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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10돌 맞은 정동극장 최태지 극장장

입력 2005.06.26 17:49

친구처럼 편안한 도심의 문화공간 정동극장이 지난 17일 개관 10년을 맞았다. 이날 정동극장 개관 10주년 기념식을 가진 최태지 극장장(46)은 연말까지 이어지는 10주년 행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람속으로] 개관 10돌 맞은 정동극장 최태지 극장장

국내 최초의 여성 국공립공연장 CEO여서일까. 최극장장이 전하는 문화의 향기는 유난히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6월 전임 극장장의 잔여임기를 위해 정동극장장으로 발탁된 그는 지난 1월 제3대 정동극장장(임기 4년)으로 취임, 정동극장의 미래주제를 ‘아트 프런티어’(Art Frontier·예술개척자)로 정하고 극장운영에 정성을 쏟고 있다.

-정동극장 10주년 프로젝트가 다양하다.

“‘아트 프런티어’의 첫걸음이다. 그동안 매년 1,000회 공연을 해왔는데 이제부터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정부지원 외에 극장자체에서 올 한해 20억원을 모을 예정이고, 미래의 10년을 대비해 지난 4월 공연장 내부 객석을 모두 교체하고 음향시설·로비 등을 개선했다. 특히 좌석 크기를 넓히고 387석에서 343석으로 줄여 안락한 관람에 비중을 두었다. 10년기념 아트프런티어 공연에는 새로운 10년을 위해 장래가 기대되는 10명의 아티스트들을 초청했다. 피아니스트 양방언, 소리꾼 김용우, 가수 이상은, 기타리스트 한상원, 뮤지컬배우 김선경, 해금연주자 정수년, 재즈피아니스트 곽윤찬씨에 이어 파리오페라발레단 드미솔리스트 김용걸(7월23~24일),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김지영(7월30~31일), 피아니스트 박종훈씨가 뒤를 잇는다. 특히 동양의 야니로 꼽히는 양방언씨 공연은 유료관객 99%를 기록했다. 정동극장사상 초유의 일이다.”

#내부객석·음향시설등 새단장

-정동극장 문화상품은 입소문이 났는데.

“‘베스트10’을 꼽을 수 있다. 상설 전통예술무대, 문화특활, 정오의 예술무대, 어린이공연, 찾아가는 문화활동, 가을 연극무대, 타악퍼포먼스, 심야콘서트 등이다. 특히 정동 돌담길의 문화명물 ‘정오의 예술무대’는 1995년 극장 개관과 함께 탄생한 무료공연이다. 올해는 기존 클래식 연주뿐 아니라 재즈, 대중가요, 뉴에이지, 월드뮤직, 아카펠라 등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변하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다양한 공연상품 개발로 공연장 문턱을 낮추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정동극장은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문화공간이어서 신입사원 경쟁률도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지난 1월 신입사원 한명을 뽑는 데 500명이 지원했다. 입사지원서류 분류에만 하루가 꼬박 걸릴 만큼 많은 분들이 정동극장을 사랑했다. 고마운 일이다. 3차시험은 극장장과 인사담당자가 세 명의 최종후보와 함께 한 저녁식사였다. 앞으로도 서류와 면접만으로 이뤄지는 채용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공연장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선 그 사람의 모든 면을 본 후 채용을 결정해야 한다.”

-극장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상설공연으로 인한 제약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4~9월 오후 8시, 10월~이듬해 3월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상설공연 때문에 기획공연을 하려면 무대 리허설도 힘들고 완성도 높은 공연준비도 어렵다. 정동극장 레퍼토리를 특화하기엔 장소의 한계가 있다. 대관공연도 시간제약을 받는다.”

-주역 발레리나였는데, 공연장 경영에 매력을 느끼는지.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6년 동안 활동하며 겪은 현장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극장에서 기획한 공연이 관객의 뜨거운 호응과 호평을 받을 때마다 내 가슴속에선 예술경영에 대한 참된 승부의욕이 살아나곤 한다.”

#“음악·연극인들 만나며 생각 배워”

-극장에 모든 열정을 쏟다보면 개인생활은 희생해야 할 텐데.

“큰딸은 발레를 전공하고 있다. 막내딸은 인문계열에 관심이 많은 중학생이다. 그동안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다보니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쏟지 못해 미안했다. 특히 같이 있지 못하는 물리적인 시간보다 누구의 딸이라는 시선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이젠 숙녀가 된 딸들이 오히려 내 걱정을 해준다.”

-무대에서 결코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했다. ‘백조의 호수’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87년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2막에서 뛰어가다 코너링하는데 미끄러졌다. 그 순간은 긴장해서 몰랐는데, 다음날 보니 다친 부분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그후 한달 정도 정말 죽고 싶었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다른 공연을 하면서도 계속 그날의 실수가 생각났다. 그럴 때 파트너십이 중요한데 여주인공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남성파트너가 최고다. 파트너끼리 보여주는 테크닉에 앞서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하다.”

-87년 국립발레단 고 임성남 단장 초청으로 처음 한국무대에 선 후 19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며 배운 철학은.

“‘만남’이다. 한국에 온 후 몇년 동안 한국말을 못해 두려웠고 프리마발레리나로서 무대에만 서왔다. 그러나 95년 프리마발레리나를 그만두고 국립발레단장으로 활동하며 ‘만남’에 대해 배워나갔다. 정동극장에서도 음악·연극·대중음악인들을 만나며 그들의 생각을 배운다.”

#“해외진출 전통예술 알리고 싶어”

-올초 여성 프런티어 70명 중 한 사람으로 청와대에 초청됐는데.

“헤드테이블에 영부인, 장하진 여성부 장관과 함께 앉았다. 내가 연설자로 지정됐는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98년 청와대에 국립발레단장으로 초대받았던 일부터 풀어나갔다. ‘당시 운전기사 없이 직접 차를 몰고 청와대로 간 사람은 나뿐이었다. 차를 몰고 청와대로 들어가니 안내인이 주방문을 가리켰다. 나는 주방을 통해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운전석에 앉은 나를 초청인사로 생각지 않았다. 만찬장에는 역시 남성들로 가득했다. 행사가 끝나고 나올 때도 나는 어두운 주차장으로 혼자 걸어갔다. 이젠 세상이 많이 변했고, 정문으로 들어와 여성 프런티어들과 앉아 있다’며 연설을 마쳤다. 모인 분들이 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 극장의 미래는.

“해외로 진출하는 정동극장이 될 것이다. 정동극장이 한국전통예술을 세계에 선보이는 건 의미있다. 흔히 교포대상의 해외공연에 의미를 두지 않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들에게 조국의 문화와 정신을 심어주는 작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언제든 누군가가 정동극장 공연을 원하면 정동극장은 길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더욱 수준 높고 창의적인 공연문화를 선보여 일반 시민의 생활 속에 문화적 영감과 상상력의 불을 지피는 최전선의 역할을 다하겠다.”

최태지 극장장은 밝다. 솔직하다. 국립발레단 사상 최연소 단장으로 예술행정에 입문한 그는 ‘해설이 있는 발레’를 통해 한국발레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발레 부흥의 역사는 최태지를 정점으로 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도 그가 일으킨 폭발적인 발레신드롬 때문이다. 이제 한국 공연계의 여성 CEO 최태지는 공연문화 부흥사가 되어 우리 삶속으로 뛰어들어 왔다. 이 땅의 사람들 가슴속에 오붓한 문화의 정원을 일구고 있다.

〈유인화 매거진X부장 rhe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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