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판사들이 대법원장의 신임 대법관 제청 방침에 반발한 채 항의 사표와 함께 ‘연판장’ 작성에 들어가 사법파동이 재연될 조짐이다. 대법원은 그러나 “대법관 인사 제청권은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이며 기존 방침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밝혀 법원 안팎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지법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는 13일 “현재 진행중인 대법관 제청 과정은 서열주의 관행에 변화를 원하는 법원 안팎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결과”라며 “대법원장에게 재고를 요청하기 위해 전국 판사들을 상대로 의견수렴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판사는 “전국 법관들의 e메일 연명서를 받아 대법원장에게 정식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법관들의 의견’이라는 글을 통해 “대법원이 소수의 기본권 보호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다양한 입장이 조화를 이룬 대법원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인사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이 검증된 법조인이 제청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지법 박시환 부장판사(50·사시 21회)는 “이번 새 대법관 선임의 내용은 기존 기준과 방식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해 사법부의 변신을 간절히 기다려온 국민과 법관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사직서를 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개혁과 도약을 이루는 전환의 계기를 맞았을 때조차 사법부는 아무런 변화를 이루지 못한 채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사법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서열위주의 인사를 타파해야 대법원이 개혁된다는 것은 법조인은 물론 국민 대다수의 바람”이라며 “지난 12일 추천된 인사의 면면은 그 기대에 부응치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사태의 파문이 확산되자 긴급 대책회의를 가진 뒤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에 보장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사실상 제약하는 방식으로 의견 개진이 이뤄진다면 이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대법원 이강국 법원행정처장은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이 자문위원직을 사퇴한 것은 법조 관련 직역 대표자로서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김준기·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