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광복 60주년이다. 그들, 일본사람들이 빼놓지 않는 관광코스가 서울 인사동에 있다. 지난해 12월16일 문을 연 재미있는 건물 ‘쌈지길’이다. 5층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렸다. 가운데 마당으로 하늘이 쏟아진다. ㅁ자형 건물은 1,200평. 가운데 마당은 150평. 건물 아랫길(지하층)부터 네오름길(4층)과 하늘정원(옥상)까지 500미터 거리에 늘어선 70여개 공예품점·갤러리들을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올라가면서 구경하고 피곤한 발을 찻집이나 음식점에 내려놓으면 된다.
![[사람속으로] ‘건물속의 길’ 나그네에 열린 문화마당](https://img.khan.co.kr/news/2005/08/07/5h0821a.jpg)
갈빗집 ‘영빈가든’ 자리를 인사동 명물로 만든 ‘쌈지길’ 대표 천호선씨(62·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쌈지길은 이름 그대로 건물이라기보다 길이고, 길을 통해 문화의 세계로 들어가면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의문은 계속 남는다. 넓은 공간을 이렇게 놀리다니. 150평 곱하기 5층이면 750평. 세를 놓으면 얼만데. 인사동을 찾는 이들이야 색다른 공간을 즐겨 재미있겠지만, 건물 주인은 속도 쓰릴 법하다.
“조상들이 하던 대로 하늘의 오광(五光)과 땅의 오복(五福)이 닿아있는 열린 공간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옛 상업공간은 노점상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유 공간이었는데, 이젠 백화점 건물 속에 사람을 몰아넣고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물건을 사라고 강요합니다. 그건 ‘삶’이 아니죠. 쌈지길은 자유 공간을 추구합니다. 물건 안 사면 어때요. 길따라 가게를 기웃거리고 안목을 높이면 그게 ‘문화’잖아요.”
길을 걷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 사람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게 문화고, 그게 바로 인사동의 정신이란다. 인사동에서 옛날 냄새가 진동하는 자그마한 골목의 오붓한 정서를 선사하기 위해 건물을 ‘길’로 해석했고, ‘길’로 디자인했다. 설계는 파주 헤이리 쌈지건물 ‘딸기가 좋아’를 디자인한 최문규씨와 천사장의 사위 브리엘 크로이츠가 함께 했다. 사위는 풍수지리학 관련 논문도 썼다. ‘풍수는 철저히 계산된 과학’이라고 믿는 천대표. 사위의 작업이 예쁘기만 하다.
“항상 새로운 무언가가 있어야 살 맛이 납니다. 쌈지길을 찾은 분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의 공예품을 구경하고, 기분좋은 김에 막걸리도 사먹고…. 뭐 이런 낭만이 문화적 추억으로 남고 행복한 삶의 일부가 된다면, 저는 성공한 거죠.”
-세계각국 다양한 문화경험-
거침없는 말솜씨. 사실 그에겐 두려운 게 없다. 4남5녀 중 여섯번째 아이.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허락받고 술·담배를 했다. 춤도 추러 다녔다. 서울 화신백화점 뒷골목 스탠드바에서 술집마담에게 춤을 배웠고 빡빡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카바레도 다녔다. 지금도 물찬 제비처럼 춘다. 지르박(지터버그)은 자신있다. 중 3때부턴 등산에도 푹 빠졌다. 솔직하게 살고 정열적으로 자신을 다스렸다. 경기 김화 지주였던 아버지는 6·25전쟁 후 소유했던 토지 일부를 찾아 자식들이 원하는 만큼의 문화를 맛보여주었다.
경기고 57회. 친구들은 죄다 서울대를 지원했는데 그는 연세대를 지원했다. 등산반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부모가 뭐라든 소용없었다. 경기고 산악반 ‘란텔르네(랜턴)’ 출신인 그는 연대 등산반을 일궜다. 담임선생은 연대 상대를 가라고 했지만 “돈버는 건 배워 뭣하겠냐”며 철학과에 지원했다. 거침없었다.
“사실 저는 제 마음대로 살았을 뿐이지, 알려진 사람이 아녜요. 쌈지길 때문에 요즘 좀 얼굴이 알려지긴 했지만…. 1993년부터 가방과 의류 등을 만들어온 제 동생(천호균 토털패션업체 ‘쌈지’ 사장)이 정말 유명하죠.”
