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3 핫이슈]‘새만금 살리기’ 3보1배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2003 핫이슈]‘새만금 살리기’ 3보1배

입력 2003.05.21 18:41

새만금 간척공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일념으로 초인적인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진을 해오고 있는 ‘새만금 갯벌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기도 수행단’의 서울 입성을 앞두고 새만금 사업의 강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순례단이 서울에 도착하는 23일부터 환경·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일 태세인 데다 일반인들도 삼보일배 순례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내오는 등 새만금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삼보일배 순례는 2000년 백지화된 동강댐 건설 반대 운동에 이어 자연생태계 보전에 관한 사회의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숨까지 버리려는 고행=지난 3월28일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을 출발해 행진 55일째를 맞은 21일 오후 3시쯤. 최종 목적지인 서울을 눈 앞에 둔 남태령 고개에서는 삼보일배 순례의 긴 행렬이 고요한 침묵 속에 이어지고 있었다. 500여명이 참가한 행렬의 선두에 선 수경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문규현 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이희운 목사(기독생명연대 대표), 김경일 교무(새만금 생명 살리는 원불교 사람들 대표)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졌다. 삼보일배의 고행도 모자라 지난 4일부터 일절 입을 열지 않는 묵언 수행을 시작한 이들의 표정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무릎 관절이 불편한 수경스님은 열흘 전부터 아예 치료조차 거부하고 있다. 극단적인 고행으로 새만금사업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절뚝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지만 지금까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행렬에 참가한 인사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3월 삼보일배의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아무도 이들의 서울 입성이 가능할 것으로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울까지 이르는 305㎞의 길을 ‘죽음의 길’이라고 말했다. 고행에 참가한 문성현 신부는 동생 규현 신부를 향해 “길에서 죽느니 차라리 새만금 공사 중단을 외치며 함께 분신하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루 8시간씩 매일 4~5㎞를 나아가는 강행군 속에 ‘공사를 중단하고 새만금 갯벌에 생명을 불어넣자’는 비원으로 하루 평균 2,000차례 절을 한다. 어림잡아도 지금까지 10만차례 절을 한 셈이다.

서울로 북상하던 이들은 지난달 7일 금강하구 근처에서 2개 팀으로 나눠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계속 서울로 향하고, 이희운 목사와 김경일 교무는 전북도청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전북지역 주민들의 상당수가 새만금공사 강행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겠다는 의지에서였다. 같은달 23일 홍성에서 다시 합류한 이들은 아산~천안~평택~수원~과천을 거쳐 23일 서울 사당동에 도착할 예정이다.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고행의 행렬을 지켜보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이들의 역설적인 몸짓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깊은 감화를 받은 표정들이다.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순례단을 방문한 어머니들도 많았다. 새만금공사를 주관하는 농림부의 김영진 장관, 한명숙 환경부 장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포함해 김원웅 의원, 배우 명계남씨, 영화감독 장선우씨 등 각계 인사들이 이들을 찾아와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새만금공사 중단 기로에=23일 서울에 도착한 순례단은 25일 여의도에서 ‘새만금 갯벌의 생명평화 기도회와 시민대회’를 연 뒤 다시 신촌~서울역을 거쳐 31일 시청 앞에서 열리는 ‘새만금 사업중단 결정 촉구 시민대회’를 마지막으로 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는다. 특히 23일부터는 일반인도 삼보일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순례행진 참가자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운동연합 박경애 홍보팀장은 “매일 상황실로 100여건의 참가 신청이 접수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원까지 합치면 수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다수 환경·시민단체들이 서울 순례에 함께할 뜻을 내비쳐 새만금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순례단 길잡이 역할을 하는 녹색연합 박인영 자연생태국 간사는 “새만금사업의 정확한 실상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실무조사를 거쳐 실질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리도록 정부에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북지역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새만금사업 강행과 조속한 완공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삼보일배 순례단의 서울 입성이 다가옴에 따라 전북 전주시의회 의원과 새만금완공추진위원회도 국회, 환경부 등을 항의 방문해 새만금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또 지난 20일 군산시 옥도면의 8개 섬 주민 200여명이 상경해 순례단과 나란히 대항행진을 벌이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앞으로 순례단의 행진이 끝나는 날까지 대항행진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북새만금추진협의회 편영수 사무총장은 “환경단체들이 자신들에 우호적인 참여정부를 이용해 이미 10년 전에 시작한 새만금사업을 원점으로 돌리려 한다”며 “지역발전과 주민생계를 위해 사업 중단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의 도약과 정부의 고민=환경·시민단체들은 이번 삼보일배 순례를 통해 그동안 잊혀졌던 새만금 문제를 다시 여론화하는 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종 목표는 새만금사업의 중단이다. 공사 중단 목소리가 커질수록 전북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정부로서는 난감한 입장이다. 오랫동안 이 사업을 지역발전과 연계해 생각해온 전북지역 주민들의 정서에다 최근 ‘호남소외론’까지 불거져 나오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돼 버렸다. 또 공사를 강행키로 해 이번 순례의 지도자인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 등이 단식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할 경우 국민정서가 어떻게 바뀔지 잘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새만금사업을 계속할지, 아니면 중단할지 논의하기 위한 ‘신구상기획단’을 다음달 초까지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농림부와 환경부 등 관련부처뿐 아니라 해당지역 주민까지 포함해 새만금사업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하고 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신현기기자 nol@kyunghyang.com〉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