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는 중동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석유이권이나 이스라엘의 이해, 군사적 교두보 확보 등 다른 의제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기에는 너무도 가치있고 중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동을 지배하고, 제멋대로 뒤흔들려했던 외국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해 우리 아랍인들이 어떤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과거 식민주의를 거부했던 미국이 힘으로 중동을 지배하려다 1백만명 이상을 희생시킨 ‘늙은 유럽’의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은 참 당혹스러운 일이다.
워싱턴은 중동에서 이중 잣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의 맹방들 중에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국가들도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1년간 미국의 가장 가까운 맹방 이스라엘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가택연금시키고 선거로 뽑힌 팔레스타인 국회의 소집을 방해해온 것을 외면했다.
미국인들처럼 아랍인과 이라크인들도 이라크의 정권교체를 원한다. 그러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불타오르는 유전으로부터 환경 재앙을 일으킨 후 바그다드에 미군 통치자를 내정하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부시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것처럼 보복공격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체주의 정권과 이데올로기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킨다고 주장하지만 민주주의자들에게 수단은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법을 적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이라크의 정권 교체를 가져오겠지만 민족적, 종교적 갈등의 고통이 지속되는 이 땅에 민주주의 대신 혼돈을 초래할 것이다.
후세인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20년에 걸친 미국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운명은 얼마남지 않았지만 이라크 국민과 문명은 계속 남게 된다. 수십년의 분쟁을 겪은 이 지역은 이제 또다른 전쟁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안정을 필요로 한다. 이는 자유와 점진적인 개혁을 지지하는 한편으로 이라크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는 타인과 국가 사회에 대한 시민의 의무에 찬성하는 개인들을 기반으로 한다. 민주적 변화의 진정한 원동력인 시민들이 마음 속에서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낸다면 후세인과 같은 독재자는 곧 사라진다. 하지만 민주적 가치들이 아랍 사회에서 뿌리내릴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면 권력 장악을 위해 민주주의를 흉내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독재자를 대신할 것이다.
백악관에서 이라크 문제가 위급해진 것은 9·11테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을 동일시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들은 세계 대다수 시민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오늘날 아랍 민주주의자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의 두려움이다. 실제적인 두려움이건, 상상속의 두려움이건 말이다. 그들은 부시 정부가 유엔 안보리의 동의를 얻기 위해 미국민들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을 허무하게 지켜봤다. 아랍 민주주의자들은 민주적인 미국만이 전쟁을 향한 워싱턴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어느 누구도 아랍 근본주의자들과 미국 우파들의 종말론적 정치를 막지 못한다.
이제 민주주의자라면 나라에 상관없이 모두 전쟁을 부추기는 정치인들과 맞서야 한다. 독재자들에게 반대했던 것과 똑같은 확고한 신념으로 맞서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자들은 가치를 이해관계 위에 놓고 또 휴머니티를 두려움 위에 놓고 평화와 민주주의가 모두에게 가능해지도록 다른 대륙과 종교를 아우르는 연합을 창설해야 할 것이다.
〈정리/문주영기자 arami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