천대표의 문화질주는 문화도시 뉴욕에서 싹텄다. 1979년 4월 문화공보부 산하 미국문화원 민정관으로 뉴욕에 가면서부터다. 68년 청와대 6급 행정관으로 들어간 후 무엇에 묶인 듯 답답했던 차에 만난 뉴욕. 3년8개월 동안 그곳에서 ‘사람’을 담았다. 현대무용가 홍신자, 소프라노 홍혜경 등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모인 천대표의 집은 문화사랑방이었다. 그때 천대표는 지터버그, 블루스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복잡한 스텝 모두 빼고 간단한 스텝만으로 구성한 ‘천호선 댄스’는 초보자들도 금방 따라할 수 있어 인기였다.
이후 덴마크 코펜하겐 1년, 캐나다 오타와 5년 등 10년동안 많은 인종 속에서 문화의 흐름을 터득하고 즐겼다. 늘상 한국미술 5,000년전, 판소리공연 등으로 옛 한국만 알릴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예술의 현주소를 알려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서세옥 김창렬 박서보 등 47명의 한국 서양화가들을 외국에 소개했다. 반응은 정신 못차릴 만큼 뜨거웠다.

쌈지길 가운데 마당에 선 천호선 대표. 쌈지길을 만들 때 캐낸 주춧돌도 그에겐 더없이 소중한 ‘문화’다.
-백남준 첫 한국활동 주선 힘써-
특히 그가 백남준을 한국에 첫선보인 시기는 자신의 문화가속도가 정상을 이룰 때였다. 뉴욕에서 계속 백남준에게 러브콜을 보내도 꼼짝 않더니 83년 머스커닝햄현대무용단 후원회장과 친해진 후 그를 통했더니 곧바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 한국작업을 승낙했다. 아무도 천대표의 극성을 말릴 순 없던 셈이다.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한국을 알렸습니다. 서울로 발령난 후에는 ‘이제 할 일은 다한 셈이다’ ‘이젠 죽어도 되겠다’ 싶어요. 이후는 보너스, 엑스트라의 삶이니 즐거울 수밖에요. 짜증낼 일이 있어도 화나지 않아요. 참 묘하죠? 하하….”
귀국해선 문화공보부 문화예술국장을 지낸 후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2003년 9월 쌈지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사람’을 통해 문화를 얻었지요. 제가 받은 선물을 다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쌈지길을 열었습니다. 이젠 외국에도 소문이 났는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그저 물건이나 구경하는 차원이라면 쌈지길에 올 필요 없지요.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들의 정신을 담아가면 좋겠습니다.”
지난 5월 일본 NHK TV가 쌈지길에서 3시간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 배경도 전통문화 지킴이가 이룬 ‘길속의 길’에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는 목에 두르는 머플러도 요일마다 달리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철학의 발현이다. 월(月)요일엔 달색깔인 노란색 머플러, 화(火)요일엔 붉은 색, 수(水)요일 푸른 색, 목(木)요일 녹색 머플러…. 지난 5월엔 서울 문예진흥원 대극장에서 열린 국제현대무용제에서 ‘〈쑈쑈쑈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공연에 최고령 무용수로 출연해 춤도 추었다. 못말리는 문화질주다. 몸에 푹 배어버린 문화앓이. 쌈지길 철학도 같은 맥락으로 판독된다.
-현대무용제서 춤실력 발휘도-
“한국 전통문화상품의 명품화를 추구합니다. 전통공예를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포장한 문화상품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고려청자가 전해지듯 후대에 당대를 대표하는 공예품, 즉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인사동에선 외국인들이 한번씩 오는 관광코스인데 베트남과 중국에서 건너온 공예품들이 한국 전통상품 대신 팔리고 있으니…. 기가 막힙니다.” 천대표가 문화를 파는 가게 ‘쌈지길’을 만든 이유다.
그의 소원은 오직 하나.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보듬은 쌈지길에서 아름다운 사람끼리 만나길 바랄 뿐이다. 그 길, 쌈지길이 우리 시대 고단한 이들의 가슴에 문화의 풍경으로 빛나길 바랄 뿐이다.
〈인터뷰/유인화 매거진X 부장·사진/박재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