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15)대전 구즉도토리묵

“대전에 가면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대전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대전을 구석구석 돌아다녀보면, 비록 ‘전주비빔밥’이나 ‘춘천막국수’처럼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음식은 드물지만 제법 맛있고, 특색있는 음식이 곳곳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전시민들이 자신있게 내놓는 음식이 바로 ‘구즉도토리묵’이다. 구즉도토리묵은 대전의 ‘6미(味)3주(酒)’ 가운데 하나이다. ‘6미3주’는 6가지의 별미음식과 3가지의 전통술을 지칭하는 말이다. ‘6미’에는 구즉도토리묵·설렁탕·돌솥밥·삼계탕·숯골냉면·대청호매운탕 등 6가지 음식이, ‘3주’에는 오미자주·국화주·구즉농주 등 3가지의 술이 각각 들어간다.

얼핏 보면 ‘대전의 6미’는 대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인 것처럼 느껴진다. 묵, 설렁탕, 돌솥밥, 삼계탕, 냉면, 매운탕 등 우리 국민 누구나가 즐겨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전6미’에는 대전사람들이 독특하게 발전시켜온 맛과 조리법이 있다.

#대전 6미의 대표

‘대전6미’를 대표하는 음식이 바로 ‘구즉도토리묵’이다. 구즉도토리묵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즐겨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구즉도토리묵의 ‘구즉’은 지명이다. 도토리묵을 내놓는 음식점이 모여있는 유성구 ‘구즉마을’을 뜻한다. 도토리묵은 서민의 음식이다. 어딘가 모르게 ‘가난’의 냄새도 배어 있다.

대전 유성구 구즉마을의 도토리묵도 당초 ‘가난’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토리묵’은 구즉 사람들에게 하나의 생계수단이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인근 야산 등에서 주운 도토리를 묵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거나 집에서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초부터 묵을 만들어 파는 집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구즉은 ‘묵마을’로 이름을 굳혔다. 농가들이 부업 형태로 만들어 팔던 묵은 93년 열린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대전시는 구즉 묵을 ‘향토음식’으로 지정했고 묵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구즉마을은 아예 ‘묵촌’이 됐다. 대전엑스포 이후 10년, 요즘 구즉독토리묵 마을은 언제나 시골장터의 왁자한 분위기이다. 묵과 함께 ‘훈훈한 인심’을 그릇에 그득그득 담아 내놓는 묵집이 무려 30여개나 된다.

도토리묵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 수 없기도 하다. 웬만한 경험이 없으면 맛있는 묵을 만들기 힘들다. 조리법은 비교적 간단해 보이지만 조리과정의 ‘노하우’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

도토리묵의 주재료는 가을에 주운 도토리이다. 묵의 재료로는 졸참나무 도토리가 가장 좋은 것으로 전해진다. 도토리묵을 만드는 첫 작업은 껍데기를 까서 말린 도토리를 절구에 넣어 가루로 만드는 일이다. 가루로 변한 도토리는 4~5일 동안 물에 담가놓으면 특유의 ‘떫은 맛’이 사라진다.

떫은 맛이 다 빠지면 윗물을 걷어내고 가라앉은 앙금만 큰 솥에 넣고 불을 지핀다. 이때 잘 섞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앙금이 끈적끈적하게 엉기면 틀에 붓고 식혀 ‘묵’을 만들어낸다. 만들어진 묵은 조리하는 음식에 맞게 적당하게 잘라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토리묵을 손가락 굵기의 채로 썰어 멸치·다시마·무 등을 넣어 끓인 육수를 붓고 잘게 썬 김치와 김을 얹으면 대전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즉도토리묵’ 요리가 완성된다. 얼핏 ‘묵무침’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무침과는 다른 이 요리를 ‘묵국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구즉묵마을 음식점의 차림표에는 그냥 ‘도토리묵’이라고 써놓는 경우가 많다.

#독특한 향기에 반해

구즉도토리묵을 먹어본 사람 중에는 도토리묵 특유의 ‘향기’에 반한다는 말을 자주하는 경향이 있다. 은은하고 구수한 도토리의 향이 시원한 멸치육수에 녹아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여기에 새콤한 김치의 냄새가 가세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향기가 된다.

구즉도토리묵은 밋밋한 접시에 나오는 다른 지역의 묵과 달리 국물과 함께 오목한 그릇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젓가락질이 서툰 사람도 짜증낼 필요가 없다.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된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구즉도토리묵의 맛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구즉마을 일대의 묵집에서 직접 만든 동동주, 두부 등을 곁들여 먹으면 시골 고향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밖에 도토리묵을 이용한 요리로는 간장, 파, 참기름, 고춧가루, 깨소금 등으로 만든 양념장을 넣어 무쳐서 먹는 도토리묵무침과 묵부침개 등이 있다.

구즉도토리묵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부담없는 가격’이다. 도토리묵은 한 그릇에 3,000원선이고 도토리묵부침개는 1개에 2,000원선, 도토리묵무침은 5,000원선이다. 4인 가족이 도토리묵부침개와 도토리묵무침을 시키고 도토리묵을 1인당 한 그릇씩 먹어도 1만9천원이면 된다.

/윤희일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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