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설계 1·2/ 프레데릭 르누아르·비올레트 카브소|예담
어린 시절 익숙했던 귀신 이야기가 있다. ‘전설의 고향’이란 TV프로그램을 통해 여름이면 납량특집이란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귀신들이다.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가 단골로 나왔지만 대부분의 경우 구천을 떠돌던 원혼이 나타나 원수를 갚아달라거나 명예회복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민지시대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적 정서를 비하하기 일쑤였지만 오늘날 동양은 서구사회에서 식상한 정서의 탈출구로 여겨지고 있다. 영화·게임·만화의 경우 동양적 판타지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신비의 건축물인 몽생미셸성당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이중설계’는 철저한 서양 미스터리 스릴러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이야기 곳곳에 동양적 정서가 투영되어 있어 별로 낯설지 않다.
머리가 잘려나간 수도사 원혼이 한 고고학자의 꿈에 나타나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땅을 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고학자는 메시지에 대한 강박감에 몽생미셸에 얽힌 비밀에 집착하게 되고 집요한 탐사를 통해 1,000년 전에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의 전모에 접근한다.
이중장부에 비밀스러운 금전적 치부가 기록되어 있다면 ‘이중설계’엔 인간욕망의 치부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몽생미셸에서 수도원 건축을 추진하던 수도사와 이교도인 켈트족 처녀의 비극적인 사랑과 복수, 그리고 수도원 건물의 지하 설계도를 둘러싼 음모와 반전이 그것이다. 결국 주인공인 고고학자의 손에 의해 미스터리는 하나씩 풀려가고 구천을 떠돌던 목잘린 수도사 역시 머리를 되찾아 하늘로 승천하게 된다.
어찌보면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전설의 고향’ 느낌이 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밀화처럼 그려진 치밀한 극적 전개에 한 줄도 놓칠 수 없는 긴장감이 행간에 배어난다. 또한 간간이 곁들여진 적절한 판타지와 멜로가 부담없이 책장을 넘기도록 도와준다. 1,000년의 시차를 오가며 신비로운 건축물 몽생미셸의 ‘이력서’를 진지하게 풀어가는 구성도 사실적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등골이 오싹한 공포는 없지만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마치 외줄을 타듯 펼쳐지는 고성(古城)을 둘러싼 모험은 여타 서스펜스 추리소설과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재형 옮김. 각권 8,900원
〈정진호기자 hotmai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