영남경제 현장취재’ 기사 이후 언론계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동아일보의 ‘지역감정 편승전략’을 책임있는 내부 구성원이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발언이었다.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한 발언이기는 했으나 공식적인 학술대회장에서 있은 전위원의 이같은 ‘고백’은 동아일보가 영남시장 공략을 통한 사세확장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무리를 해서라도 의도적인 DJ 비판기사를 작성해왔다고 자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위원은 이처럼 지역감정에 기댄 DJ 비판기사 양산의 선두주자로서 조선일보를 꼽은 뒤 “조선일보는 지나치게 시대 역행적이고 보수적이며 왜곡을 마다하지 않는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위원은 그러나 “현재 영남권에서 시장점유율 1위인 조선일보가 의혹만 가지고 DJ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 해도 영남시장에서는 그런 기사가 먹혀들기 때문에 신문업계 경쟁의 속성상 우리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며 현실적인 한계를 토로했다.
또한 MBC 최한수 해설위원은 이날 거침없는 발언으로 토론회 참가자들의 이목을 붙잡았다. 최위원은 지난 6월 조선일보 변용식 편집국장이 사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인구 4분의 1이 같은 시간에 조선일보를 본다”고 한 데 대해 “오만에 가까운 발언”이라고 질타했다.
이와 함께 최위원은 소속사인 MBC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여론수렴 과정이 협소해 사내 민주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요보직을 특정지역 출신이 차지함으로써 사내 여론을 수렴하는 장치가 마비되고 여기서 소외된 그룹은 그들 나름대로 ‘권토중래’를 위해 업무보다는 업무외적인 일에 더욱 열중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최위원의 이같은 소신있는 ‘내부비판’은 자사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현 언론계 풍토에서 많은 교훈을 던져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족벌신문들과 지면을 통해 ‘언론개혁’ 문제를 두고 격렬한 공방을 벌여온 한겨레의 이원섭 논설실장은 “정부가 대중매체를 장악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그 의도를 비판하는 데 눈이 멀어 정작 편집권 독립 등 많은 언론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를 본질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실장은 이어 “정부 의도대로 ‘언론개혁’이 가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나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당초 정해영 조선일보 부국장도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불발로 끝나 아쉬움을 남겼다.
〈권재현기자 jaynew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