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잇단 ‘파격 행보’가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올들어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인 SK텔레텍 매각과 인천정유 입찰에서 전례없는 과단성을 보인 데다 선대 회장의 ‘손때’가 묻은 본사 사옥도 선뜻 매각대상에 올린 것.
SK그룹은 최근 마감한 본사 사옥 매각 입찰에서 메릴린치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협의 중이라고 26일 밝혔다.
메릴린치측은 장부가보다 1천억원가량 많은 4천5백억원 안팎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본사 사옥 매각은 3조2천억원에 달하는 인천정유 인수 및 운영자금 조달과 관련돼 있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려 구조조정 차원에서 본사 사옥을 매각한 사례는 있지만 운영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사옥을 판 적은 별로 없다. LG그룹도 한때 서울 여의도 쌍둥이빌딩 매각 방안을 검토했으나 대외적인 이미지 손실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다.
SK 사옥은 최태원 회장의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의 체취가 담긴 건물이어서 매각 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최전회장은 서울 여의도와 을지로에 흩어져 있는 계열사를 한데 모아 그룹의 ‘본산’으로 삼기 위해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이 건물 35층엔 고 최종건 1대 회장과 최전회장의 흉상이 있다.
SK는 사옥 매각 후에도 ‘세일즈 앤드 리스’(Sales and lease) 방식으로 5년간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건물매각 때 우선협상권을 갖는 바이백’ 조항을 계약조건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방식이라면 SK는 금융권에서 돈을 직접 빌리는 대신 본사 사옥을 담보로 부채없이 투자자금을 손쉽게 마련한 셈이다.
SK 관계자는 “본사 사옥이라는 상징성도 중요하지만 이를 그룹 자산의 일부로 보고 언제든지 매각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SK의 이같은 과단성은 최근 인천정유 입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인천정유는 1차 입찰 때 중국 석유회사인 시노캠이 6천8백억원을 제시했으나 수백억원의 가격 차를 좁히지 못해 매각이 무산된 바 있다. 최근 석유화학업계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인천정유 매각 가격은 1조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SK는 그러나 일반의 예상을 깨고 2차 입찰가의 2배를 웃도는 1조6천억원을 제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SK측은 “현재의 기업가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미래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면서 “인천정유 입찰가는 ‘꼭 인수하겠다’는 그룹의 의지와 미래 가치를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SK는 이번 입찰에서 파격가를 제시하면서 그동안 대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통과의례로 돼 있는 ‘특혜 인수설’을 말끔히 불식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뒀다.
〈박문규기자 park003@kyunghyang.com〉