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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궁궐의 숲-경복궁·창덕궁

입력 2004.12.02 15:43

‘궁궐의 숲’에는 ‘궁궐’이 주는 호화로움과 ‘숲’이 주는 편안함이 어우러져 있다. ‘야생의 숲’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궁녀들의 치마 끄는 소리가 사그락거리고, 후궁들의 교태스런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궁궐의 숲’.

우리나라 궁궐의 비경 가운데 제일을 치자면 비원일 것이다. 창덕궁 후원인 비원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들은 600여년 전 왕족들이 숨쉬는 역사의 공간으로 빠져든다. 속세의 어수선함이나 사악함 따윈 끼어들 여지가 없는 지세(地勢)임에랴. 국내외 관광객들이 이 곳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인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조선 최고의 정궁인 ‘경복궁의 숲’은 삭막함 그 자체이다. 일제강점 속에서 방치와 훼손의 길을 걸어온 ‘경복궁의 숲’은 그나마 ‘경회루’와 ‘향원지’를 중심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경회루’와 ‘향원지’ 주변의 굽은 솔과 능수버들은 500년 왕조의 시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 역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방치와 훼손의 길을 걸어온 경복궁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고단하고 외로워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경복궁의 나무들은 위로 자라지 못하고 땅과 사람들 가까이로 눕는다.

#경복궁이 걸어온 길

1395년 경복궁이 완공됐을 당시의 풍경을 잠시 상상해 본다. 수많은 인력들이 동원돼 산에서 잘라온 나무들을 줄줄이 어깨에 메거나 수레에 싣고 더위와 추위에 아랑곳없이 궁터로 날랐을 것이다. 임금님이 계실 신성한 곳이기에 온 정성을 다해 지었을 터이다. 사실 경복궁은 조선의 ‘심장’이었다. 조선 왕조를 일으킨 태조 이성계는 즉위 직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궁궐 공사를 서둘렀다. 백악(북악)을 진산으로 하고 목멱(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자리잡은 궁궐 터가 바로 ‘경복궁’이다. 조선 건축물의 일반적인 양식대로 전면에는 왕이 신료들과 만나 정사를 돌보는 공간을 배치했다. 뒤쪽에는 왕과 왕실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휴식공간인 후원을 꾸몄다. 조선 초기에는 북악에서부터 지금의 청와대 일대가 모두 왕실 후원이었다. 당시 후원은 왕실의 휴식공간뿐만 아니라 사냥터를 비롯,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기도 하는 수확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없어져,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사업을 일으키기까지 약 300여년은 폐허의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또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고종이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옮긴 후 ‘경복궁’은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또다시 폐허의 길을 걸었다.

1910년 한일합병 후에는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200여동에 달하던 전각이 거의 다 파괴되어 ‘경회루’와 ‘근정전’ 등 10여동만 남았고, 경복궁의 경관은 완전히 훼손되고 말았다. 원래 경복궁에는 북악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많은 나무들이 식재(植栽)되어 있었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팔매나무, 산벗나무, 서어나무, 느티나무, 오리나무 등의 군락이나 층층둥굴레, 매발톱나무와 같은 희귀식물들이 분포해 있었다. 일제는 경복궁 내의 우리 나무들을 제거하고 궐에는 잘 심지않는 벚나무, 은행나무, 가이스카향나무, 아카시아 등을 의도적으로 심었다. 36년 신문기사에 경복궁 벚꽃놀이가 소개될 정도. 일제가 기존 수목을 제거하고 벚나무를 많이 심은 것을 알 수 있다.

#창덕궁 순례

‘궁궐 숲’의 진면목은 창덕궁 후원이다. 오죽했으면 그 곳을 비밀스러운 숲, ‘비원(秘苑)’이라 불렀을까. 돈화문을 열고 금천교를 지나 여봐란 듯이 달려가면 숙장문이 나온다.

‘인정전’을 지나 후원으로 이르는 돌담길에는 임금님의 용포자락과도 같은 적단풍이 초겨울의 찬바람에 오히려 절정을 이루고 있다. 단풍에도 격이 있는지 이 곳의 단풍은 붉디 붉고, 낙엽조차도 금간 데 없이 고결하다. 비에 젖은 낙엽들이 뿜어내는 향기로운 냄새가 바람을 타고 일렁거리는 가운데 100여m의 단풍터널을 지나면 본격적인 후원에 해당하는 ‘부용지’가 나온다. 상수리나무, 음나무, 주목 등 일찍 잎을 떨구고 나목으로 서 있는 고목들과 빛바랜 단청, 호박빛을 머금은 단풍은 이 곳이 대도시 중심에 있는 실경(實景)인가 싶을 정도로 황홀감에 젖게 한다.

‘부용지’ 뒤를 돌아 ‘연경당’에 이르는 오솔길은 담장 안의 숲이라 믿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소나무, 잣나무, 회화나무 등 수백년 수령의 고목들이 청년처럼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 ‘선우정’의 야트막한 담장 안으로 비쳐드는 고목의 그림자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신령스럽다. 아무리 바빠도 이 곳에서는 한 걸음에 하나씩 돌계단을 밟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른 곳은 ‘연경당’이다. 임금이 사대부가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지었다는 ‘연경당’은 ‘창덕궁’ 내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없는 건물이다. 사대부의 집답게 ‘연경당’의 차실(茶室)에서 바라본 숲은 바깥마당을 내려보듯 포근하게 감겨온다. 복사나무, 뽕나무, 철쭉, 당나무 등이 ‘연경당’ 가까이에 심어져 있다.

올 봄까지만 해도 금단의 지역이었던 ‘옥류천’ 일대에 이르는 숲길은 마치 깊은 산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밤나무, 물푸레나무, 팥배나무 등이 토해낸 낙엽이 발목까지 찬다. 아름드리 고목과 원시림이 짧은 겨울해를 금방이라도 삼겨버릴 듯하다. ‘옥류천’ 주변에는 ‘소요정’ ‘농산정’ 등 정자들이 즐비하다. ‘옥류천’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보이는 것은 온통 나무뿐이다. 여름의 숲이 전체를 보여준다면, 겨울의 숲은 나무 한그루 한그루의 본성을 보여준다. ‘겨울 숲’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겨울을 견디기 위한 가장 치열한 전쟁이 진행 중이다. 겨울 숲은 우리에게 ‘견딤’을 이야기한다. ‘궁궐의 숲’은 세상의 많은 일을 살피면서 둘러보라고 나직이 속삭인다.

▶여행길잡이

▲경복궁=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을 이용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 정오에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식이 펼쳐지며, 주말에는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 오후 2시에 전통 무예인 ‘십팔기’ 시범이 펼쳐진다. 경복궁 홈페이지 참조(http://gyeongbok.ocp.go.kr) ▲창덕궁=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5분 거리. 개별 관람을 할 수 없고 정해진 시간에 입장해 안내를 받아야 한다. 동절기(12~2월)에는 오전 9시45분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매시 45분에 입장이 가능하다. 1회 입장객을 50명 선으로 제한하고 있다. 인터넷 예매가 편리하다. 창덕궁 홈페이지 참조(http://www.cdg.go.kr)

〈글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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