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조해일의 단편소설 ‘매일 죽는 남자’의 주인공처럼 늘 죽음을 무릅쓰고 일터에 나가는 사람이 있다. 보통사람들은 ‘만에 하나’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에 산다면, 그는 ‘열에 하나’ 무슨 일을 당하며 살아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사람속으로] 액션에 살고 액션에 죽는 ‘마흔 청년’](https://img.khan.co.kr/news/2005/08/21/5h2221a.jpg)
“어린 시절 장동휘나 박노식처럼 멋지게 악당들을 쓰러뜨리는 액션배우가 되고 싶었죠. 그러다가 고2 때 제 고향 부여에 내려와 체육관을 차린 스승 이각수 관장님 덕에 태권도를 시작했어요. 그뒤로 합기도, 격투기, 유도, 킥복싱, 검도 등 안해본 운동이 없지요.”
-어릴때 악당물리치는 액션배우 꿈-
인천체대를 졸업한 그는 엑스트라와 스턴트맨을 전전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1998년 처음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등짝만 보이는 스턴트맨에서 벗어나 스크린에 얼굴이 나왔다. 그러나 멋지게 악당을 물리치는 주연배우가 아니라 늘씬 두들겨맞는 악역이었다.
당시 1년간 벌어들인 수입이 고작 1백50만원. 촬영장 갈 차비가 없어서 큰누님한테 빌려 썼다. 가끔 전철도 무임승차했다. 촬영장에서도 맨땅에 주저앉아 있다가 언제든지 부르면 뛰어나가는 ‘5분 대기조’였다. 감독의 가방도 들어주고, 맨몸으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고, 강추위 속에서 강물로 뛰어들기도 했다.
“머물러 있지 말자.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자. 정두홍, 네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니?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 외쳤어요. 그런 오기가 든든한 버팀목이었죠.”
촬영이 없는 날엔 죽기살기로 운동을 했다.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서울 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뛰고, 치고, 굴렀다. 수험생처럼 하루 3~4시간만 잤다.
“수년 전만 해도 드라마나 영화촬영 때 스턴트맨을 위한 안전장치는 전혀 없었죠. 감독이 ‘달리는 차에 부딪혀라’라고 말하면 그냥 부딪히는 거죠. 다치지 않게 잘 부딪히라고 말하는 게 안전장치의 전부였어요.”
그래서 그가 세운 게 ‘서울액션스쿨’이었다. 한국체육진흥회의 도움으로 보라매공원에 연습장을 만들고 스턴트맨을 지망하는 후배들을 교육시켰다. 외국에 촬영갈 때마다 안전장비를 사모으고, 할리우드의 촬영장을 찾아가 각종 안전장치를 눈여겨본 뒤 직접 만들었다. 이곳에서 배출된 무술감독만 해도 모두 11명. 그들이 이제 제2부흥기를 맞은 한국영화 현장과 한류열풍을 불러온 드라마 제작현장을 누빈다.
“홍콩의 정소동 감독이 그러더군요. 홍콩에선 액션영화를 만들 때 예산의 70%를 액션장면에 투입한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드라마건 영화건 30%도 안되는 예산을 쓰죠. 대개 ‘몸으로 때우라’고 요구합니다. 요즘엔 제가 직접 액션신을 시뮬레이션으로 제작해서 감독들에게 보여줍니다. 감독들은 그들이 상상하는 장면을 만들어주니까 무척 좋아하죠.”
-죽음 무릅쓴 스턴트맨시절 버텨내-
오늘, 정두홍은 편당 5천만원을 받는 한국 최고의 무술감독이 됐다. 호칭도 ‘어이!’ 혹은 ‘정사범’에서 ‘정감독’으로 승격됐다. 그동안 한국 액션영화와 드라마는 그의 손에 의해 진화해왔다. 영화 ‘본투킬’ ‘반칙왕’ ‘무사’ ‘챔피언’ ‘아라한-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등.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무인시대’ ‘대망’ ‘다모’ ‘올인’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30여편이 넘는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러나 그는 뼈를 지탱하는 12개의 볼트와 퇴행성 척추협착증으로 언제 하반신이 마비될지 모르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훈장으로 얻었다. 그러한 몸을 지탱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그가 택한 건 복싱이었다. 지난해 프로복서로 데뷔한 그는 올해 7월에도 웰터급 랭킹전에 나서서 24세의 상대를 TKO승으로 제압했다.
-10년간 30여편 작업 ‘미다스의 손’-
“촬영현장에서 느끼는 공포감보다 링에 오르는 공포가 훨씬 더 커요. 주먹으로 한대 맞고 나면 작전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죠. 데뷔전 때는 코뼈가 부러졌어요. 얼마전 시합 때는 평생 제가 맞은 매보다 많은 주먹세례를 받았어요.”
프로복서로 어느 정도 성취를 하고 나면 히말라야 등정에 나서고 싶단다. 그리고 또 하나 올라야 할 산은 ‘토종액션’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한국의 액션영화에 대해 애정이 깊은 그는 일찌감치 그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최근 내한했던 태국영화 ‘옹박’의 주인공 토니쟈와 만나면서 참 부러웠어요. 그를 이소룡과 청룽, 리롄제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액션스타로 만들기 위해 태국 총리까지 나서서 후원한다더군요. 국민들이 그를 국민배우 대접해주는 건 물론이고요.”
그는 홍콩에 ‘와이어액션’이 있다면 한국에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토종액션’이 있다고 강조했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전통무예와 역도산과 최영의 선생으로 이어지는 기라성 같은 무인들이 있는데 그 전통을 애써 무시해왔다며 흥분했다. 청룽이나 리롄제의 액션도 한국에서 건너간 황인식씨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미국에서 촬영하는 액션영화 ‘바운서(Bouncer)’로 무술감독이 아닌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CJ엔터테인먼트가 미국의 B급 액션영화 시장을 겨냥해 만든 프로젝트 중 하나다. 정두홍은 중국계 미국인인 제이슨 리(30)를 주인공으로 액션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근 대본작업에 들어갔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게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크다”고 말하는 그는 한국적 액션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내년엔 무술 아닌 영화감독 데뷔-
“영상시장에서 액션과 공포는 세계 공용어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액션영화를 너무 비하해왔어요. 우리 고유의 무예전통을 담은 액션영화야말로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얘기하면서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한 ‘열아홉 청년’ 같은 열정을 느꼈다. 그는 올가을에도 4~5편의 영화에 동시다발적으로 무술감독을 맡고, 출연도 할 예정이다. 특히 러시아 감독의 요청으로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영화 ‘몽골인’의 무술감독을 맡았다. 무술감독으로서는 첫 해외진출인 셈이다. 그가 영화계에서 가장 죽이 잘 맞는 감독으로 꼽는 류승완 감독의 ‘짝패’에도 출연한다.
“이러다가 정말 액션스타가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평생을 맞을 줄만 알았지 멋지게 때려 눕히는 걸 해보지 못해서 쉽지 않을 거예요.”
슬쩍 눙치면서 씩 웃는 정두홍은 씩씩한 ‘마흔살 청년’이었다. 그런 믿음 때문인가. 언젠가 그가 세계인이 열광할 만한 토종액션을 우리 앞에 내놓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오늘, 이땅의 드라마나 영화의 액션감독들은 하나같이 정두홍을 최고로 꼽는다. 또 제작사가 덜컥 그에게 영화감독을 맡겼다. 다, 정두홍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인터뷰/오광수 공연문화부장 ok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