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가 우리 문화의 해외수출 물꼬를 텄다면 여풍(女風)은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물꼬를 텄다고 할 수 있다. 경영 분위기가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국내 골프장에서도 여성 경영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직은 소수지만 그 능력은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 오너는 모두 4명. 이들은 오너와 친인척인 ‘특수관계자’들이다.
![[사람속으로] “꿈을 위한 투자 CEO에 홀인원”](https://img.khan.co.kr/news/2005/07/17/5g1814a.jpg)
지난해 2월 공개 모집을 통해 지배인으로 크리스탈밸리 골프장에 몸을 담은 그는 입사 3개월 만에 총지배인으로 승진한 데 이어 1년여 만에 대표이사 사장의 자리까지 초고속 승진하는 ‘직장인 신화’를 창조했다.
당연 그의 성공 비결이 궁금해진다. 지난 14일 그를 만나러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 자리잡은 크리스탈밸리 골프장으로 갔다.
골프장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다. 그에 비해 최성이 사장의 집무실은 일반 사무실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소박했다. “사장실이 좀 작은 편이네요” 하고 물어봤더니 그는 “사장실은 업무를 총괄할 수 있는 동선에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소위 말하는 ‘폼나는 사장’보다 ‘실용적인 사장’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그가 골프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년전 ‘뭔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고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리던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이미지 메이킹 일을 하다가 어느날 문득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내게 맞는 좋은 일이 없을까 인터넷을 뒤지다 크리스탈밸리 골프장에서 지배인을 공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공채 출신 첫 여성 골프장 CEO-
평소 골프를 좋아했지만 골프장 업무는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지배인은 서비스 분야. 그쪽은 자신있었다. 2차에 걸친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현재 크리스탈밸리의 오너인 홍광표 회장 면접을 두차례 봤다. 40대 1의 경쟁을 뚫고 그가 뽑혔다. 어떤 공감대가 있었을까. 그는 “업무 능력보다 그동안의 이력에 대해 홍회장께서 평가해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배경을 좀 살펴보자.
홍회장은 병원을 운영하며 골프장을 인수한 ‘골프장 업계의 초보’다. 홍회장은 골프장 업무의 중심은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회원 관리, 즉 고객 서비스가 최고인 골프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서비스 전문가가 필요했다. 최성이씨는 이미지 메이킹 연구소에서 컨설팅을 담당한 대인서비스 전문가. 고객 서비스에 주력하는 새로운 골프장 분위기를 만드는 데 딱 맞는 ‘궁합’이었다.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역시 업무 능력. 최사장은 지배인 시절 어떻게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을까.
“익숙지 않은 일은 나이 많은 부서장들에게 물어봤어요. 솔직히 털어놓고 알려달라고 하니 모두들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내가 모르는 건 모른다, 이건 내가 잘한다고 분명히 밝혔죠.”
고객 서비스에 중점을 두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한 홍회장과 그는 클럽하우스의 프런트와 식당 지배인, 그리고 캐디마스터를 모두 여성으로 임용했다. 클럽하우스의 식당 분위기부터 달라졌다. 티업 시간에 쫓기는 회원들을 위한답시고 서두르는 서빙 분위기가 사라졌다.
지배인 시절부터 그는 클럽하우스 현관에 나가 회원들과 대화를 즐겼다. 그가 이미지 메이킹 전문가라는 것을 아는 회원들이 “오늘 내 옷차림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제 한마디는 좀 비싸서 그냥 가르쳐 드릴 수 없는데요” 하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덕분인지 실제 그가 사장이 되었을 때 회원들이 가장 축하를 많이 해줬다고 한다.
빈틈 없는 매너,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기술. 이것이 최사장의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닌가 싶다. 그는 어떻게 이런 경쟁력을 갖추었나. 그가 걸어온 길을 짚어 보자.
서울 출신인 그의 학창시절은 극히 평범했다. 1등 한번 못해보고, 사고뭉치도 아닌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틀에 얽매인 생활은 싫었다고 했다. 대학 가서 제일 좋았던 것은 매일 꼬박꼬박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외국계 회사의 비서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당시 대인관계 매너 등을 배웠다. 그러나 2년쯤 지나자 정시 출퇴근 생활에서 벗어나 ‘내 일’을 하고 싶었다. 이벤트·홍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한 1년 신나게 놀며 그 분야에 관심을 쏟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준비기간이었다. 이벤트·홍보 분야의 일을 직접 하며 자금관리와 경영을 배웠다.
-로비·식당 지배인, 캐디마스터도 여성-
여자로서 나이가 좀 들었다 싶었을 때 이미지 메이킹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미지 메이킹 분야는 경험이 풍부한 여성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 전 또 한 1~2년 푹 놀았다. 이번에도 그냥 논 게 아니었다.
관심분야에 푹 빠지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번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노하우를 익혔다. 사설 아카데미 학원도 다니고, 미술, 역사, 패션잡지를 매달 수십권씩 읽었다. 1990년대 중반 이미지테크연구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으며 노하우를 쌓아 나갔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은 많습니다. 굳이 두 부류로 나뉜다면 한쪽은 꿈만 꾸고 다른 한쪽은 그 꿈을 과감하게 실천한다는 거죠.”
“다방면 쌓은 경험 가장 큰 힘이죠”직장인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최사장. 그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머뭇거림 없이 바로 말을 이었다. “서른살 이전까지는 돈을 모으지 말고 아낌없이 재투자하세요. 그러면 서른살 이후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직장생활,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회사 경영, 그리고 이미지 메이킹 컨설턴트, 골프장의 대표이사. 이 네가지 영역을 거칠 수 있었던 에너지는 호기심이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실천력. 그것이 그가 가진 강점이었다.
이제는 40만평 ‘덩치 큰’ 골프장의 살림을 떠맡은 전문 경영인. 하지만 그는 스스로 ‘햇병아리 경영인’이라며 몸을 낮춘다. 홍회장은 그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을까.
“최사장의 승진 인사를 두고 외부에서는 획기적인 인사라는 평이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내정된 인사였어요. 초대 사장이 임기를 마치고 그만 두면서 자연스레 자리를 옮겨간 거지요. 능력은 총지배인 시절 이미 검증되었어요.”
홍회장은 “그동안 골프장 사장은 주로 남자들이 했는데 여자라고 못할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여성적인 감각이 서비스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며 “최사장은 서비스 전문가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신뢰했다. 그는 이어 “최사장이 여성이라 부드럽게 보이지만 한번 아닌 것은 세상 없어도 아니라고 버티는 뚝심이 있다”며 그런 점이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서 인정받는다는 것만큼 뿌듯하고 행복한 것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 내에서 최고 경영인으로 평가받은 최성이 사장은 현재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한명임에 분명하다.
〈이동형 여론독자부장 s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