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 축에 든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약속과 회의가 끊이지 않는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60). 그는 지난 30년 동안 시대의 폐부를 찌르는 수많은 명저들을 세상에 선보였고, 남다른 뚝심으로 파주출판문화단지를 탄생시켰으며, 3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을 설득해 문화마을 ‘헤이리’를 만들어냈다.
![[사람속으로] “헤이리, 문화·예술의 난장 만들 것”](https://img.khan.co.kr/news/2005/08/28/5h2921a.jpg)
자유로를 달리다보면 북한이 건너다보이는 파주 통일동산 아래 헤이리가 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야산 자락 15만평에 자리한 문화예술 마을. 박물관, 미술관, 음악홀, 공방, 스튜디오, 문학공간 등 건축물 자체가 작품인 이곳에서는 1년 내내 전시회, 축제, 음악회, 강연회, 영화시사회 등 문화향기 가득한 행사들이 이어진다.
미술, 문학, 건축, 음악, 방송, 출판, 영화 등 국내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사 300여명이 둥지를 튼 헤이리에는 방송인 황인용의 ‘카메라타 음악실’, 소설가 정한숙을 기리는 ‘정한숙 기념홀’, 인물화를 테마로 한 ‘아트센터’, 사진작가 배병우의 ‘BBU 스튜디오’, 소설가 윤후명의 ‘후명원 만묘루’ 등 ‘보물’ 같은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독특한 마을 이름은 파주지역의 전래 농요 추임새인 ‘헤이리’에서 따왔다.
- 장르초월 문화계인사 3백여명 참여 -
헤이리는 ‘문화계의 마당발’ 김언호 대표의 ‘몽상’에서 시작됐다. 그는 1994년 파주 출판단지 조성을 위한 사전 조사차 영국의 세계적인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를 방문한 뒤 “한국에도 책마을을 하나 세우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처음에는 파주출판단지에 입주할 출판인들의 공동체 마을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진행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을 참여시켰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예술마을’ 헤이리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경험·생각·장르가 각각 다른 문화계 인사 수백명이 뜻을 하나로 모은 것만 해도 기적같은 일입니다. 헤이리는 문화와 예술,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거대한 실험의 장이자 사색의 공간입니다. 헤이리 전체를, 시대를 대표할 집단 건축 작품으로 만들고 생활공간에서 직접 예술작업을 하면서 항상 문화행사가 넘쳐나는 문화예술의 난장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헤이리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곳에 서점과 갤러리, 공연장, 레스토랑, 카페가 공존하는 복합 문화예술 책방, ‘북하우스’를 열고 있다. 외부는 노출 콘크리트와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나무벽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길사는 그가 주도한 또 하나의 명소인 파주출판단지에 있다. 네 권의 책을 세워 놓은 모양의 한길사 건물은 동판으로 외벽을 처리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거리에 나온 지 30년. 은평구 불광동 산동네의 집에서 시작한 그의 출판인생은 이제 헤이리와 파주출판단지, 그리고 북하우스를 통해 뚜렷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 그는 75년 봄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했다가 신문사에서 쫓겨났다. 76년 아내 박관순씨를 발행인으로 출판사 등록을 했다. 그는 유신체제 후반부터 80년대 말까지 논쟁적인 사회과학서적을 집중적으로 기획했다.
![[사람속으로] “헤이리, 문화·예술의 난장 만들 것”](https://img.khan.co.kr/news/2005/08/28/5h2921b.jpg)
특히 송건호의 ‘한국민족주의의 탐구’로 시작돼 지금까지 190권이 나온 ‘오늘의 사상 신서’에는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강만길·임종국·백기완·유인호 등 열두명의 필자가 집필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 김윤식의 ‘한국 근대문학사상사’, 신경림의 ‘민요기행’ 등 70,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79년부터는 10년에 걸쳐 6권으로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지식인과 대학생들 사이에 ‘해전사’로 불리면서 4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그는 기획·교정·장정까지 직접 해냈고, 아르바이트로 다른 사람의 책을 써주면서 자금을 마련해 시리즈를 이어갔다.
“어려웠지만 책 만드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새롭게 나오는 책은 마치 살아움직이는 신비한 생명 같았지요. 그때 책은 머리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발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지론을 갖게 됐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순수와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가 당대 대표적인 지성들을 필자로 동원할 수 있었던 힘은 남다른 정열과 부지런함이었다. 그는 진지하고 무모하게 필자들을 찾아가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의 책을 향한 집념과 열정은 ‘함석헌전집’,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160명의 학자들이 8년에 걸쳐 완성한 총 27권의 ‘한국사’, ‘우리말 갈래사전’ 등으로 이어졌다.
- 사회과학서 시리즈 집중 출간 -
그는 경남 밀양에서 농사밖에 모르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 부모를 보고 배운 그는 “농부의 마음으로 일에 매달리고 책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출판의 정신과 뿌리를 함석헌 선생에게서 찾는다. 북하우스 1층 한복판에는 함석헌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당대의 뛰어난 어른들을 만나고 그들의 정신을 담아 세상에 책으로 내놓는 일은 출판인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함석헌 선생의 방대한 사상을 전집으로 간행하면서 7년 동안 그분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었던 일을 30년 출판인생 중 가장 큰 보람이자 긍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고 열정적이다. 그는 샘솟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의견을 물었다. 이병주 선생의 소설들을 재출간하겠다는 속내를 털어놓았고, 충북 제천에 내려가 소설을 쓰고 있는 박태순 선생을 함께 만나자며 기어코 약속을 잡았다.
- “책 대접하는게 사람 대접하는 일” -
메모광이기도 한 그의 가방 속에는 두툼한 대학노트가 들어있다. 언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꼼꼼히 기록돼 있는 ‘일기장’이다. 그는 이 메모들을 정리해 97년 ‘책의 탄생’ 1, 2권을 펴냈다. 책에는 필자 섭외 과정과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즐거움과 고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출판인은 문화와 예술을 기획·조직·연출하는 전문가여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일찍부터 출판을 문화운동의 하나로 여겼다. 그가 80년대 중반부터 계속한 ‘한길역사강좌’ ‘한길역사기행’ ‘한길사회과학강좌’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단재상’ 제정, ‘오늘의 책’ 선정 등을 주도한 것도 출판을 문화운동으로 확산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책은 모든 문화의 ‘원석’입니다. 헤이리 역시 책 만드는 일의 외연 확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담아내는 모든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한권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헤이리는 그 자체가 문화 콘텐츠로서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한권의 책을 만들고 읽음으로써 한 인간과 사회, 국가, 민족, 인류 전체가 그 삶과 정신과 사상을 존재·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한가운데 책이 놓여져야 한다”며 “책을 대접하는 것은 사람을 대접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북하우스의 외벽에는 고은 시인의 글이 쓰여 있다. 그가 출판문화와 헤이리에 바치는 헌사로 마음에 새기고 있는 글이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이곳에서 당신의 당신입니다.-두 사람의 헤이리.’
〈김석종 문화부장 s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