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에 들자, 말 그대로 속기(俗氣)가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더위를 피하기 위해 굳이 길 막히는 바다를 찾기보다 속기 없는 명산을 찾아 마음을 담그고 오는 편이 더 현명한 피서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총지선원은 학승의 자랑대로 엄격한 수행정진을 강조해 ‘호랑이 스님’으로 불린 금오스님의 선풍을 잇고 있다. 경허, 만공, 보월의 가풍을 잇고 있는 금오스님은 “참선이 없는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참선이 내 목숨을 쥐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일관되게 참선을 강조했다.
스님은 깨우침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스승 찾기’를 꼽았다. 스님은 생전에 “도를 배우려면 먼저 눈 밝은 스승에게 나아가야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도업을 성취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며 “먼저 스승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불교, 그 중에서 선불교의 맥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치열하고도 장중한 인가과정을 통해 이어져왔다는 사실은 이제 하나의 상식이 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이 구도행각의 맨 앞자리에 ‘스승 찾기’를 내세우는 것은 그만큼 참선수행에 있어 스승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개인적 슬픔이 배어있기도 한 것이었다.
금오스님은 원래 만공스님의 수제자였던 보월스님에게 깨달음을 인가받아 그의 법제자가 될 예정이었으나, 보월스님이 얼마 뒤 29세의 젊은 나이로 입적하는 바람에 전법식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전법식을 마련해주고 전법게(傳法偈)를 하사한 스님은 이런 사제지간의 아픔을 알고 있던 만공스님이었다. 세속으로 말하면 일찍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를 대신해 할아버지가 손자를 거둔 격이다. 만공스님의 전법게에는 손자의 아픔을 달래는 따뜻함이 배어나온다.
덕숭산맥 아래/ 무늬 없는 인을 지금 전하노라
보월은 계수나무에서 내리고/ 금오는 하늘 끝까지 날으네
금오스님은 겉으로는 무서울 정도로 자신과 제자들에게 엄격했지만, 때로는 그 마음씀이 세밀했다고 한다. 4년 전 입적한 금오스님의 제자 탄성스님에 따르면, 어느 날 한 스님이 소포를 싼 끈을 가위로 끊으려 하자 “끊지 말고 풀어라. 그렇게 툭 끊는 버릇을 하면 마음도 그렇게 된다. 맺힌 것은 풀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를 지켜 본 탄성스님은 이후부터 물건을 쌀 때 꼭 풀기 쉽도록 했고, 이를 입적할 때까지 지켰다.
총지선원에 전국의 운수납자들이 몰려드는 것도 이러한 따뜻하고 맑은 전승가풍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홍섭/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